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 팀의 참사(慘事)와 선교적 적용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아프다. 참담(慘憺)하다. 어떻게 아시아를 대표하는 맹주로서 FIFA 랭킹 23위인 한국 축구가 랭킹 134위인 인도네시아에게 나가떨어질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The 2024 AFC U-23 Asian Cup 대회는 금년 파리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 있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매번 본선 무대에 올랐던 한국은 이날 8강에서 탈락하면서 10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 축구가 올림픽 무대에 오르지 못한 것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대회 이후 40년 만이다. “도하 참극이자 한국 축구의 대재앙”이라 불릴 만큼 실망스러운 경기 결과에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우리가 다 아는 바 축구는 수많은 운동경기 중 하나가 아니다. 일종의 국기에 가깝다. 월드컵 대회에서 보듯 국가대항 경기가 있는 날이면 마치 나라의 운명이 걸린 것처럼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다. 이번에 우리는 대한민국 축구의 추락을 보면서 선교적으로 적용해볼 필요가 있다. 한인 세계선교, 이대로 가도 좋은가? 우리는 왜 열방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쏟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곳에서 배척당하고 있는가? 드러나는 현상은 누적된 원인으로 말미암는다. 이참에 우리 선교계는 축구계의 난맥상(亂脈相)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혁신이 일어나길 소망한다.

 

1. 정신적인 안이 함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 최선을 다 한다." 인터넷 자료에 의하면 200킬로 체중의 호랑이가 토끼를 쫓을 때 100미터를 5초에 달리는 속도로 전력 질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사에 최선을 다 해야지 약자라고 깔보면 안 된다는 교훈이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대표 팀은 인도네시아 팀을 얕본 게 사실이다. 그간 한국U-23 팀은 인도네시아 팀에 5전 전승으로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구지 FIFA 랭킹 따지지 않더라도 전력상 우위에 있었다. 결국 안이한 태도가 쓰라린 패배로 이어졌다. 선교현장도 마찬가지이다.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 선교는 힘의 논리가 지배해왔다. 1801년부터 1900년까지 서구 열강들이 제 3세계 나라들을 식민지화하면서 선교사들도 군인, 상인들과 함께 입국했다. 저들 눈에는 경제나 문화가 낮은 약소국들의 사람들이 수혜의 대상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제국주의적 선교의 큰 오류였다. 한인 선교는 어떠했나? 우리는 국력이 뒤진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들을 대할 때 너무 쉽게 상대하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현지인을 하인 부리듯 함부로 대하면 언젠가 되치기 당할 수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누구를 만나든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섬기는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

 

2. 전술 전략의 패착

 

U-23 한국 축구 대표 팀은 4/26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인도네시아와 연장전까지 갔다. 스코어가 2-2 무승부여서 승부차기에 들어갔고 최종 10-11로 지고 말았다. 한국 팀은 이날 경기에서 슈팅 숫자도 6대21로 밀렸다. 인도네시아 팀은 조직력, 체력, 스피드, 팀워크에서도 한국보다 앞섰다. 8강전에 앞서 인도네시아 팀은 우승 후보인 호주를 꺾었고 중동의 강호인 요르단을 4:1로 격파했다. 이러한 승리가 어찌 우연인가? 신태용 감독은 인도네시아 팀을 맡은 후 4년 동안 주도면밀한 준비를 했다. 특히 유럽 프로팀에서 뛰고 있던 인도네시아 출신 2중국적 자들을 여러 명 귀화시켰다. 이에 비해 황선홍 감독은 상대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전술적 패착도 있었다. 그는 이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재미를 보았던 쓰리 백(3-back)을 고수하며 수비라인을 뒤로 내렸다(황 감독의 실수 인정). 이에 인도네시아 선수들은 리듬과 기(氣)가 살아나면서 빠른 역습으로 뒤 공간을 파고들었다. 한국 팀은 전반에만 2골을 먹었다. 한인 선교의 최대 강점이면서 약점은 무엇인가? 용감하다는 것이다. 마치 낙하산 타고 투하되듯이 돌진하며 빠른 시일 내에 결과물을 내려한다. 이런 성급한 시도는 현지 나라에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밀리게 된다. 우리 선교는 좀 더 멀리 내다보고 선교지에 대한 역사, 문화, 종교 등 심층적인 연구가 선행된 가운데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무엇보다 옆 나라에서 성공적 사역모델이라고 무조건 이식하면 안 된다. 일본은 일본이고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이다. 그 나라와 족속에 맞는 맞춤형 모델을 창안함이 관건이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운동경기를 인생에 비유하고 있다.

한국 U-23올림픽 축구 대표 팀의 실패는 예견된 인재(人災)였다.

