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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사람을 생각하며 남겨진 것

–故 이경근 선교사, 현재적 사랑과 믿음–

가을이 주는 은혜

 

가을은 사람의 마음을 깊고 차분하게 만든다.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인생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바람 속에 전해지는 쓸쓸함 속에서 사랑했던 이들과 함께한 순간들이 떠오르고, 지금은 닿을 수 없는 추억들이 아련하게 마음을 감싼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 속 순간들은 어느새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으며, 우리는 그 기억 속에서 위로를 찾는다.

 

故 이경근 선교사

 

그러나 과연, 그 누군가를 생각할 때, 참된 위로와 따스함을 주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아주 드물다. 그런 중에, 아주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오래도록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 얼마 전, 나의 생일날 소천하셔서, 매년 생일의 날을 더 소망스럽게 기억하게 해주신 이경근 선교사님이시다. 그에 대한 기억을 기록해보지만, 나를 그에게 처음 소개해준, 35년 지기 친구가 전하는 그에 대한 간단한 이력이 더 좋아보여 옮겨 적어 본다. 

[형님은 지난 10월7일(월) 64세의 일기로 천국으로 훌쩍 떠나갔습니다. 5월 발병을 확인 후 불과 몇개월 만에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그의 생 마지막 10여년 가량  선교사회와 본부에서 함께 동역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친형제보다 더 친한 좋은 형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췌장암 발병 소식을 듣고 그때부터 계속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수 없었습니다. 저도 그 충격때문인지 면역이 떨어져 대상포진, 치쿤 구니야로 고생 중입니다.(중략)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1989년 필리핀에 파송받아 선교사역중 괴한의 총격을 받아 사경을 헤맸습니다. 2년여 투병 끝에 기사 회생했습니다. 그래서 병원 냄새가 싫다고 했습니다. 회복 후 말레이시아로 다시 떠났습니다. 모두가 한사코 만류했지만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겠다.'고 다시 현장으로 갔습니다. 여러교회, 단체, 방송에서 총에 맞고 살아난 선교사에게 간증을 부탁했습니다. 그의 몸에 총상만 보여줘도 소위 뜨는 강사가 될 수 있었지만 다 고사했습니다. 훈장처럼 자랑할 수 있지만 그 유혹을 떨쳤습니다. "군대가면 군인들이 운동장에서 줄맞춰 가다가 호각 한번만 불면 뒤로 돌아 갑니다. 인생은 그렇습니다. 자랑할거 하나 없습니다. 주님이 호각 한번만 불면 처음이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처음이 됩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의 설교 중 예화 /그는  자신의 설교처럼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늘 주님만 자랑하는 믿음과 소망의 사람이었습니다. (중략) 

무엇보다 그는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신학대학원 채플에서 설교하고 돌아와서는 "<한교회 한 신학생 돕기>를 한다고 해서 300만원 헌금하고 왔다. 설교때 저도 한명 돕겠습니다. 하고 나중에 집에 오려고 하는데 다시 보니 <한교회 한 신학생 보내기>운동이더라." 사실은 가난한 신학생을 돕고 싶은 마음이 컸겠지요. 아들 결혼 후 받은 축의금 반은 아들이 졸업한 한동대에  반은 모교인 고신대에 거금을 헌금했습니다. 그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읺고 조용히 넘어갔는데 고신대 지인이 알려줘서 형님께 믈으니 "내가 평생 교회밥 묵고 살았잖아. 우리 아들 교회에서 키워 주셨는데 감사할 줄 알아아지." 하고 답했습니다.

선교지에가서 이중틱 장애를 겪던 어린 아들이 "정상으로만 살게 주세요!." 기도했는데 미국에서 변호사가 돠었습니다. 그 아들이 보내준 용돈을 모아 고신대 태권도 학과에 장애를 가진 어머니를 둔 학생과 가난한 학생 2명을 매달 30만원씩을 아무도 모르게 도왔습니다. 정작 자신은 5년 동안 사시사철 어디를 가던지 늘 친구인 홍영화 본부장이 사준 바지 한장만 입고 살았습니다. 보다 못해 바지 하나 새로 사라고 했더니, 새 바지 사서 입고 좋다고 자랑을 하더군요. 얼마냐고 물으니. "만원!"

그렇게 아낌없이 나누고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다가 그는 우리 곁을 떠나 갔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완벽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뭘 잘 잃어 버리고 물건을 자주 떨어뜨리고 어디에 폰을 두고 오고 늘 손이 많이 가는 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이 더 이상 뭘 잊어버리지도 읺고 차태우러 오라고 하지 않아 섭섭할 거 같습니다. (이하생략, 서근석 인도선교사) 

사랑했던 이를 떠나보내는 것은 언제나 특별하고, 깊은 슬픔이 깃드는 순간이다. 떠나는 이들은 영원한 안식 속으로 평온히 들어 가지만, 남겨진 이들의 마음에는 허전함과 후회가 남는다. 떠나보낸 빈자리를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얼마 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머니를 주님께 보내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이별의 아픔과 빈자리가 주는 허전함이 내게도 깊이 남아 있다. 

