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Senior) 선교사 동원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홍수 때에는 마실 물이 적다.”라는 말이 있다. 물이 가장 많을 때 마실 물이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21세기는 교회마다 앞다투어 선교를 부르짖는다. 헌데 의외로 선교 헌신 자들은 가뭄에 콩 나듯 하다. 확실히 주님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은”(마 9:37) 때이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청년들이 선교적 소명을 받으면 계산치 않고 용수철처럼 뛰쳐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있는가? 청명한 부르심이 있는데도 사람들이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며 몸을 사린다. 우리 속담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라고 했다. 세계선교는 지상 교회가 받들어야 할 멈출 수 없는 과업이다. 이를 위해 시대마다 쓰임 받던 부류가 있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선교환경이 어려워졌다. 전통적인 선교 방법으로는 그 한계성이 크다. 새로운 돌파가 필요하다. 이제는 시니어들이 뭔가 역할을 할 때이다. 시니어들은 청년들에 비해 약점이 많다. 하지만 저들이 갖지 못한 전문성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반응이다. 갈렙이 85세에 “이 산지를 주소서”라고 했듯이 우리도 하늘 부름 있기까지는 진취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은퇴했다고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유유자적(悠悠自適) 생활은 사명자에게 어울리지 않다. 

 

1. 시니어 선교사로서 합당한 사람

 

누가 시니어 선교사로서 합당한 사람인가? 나이 들고 은퇴했다고 모두가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첫째 순수한 동기이다. 찾는 이 없고 불러주는 곳 없으니 선교지로 가 무료(無聊)한 생을 새롭게 엮어 보고자 하는 의도는 불순하다. 선교지는 휴양 터가 아니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오직 일념으로 현지의 영혼들을 사랑하며 모든 정열을 쏟아붓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둘째 건강한 체력이다. 몸이 아프면 사역은커녕 주변 동역자들에게 부담을 준다. 대체로 제3세계는 의료 환경이 열악하기에 판단을 잘해야 한다. 셋째 전문성의 노하우이다. 선교지에 뭔가 보탬이 될 만한 자기만의 주특기가 있어야 한다. 일반적인 일은 현지에서 다 조달가능하다. 여기서 전문성이란 꼭 영성분야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넷째 온유한 마음이다. 선교는 혼자서 할 수 없다. 사역지에 가면 젊은 선교사들과 동역을 해야 한다. 이때 자칫하면 상전 노릇 하려는 습성이 나오기 쉽다. 철저하게 현지 리더십을 존중하며 원로로서 여러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따뜻한 심성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재정 능력이다. 원칙은 자비량이다. 연금이나 그간 모아 둔 저축액 등을 사용하면 다른 이에게 손 안 벌리고서도 능히 거할 수 있다. 만일 그것마저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통해서도 필요를 채우실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는 길이 있기 마련이다.

 

2. 모범적인 사례인 이관숙 선교사

 

고(故) 이관숙 목사는 1924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월남한 그는 1950년 의무관(중위)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해 가을, 중동부 전선에서 지뢰를 밟아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그는 당시의 절망을 "하늘과 땅이 딱 붙어버렸으면 좋겠다.”라고 표현했다. 목발을 짚고 군문(軍門)을 나선 그는 한경직 목사의 소개로 연대 재활의학과의 R. A. 토리 박사를 만나게 되었다. 토리 박사는 그에게 “진짜 다리” 같은 멋진 의족을 선물했다. 그는 하늘을 날 것 같았다. 그는 토리 박사로부터 12년간 지성으로 의수족 제작기술을 익혔다. 이 목사는 1966년 미국 의수족 회사의 초청으로 도미했다. 그는 미국에서 목사와 의수족 기술자로 22년간 활동했다. 그는 은퇴를 앞두고 1987년 부인과 함께 동남아를 돌아보았다. 마지막 사역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는 중국의 장춘(長春)과 하얼빈(哈爾濱)에서 장애인 집단 작업 현장을 돌아본 후 그 열악함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미국 생활을 접고 1988년에 중국으로 날아갔다. 그의 나이 64세 때였다. 이때부터 시작된 의족 사역은 중국 각지로 이어졌다. 수많은 장애인들이 대지를 딛고 일어섰다. 산둥(山東)성에 사는 장하이디(張海迪.35)여사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음악가이자 작가였다. 그녀는 다섯 살 때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헌데 그녀가 의족을 딛고 치마 차림으로 일어섰을 때 중국 전체가 놀랐다. 그는 중국 여러 곳에서 16년 동안 7천여 명의 불구자를 진찰했다. 그 가운데 3천5백여 명에게 의수족을 무료로 달아줬다. 그가 양성한 중국인 의수족 기술자만도 450여 명에 달한다. 이에 중국 정부는 한. 중 수교 직후인 92년 12월 외국인에겐 처음으로 명예훈장인 “유자우(孺子牛)”상을 수여했다. 유자우란 “싼 여물을 먹으면서도 큰일을 해내는 소(牛)같은 인물”이란 뜻이다. 그는 당시 장애인의 아버지로 통할 정도로 폭넓은 존경을 받았다. 이관숙 목사는 향년 80세인 2003년 한국, 미국, 중국 등에서 고단한 여정을  마치고 영원한 하늘나라로 갔다. 그는 미주 한인장로회 총회장까지 역임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의족을 한 장애인이었기에 은퇴 후 안락한 삶을 추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목사는 제 4막 인생을 중국에서 선교사로 불꽃처럼 살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의 헌신과 사랑의 여운이 사멸되지 않고 은혜입은 종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쓰시는 사람의 부류가 있었다.