한인 세계선교는 행정구조와 사역전략에서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

3. 패권적 지도체계

 

대한 축구협회는 지난해 3월, 논란 속에 독일인; 위르겐 클린스만을 A대표 팀 감독에 선임했다. 그가 감독으로서 무능하다는 우려가 뒤따랐으나 밀어붙였다. 결국 아시안컵에서 처절한 실패를 맛보았으며 그는 퇴출되었다. 후폭풍 속에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가 새로 꾸려져 새 사령탑 선임 작업에 나섰다. 정해성 위원장은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며 올림픽 대표 팀 감독인 황선홍을 A대표 팀 임시감독으로 겸임케 했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해설가로서 정평이 나 있는 박문성 위원은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축구협회와 황 감독이 스스로 폭탄을 끌어안게 됐다”고 표현했다. 그의 예견대로 최악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 감독으로 하여금 투 잡을 뛰게 한 축구협회의 결정이 회복할 수 없는 무리수가 된 것이다. 손태규 교수는 이 모든 원인이 “대한축구협회를 전문성이 없는 정몽준16년, 정몽규 11년 등 27년째 족벌체제가 집권함으로서 기인한다고 여겼다. 인사는 만사다. 한인 선교의 의사 결정체계는 어떠한가? 교단 선교부의 이사장 자리는 노른 자리에 해당된다. 대개 총회장 빽을 가진 사람이나 아니면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맡는다. 교회 해외 선교부장도 전문성보다는 힘 있는 장로들이 돌아가며 역임한다. 축구계든 선교계든 이런 지도부 구성은 인맥을 형성하게 되며 안으로 썩게 된다. 당연히 그 판단들도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

 

4. 엘리트 위주 정책

 

한국은 국민 대다수가 참여하는 생활체육보다 재능이 있는 소수 정예를 차출하여 유명 지도자에게 집중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게 하는 엘리트 체육중심이다. 만일 저들 선수들이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큰 경기에서 입상을 하면 국민적 영웅이 된다. 왜냐하면 선수들은 스포츠 경기를 통해 국위를 선양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며 경제적 파급효과까지 낳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유의 선수가 되기는 쉽지 않다. 인터넷 자료에 의하면 한국에서 축구하는 초, 중, 고, 대학의 선수들 중 K리그 입단하는 사람은 고작 상위 0.78%이다. 국가대표가 될 확률은 0.38%이다. 한 마디로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하지만 세상은 비정하다. 이름을 날린 극소수의 선수 외에 99.62% 낙오자가 된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엘리트체육과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 생활체육이다. 이는 국민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자발적으로 운동하는 신체활동을 의미한다. 국제 스포츠 대회를 관람하며 즐기는 엘리트 체육보다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생활체육이 더 중요하다. 이는 국민 건강을 담보하며 선수 인재풀을 넓히는 효과도 있다. 한인교회의 선교 구도는 어떠한가? 2원화 되어 있다. 엘리트 체육처럼 모판이 좁다. 0.2% 정도의 선교사들만이 전면에서 뛰고 절대 다수의 성도들은 지상과업에서 아예 뒷짐을 지고 있다. 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 선교가 인구 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한 주된 원인이 여기에 있다. 방책은 엘리트 체육 기조 위에 생활체육을 강화해야 하듯 선교도 파송 받은 사람들 외에 모든 성도들이 동원되도록 구조를 일원화해야 한다.

 

맺음 말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의 주역이었던 이천수는 최근 한국 축구가 10년 후퇴하게 되었다고 탄식을 했다. 이번 참사는 파리행 티켓을 향해 부푼 꿈을 꾸었던 우리 선수들에게는 처절한 악몽이 되고 말았다. 저들 유망주 태극전사들은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막히게 되었다. 연금을 탈 수 있는 기회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세계 축구계에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올림픽 장이 닫히고 말았다. 땡볕 아래서 땀방울이 피 방울이 되도록 뛴 저들의 한탄이 얼마나 클까? 금 번 사태는 비단 선수와 축구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불명예를 떠안게 되었다. 선교현장은 스포츠처럼 정기적인 이벤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누룩처럼 하나님 나라가 퍼져나간다. 이 종말론적 거룩한 사역에 속도감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뭔가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것은 “모든 이가 모든 곳으로!”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처럼 선교사, 파송기관, 후원교회, 교단, 모든 성도들이 각자의 소명과 은사를 따라 톱니바퀴처럼 네트워크 되어 사역적으로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그 시발점은 결정권을 가진 지도부에 달려있다. 최근 한국 축구계의 패착(敗着)이 우리 선교계에 큰 경종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Jrsong007@hanmail.net

05.11.2024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