충남 논산에 소재한 건양대학교 앞에 다문화·유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센터를 준비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중국의 유학생이 800여 명이나 되었지만 사드로 촉발된 한중갈등의 여파에다 혐한(嫌韓) 감정까지 더해져 이제는 10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 유학생이 빠진 자리를 베트남과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온 유학생들이 대신하고 있어 이제는 유학생들의 분위기가 사뭇 다문화·다민족으로 바뀌어가는 듯하다.
쉬운 선교가 없듯 한국에 유학 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에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한다. 재정뿐만 아니라 유학생들의 모든 정황을 살펴줄 인적자원도 필요하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이 표시는 나지 않는데 필요는 점점 더 커지기도 한다. 특별히 한국의 지방대학으로 유학을 온 학생들의 지원환경이 열악하다보니 보기에도 심히 딱한 학생들도 많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는 그나마 유학을 지속하는 것을 힘겨워하는 까닭이다.
중국유학생들과는 관계(關係-꽌시)를 맺으면서 복음을 전해야 하고 다른 나라의 유학생들도 무엇인가를 도와주면서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다. 관계를 맺거나 가까이 다가가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좋은 방법은 만국공통으로 무엇을 같이 먹는 것이다. 식탁의 교제는 그래서 필요하다.
선교는 비즈니스가 아니다. 1에 1을 더하여 2라는 플러스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100, 1000, 10,000을 투자하여 잘해야 하나를 건질 수도 있는 것이 선교인 것이다. 그러니 밑이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보다 더 허망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를 당연시 할 수 있어야 선교가 된다. 선교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았기에 천하보다 더 귀할 수도 있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 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을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요12:1-8).
삼백 데나리온은 아주 큰 돈이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부은 순전한 향유의 가치가 노동자가 땀을 흘리며 300일을 수고한 대가만큼 큰 돈이다. 이를 두고 유다는 왜 헛되이 낭비하였느냐고 마리아를 책망하고 있다. 그때 예수님은 낭비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실 예수님을 장사하기 위한 가치라고 하셨다. 영생을 얻을 대가에 비해서 결코 헛된 낭비가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잠시잠간이라도 보기 위해 한국에서 미국까지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왔다가 공항에서 30분 동안 만난 후 13시간 비행기를 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가룟 유다의 관점에서 보면 낭비일 수 있을지 모르나 그 당사자에게만큼은 절대 낭비가 아닐 것이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세워진 교회라면 단 하나의 성도를 대상으로 십 년이 넘게 목양을 한다고 해도 그것을 낭비로 볼 수는 없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리 울었나보다는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봄부터 가을까지 운 소쩍새의 바람은 결코 낭비가 아닌 것이다. 설혹 그것을 낭비라고 표현해야 한다면 거기에 ‘거룩한’으로 수식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선교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 그 밑 빠진 독에서 자라는 콩나물을 볼 수 있는 믿음을 지니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임을 확신하는 것이 선교며 선교는 거룩한 낭비이기에 삼백 데나리온의 가치마저도 기꺼이 예수님을 위해 부을 수 있어야 한다. 논산에 세워질 선교동원 마중물 센터도 그런 가치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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