시니어들은 청년들에 비해 단점이 많지만 장점도 적지 않다.

선교적 공헌은 인간적인 조건이나 년 수보다 온전한 헌신에 달려 있다.

3. 제도적이며 전략적인 관점

 

“시니어 선교사로서 나가겠다.” 이러한 사람에 대해 오늘날 교회의 분위기는 상당히 냉소적이다. 이유인즉, 세상의 관례는 젊어서 일하고 나이 들어서는 놀며 쉬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퇴한 시니어들은 대부분 봄바람에 흔들거리는 수양버들 나무처럼 말년을 보내고 있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인생의 행복 조건이란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손에 일이 있으며, 앞에는 이상(꿈)이 있을 때”라고 말했다. 불세출의 철인도 이렇게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했다. 그렇다. 인간이 호홉을 하고 있는 한 뭔가 가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주님을 위해 한평생 살아온 사람들은 사역과 존재 자체를 분리할 수 없다. 따라서 100세 시대가 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구조적으로 재조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먼저 기존 선교사들에게 적용되는 은퇴시기를 없애는 것이다. 꼭 생물학적 나이 70으로 자를 필요가 없다. 각자의 형편과 상황에 따라 은퇴시기를 자율화함이 마땅하다. 설사 저들이 은퇴하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해도 기댈 곳이 없지 않은가? 피차간에 부담이다. 선교사는 병들지 않는 한 현지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임해야 한다. 또 다른 한 면은 시니어 선교사 파송 건이다. 영적전투현장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헌신된 한 사람이 절실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목회자를 포함 은퇴한 고급인력들이 수두룩하다. 교회는 저들에게 강한 선교적 도전을 해야 한다. 모병-훈련-파송-관리를 위해 제도적으로도 보완되어야 한다. 시니어들은 그 강점이 극대화되고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서는 전문 선교단체에 속하는 것이 좋다. 시니어 선교사들에게는 행정적 내규도 획일적일 필요가 없다. 각자의 특성과 나이에 맞게 거주, 비거주 사역을 융통성 있게 적용함이 바람직하다. 

 

맺음 말

 

인생은 누구나 끝이 있다. 헌데 사람들은 자기에게는 끝이 없거나 아예 그것이 먼 훗날 올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 세월은 냉엄하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 끝맺음을 잘해야 한다. 마치 서녘 하늘을 발갛게 물들이는 태양처럼 아름답게 매듭지어야 하지 않을까? 21세기를 사는 시니어들은 건강하고 마음은 이팔청춘과 다를 바 없으며 많은 전문적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저들 중 크리스천들 대다수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사모하며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사회적 제도인 은퇴로 말미암아 말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다. 당사자는 물론 선교적 관점에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종말적 선교 과업에는 너와 내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모든 이가 모든 곳으로 나서야 한다. 현대그룹의 창업주이며 한국 산업화의 기수였던 정주영 씨가 한 모델이다. 그는 남북통일의 물꼬를 트기 위해 1998년 6월 16일 판문점을 통해 소 500마리를 끌고 북한으로 갔다. 그때 이 광경은 세계로 송출되었다. 그의 나이 83세 때였다. 정 회장은 나이 들어갈수록 더 왕성하게 살았다. 이 기백(氣魄)이 한인 모든 시니어들에게 흐르기를 소망한다.

Jrsong007@hanmail.net

06.01.2024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