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대외활동의 원칙 대외활동이나 연합사업에 참여하면서 세운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1)광역목회다 교단 일이나 연합사업에 참여하면서 ‘세계는 나의 교구’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러나 경계할 것은 대외활동을 빌미로 목회를 소홀히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침체에 빠진 총회를 전도하는 총회로 총회 전도부장 시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필자가 속한 예장통합 교단의 경우 지속 성장이 둔화되면서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을 무렵 총회 전도부장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필자의최대 관심은 ‘어...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주일 낮 설교는 초신자들을 겨냥한 전도설교로 구성했고, 주일 저녁 설교는 전도의 이론과 실제를 아우르는 훈련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수요일 저녁은 성경공부 교재를 만들어 전도의 이론과 현장을 연결하는 고리를 찾는데 힘을 쏟았다.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회집되는 교인 숫자가 곧 성공 목회의 가늠자일 순 없다. 그러나 교인 수=대형교회=성공 목회라는 등식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것도 바른 척도는 아니다. 분쟁과 다툼의 현장에서 전도와 부흥의 현장으로 1976년 5월 부임한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1)인정해야 한다 그들도 사람이고 하나님의 종이고 목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시차가 있을 뿐 그들도 정규 신학수업을 거쳤고 목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수했다. 물론 나이 차도 있을 수 있다. 이 모든 사실과 현실을 그대로 인...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1)인정해야 한다 그들도 사람이고 하나님의 종이고 목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시차가 있을 뿐 그들도 정규 신학수업을 거쳤고 목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수했다. 물론 나이 차도 있을 수 있다. 이 모든 사실과 현실을 그대로 인...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총회장 재임시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장을 겸임했다. 군사정부가 이어지는 동안 민주화와 사회참여가 KNCC의 정체성을 대표하고 있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고 형극의 길을 걸어야 했다.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이라는 ...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필자는 부총회장 후보라면 누구나 해야 된다는 전국노회 순방이나 지역 방문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올 필요가 없다, 우리가 알아서 한다”라고 책임을 져 주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모하고 무리한 생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
필자의 경우 자의 반 타의 반이긴 하지만 맡은 일이 많았다. 목회자의 텃밭은 교회목회라야 된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었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동서남북을 차단한 채 오로지 목회만을 고집할 수 없는 것이 필자의 목회 정황이었다. 그때마다 목회란 굉장히 포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