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Ramadan)에 대한 이해와 기독인의 자세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전 세계 18억 무슬림이 한 몸체처럼 투쟁을 하고 있다. 저들은 라마단 한 달 동안 매일 해가 뜨고 질 때까지 금식하며 메카를 향해 하루 5번씩 절을 하고 있다. 이 광경을 위성사진으로 한 눈에 볼 수 있다면 소름끼칠 것이다. 저들은 해마다 이 고통의 한 달을 통해  동질성(Unity)을 회복하며 공격적으로 대오(隊伍)를 맞추고 있다. 이슬람의 도전은 하나의 쓰나미에 비교된다. 기독 넷 자료에 의하면 “지난 50년간 이슬람은235%를 넘는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상대적으로 기독교는 47%”일 뿐이다. 서유럽은 이미 이슬람의 영향권에 들어갔으며 한국도 저들의 사역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추세로 나간다면 30년, 100년  후 어떻게 될까? 그 수치를 계수하며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맥락 가운데  라마단이 있다.  이 기간은 이슬람의 영적 도전과 긴장감이 일 년 중 최고점에 해당 된다. 우리는 긴장감이 팽팽한 이 때  라마단에 대한 이해를 하며 부활의 능력으로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두움의 먹구름은  오늘도 소리 없이 우리 곁으로 한 발자욱 씩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라마단의 유래와 계율

 

라마단은 이슬람교도들의 성월(聖月)이자 단식 월이다. 라마단(ناضمر)이란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을 가리킨다. 그 명칭은 아랍어로 “타는 듯한 더위와 건조함”을 뜻하는 “라미다(ramida)” 또는 “아라마드(arramad)”에서 유래되었다. 이 때에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Mahomet)가 천사 가브리엘(Gabriel)로부터 코란을 계시 받은 달로 여겨 신성시 하며 금식을 강요한다. 라마단의 금식은 푸아사(PUASA)라고 하며 모든 무슬림이 따르는 5대 의무 중 하나이다. 이는 30일 동안 해가 뜬 후부터 질 때까지(대체로 오전 6시-오후 6시) 음식은커녕 물조차도 마시지 않는다. 어떤 이는 침까지도 삼키지 않기 위해서 땅에 뱉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흡연, 성행위, 폭력, 화, 시기, 탐욕, 중상, 음행 등 반 종교적인 행위를 삼가 한다. 단, 건강상 이유로 병자나 임산부, 어린 아이들 (일반적으로 7~8세가 기준)은 제외되며,  군인과 사막을 여행하고 있는 자 그리고 끼니를 안 챙겨 먹었다가 목숨이 왔다 갔다 할 만한 사람들도 제외된다. 생리 중인 여성도 제외되는데 나중에 빠진 기간만큼 보충해야 한다. 

 

라마단 기간의 실태와 풍습

 

라마단은 이슬람권에서 종교 활동의 범위를 넘어 하나의 생활 문화이다. 무슬림들은 라마단 한 달은 낮에도 밤에도 분주하게 지낸다. 낮 시간 동안 사회 활동을 하고 밤 시간 동안 먹고 마시다 보니 심신이 지쳐 있는 무슬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 달 동안 하루를 쪼개 2교대 근무를 하는 셈이다. 라마단 기간에 심야 폭식으로 인한 체중 증가도 스트레스 요인이다. “금욕의 달” 라마단엔 오히려 평균 음식 소비량이 평소보다 30~40% 이상 증가한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폭식은 건강에도 안 좋고, 바르지 못한 라마단 수행 태도”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음에도, 낮 동안 굶었던 이들은 밤에 과식을 하기 마련이다. 아무튼 통계에 의하면 라마단 기간은 일 년 중 무슬림들에게 가계의 소비지출 가운데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엥겔지수(Engel's Coefficient)가 가장 높은 때라고 한다. 라마단을 축하하는 풍습도 바뀌고 있다. “라마단 카드”는 이제 어엿한 문화상품이 됐다. 인터넷 공간에선 “e카드”가 유행한다. 집집마다 상점마다 형형색색의 라마단 장식 등 “파누스”가 밤이 되면 더욱 축제 분위기를 돋운다. 캐럴만 없다 뿐이지, 기독교의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신문과 방송, 각종 전단지마다 라마단 특수를 노린 광고가 넘쳐난다. 라마단 특수는 일 년 매출액의 30~40%를 차지한다. 라마단이 “과식과 쇼핑의 시간으로 전락했다”는 탄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라마단의 주된 목표와 기독교 시각에서 해석