 

지금의 순간에 최선을

 

이 선교사님은 항상 마음씨 좋은 형님 같은 소탈함과 소박한 웃음을 가지셨다. 그는 미래에 대해 하나님께 ‘툭’ 던져 두듯이 마음을 두고 살으셨다. 내가 가진 몇가지 어려움들을 함께 의논했을 때도, 아주 쉽고 간단한 말들로 정리 정돈해 주셨다. 삶이 복잡하지 않았다. 자식의 일로 인해 나에게 부탁을 할 일이 있어도, 항상 부담스럽지 않게, 주님께 맡기며 말을 끝내셨다. 실제로. 그 믿음위에 그대로 역사하셔서, 하나님께서 자녀들도 복되게 하신 것을 보았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를 한번 물은 적이 있는데, 툭하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종종 지금의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지나간다. 오늘이 지나고 나서야 후회를 남기게 된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마음을 다해 살아가며 소중한 사람들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기회를 사는 것이다.” 삶이 바쁘다고 해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덮어두기보다는, 오히려 그 바쁜 순간 속에서도 순간순간 사랑을 나누고, 바로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를 소중히 여기는 삶,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참되다는 뜻이다. 그렇게 현재에 최선의 웃음과 사랑으로 살았기에, 비록 이 땅의 삶을 짧게 마무리했지만, 모두가 그의 삶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하늘이 준 특별한 기회, 현재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루하루가 분주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사람들과의 시간을 자꾸 미루게 되는 순간들이 많다. 그러나 주어진 오늘,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해 사랑을 전하는 일은 곧 우리가 지켜가야 할 소중한 사명이자 하늘이 우리에게 주는 특별한 기회이다. 그런 이들에게는 성경이 말하는 “성도의 죽음을 축복”이라고 한 의미가 그대로 살아나는 것을 본다. 

죽음은 단순히 인생의 끝이 아닌, 오히려 영원한 삶으로 가는 문이다. 성도에게는 죽음이란 고통의 끝자락이 아니라 한순간의 편안한 잠과도 같고, 다시 깨어날 새로운 영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렇게 아름답게 살다간 사람과의 천국 재회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지금 이땅의 산자가 가지는 죽음에 대한 감성도 결코 두려움이 아닌 기대감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죽음이후에 남기게 되는 것

 

이 세상을 떠난 뒤 남는 것은, 결국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남긴 사랑과 믿음이다. 그래서 참된 믿음의 성도들은 죽음을 앞두고 “울지 말고 찬양하라”는 말을 남기곤 한다. “내 장례식에는 검은 넥타이, 검은 옷 입고 오지 말고,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오라. 슬픈 장례식 찬양말고 힘차고 기쁜 찬송을 불러라" 등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께로 돌아간다는 기쁨으로 그 시간을 맞이하는 것을 본다. 죽음이 새로운 시작이자, 영원한 삶으로 이어지는 문임을 믿기에 가능한 일이다.

삶의 끝에서 성도는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며, 사랑과 믿음을 유언으로 남긴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의 이별이 아닌, 살아 있는 이들에게 신앙과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중요한 순간이 됨을 본다. 그 사랑의 유산은 남겨진 이들이 이어받아 삶의 길을 걷게 하고, 신앙의 길을 이어나가게 한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자주 오늘의 소중함을 잊곤 하지만, 우리의 삶을 매 순간 의미 있게 보낸다면 그 순간들이 하나하나 모여 큰 의미를 만들어갈 것이다. 하늘의 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성도는 세상의 상과 비교할 수 없는 깊은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수고와 헌신을 아신다는 사실 하나로 만족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의 가치일 것이다.

 

그리스도인, 은혜의 선물

 

이 가을, 우리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은 큰 은혜의 선물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은혜를 되새기며, 우리에게 주어진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길 수 있기를 바란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지나가지만, 지금 이 순간 사랑을 나누고 마음을 전하며, 걱정하지 말고 사는 일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진다. 오늘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주어진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랑을 전하는 일을 지금부터 시작할 수 있다. 지나가버린 시간 속에서 아쉬움을 남기는 대신, 지금 있는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사랑의 진심을 전하며 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일 것이다.

가을은 다시 찾아오지만, 우리 인생의 순간들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오늘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사랑하며, 소망가운데 살아가자.

davidnjeon@yahoo.com 

11.0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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