 

인간에게 욕망은 경건의 대척점에 있다. 인간은 본시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영적인 목마름이 없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교도들이 금식을 통해 개인적인 과실과 악행을 속죄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아보며 알라 신에 대한 복종을 나타내게 한다.  저들은 이렇게 금식을 하면 하늘의 상급이 증가하고 알라로부터 복의 복을 받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인간이 하루 만의 금식도 쉽지 않는데 그것도 한 달간이나 금식하며 일상을 영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생활 양태 하에서는 인간이 비인간화되기 쉽다. 이슬람의 계율은 매우 엄하다. 그 신앙은 신도들에게 관념적이기 보다 실제적인 행동을 요구한다. 이슬람교는 대체적으로 제정일치를 추구한다. 코란의 내용을 국가차원에서 통치에 적용하며 하나의 문화로 귀착하게 한다. 따라서 현세적 사람은 물론이고 여기서 태어난 후세들은 이 체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생내적으로 이슬람 문화에 체질화된 인간은 그 사상에 대한 객관적 판단 자체를 터부시하며 결과적으로 맹종하게 된다. 라마단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과연 그들 중 라마단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자는 얼마나 될까? 사회의 분위기나 혹, 후한이 두려워 행세하는 자는 없을까?   같은 하늘 아래 행복을 누리며 자유롭게 살아야 할 인간이 집체적으로 종교라는 굴레에 묶이어 신음하고 있다는 것은 슬픔이다.

 

금년 라마단은 메카 기준으로 3/10일 – 4/ 8일이다. 

이 때 무슬림들 대부분은 금식하며 치열한 영적 투쟁을 한다.

우리는 계율에 묶인 저들을 위해 탄원하되 한편으로는 도전을 받아야 한다.

 

라마단 때 기독교인의 자세

 

한마디로 이슬람 교리는 타도의 대상이나 사람은 포용의 대상이다. 이를 위해 첫째로 이슬람교와 라마단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일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란 말이 있다. 적을 모르고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로 저들의 고통을 이해하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다. 이는 힘이나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신(성령)으로 되기 때문이다. 신년 특별새벽기도를 하듯 교회가 문제의식을 갖고 공통으로 대응해야 한다. 셋째로 주변의 무슬림들을 판단하며 경계의 눈초리로 대하기보다는 주의 사랑으로 살피며 섬기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키는 사랑 이상 다른 방책이 없다. 구지 십자군 전쟁을 언급하지 않은 다 치더라도 우리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많은 과오를 범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라도 우리 교회는 더 이상 칼이나 힘을 앞세워서는 아니 된다. 넷째는 교회적으로 교단적으로 막힌 담들을 헐고 주안에서 소통하며 이슬람에 대한 체계적이고 연합적 대책을 세워 집행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킹덤 차원에서 교회 안의 모든 에너지를 선교적으로 분출시키는 것이다. 지금처럼 무관심, 무대책, 무능력이라는 3무로 일관할 때 장차 큰 불행을 맞이할 수도 있다.  

 

맺음 말

 

올해도 라마단이 끝나가고 있다. 한 달 동안 낮 시간 내내 금식하며 일상생활 한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이런 계율을 따르다보면 독해지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사막의 독사가 연상이 된다. 저들은 평상시에도 매일 동일 시간대에 메카를 향해 절을 하며 기도하고 있다. 이렇게 단일 대오로 연합을 이루니 팽창할 수밖에 없다. 이슬람은 밀려오는 영적 쓰나미와 다를 바 없다. 저들 교리와 관습에 묶어 고통 받는 사람들이 가련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다. 이에 반해 우리 기독교는 너무나 자유로우며 당파적이다. 혜안으로 밀려오는 영적 먹구름을 직시하지 못하고 오직 내 교회 성장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태평하게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익히 알라. 어두움의 세계에는 결코 자비란 없다. 쓰나미 앞에서는 너도나도 없다. 따라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영안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도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더불어 우리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 끊임없이 청원해야 한다. “18억 인구의 이슬람권에도 구원의 손길을 뻗치소서!”

Jrsong007@hanmail.net

04.13.2024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