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2가지 선교 모델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선교의 모든 원리는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사도행전은 그 중심에 있다. 여기에는 두가지 선교 모델이 있다. 그것은 사도적 선교 모델과 대중적 선교 모델이다. 근대 이후 개신교 선교 역사를 돌아보면 사도적 선교 모델을 근간으로 사역해 왔다. 또 다른 한 축은 무명의 성도들에 의해서 선교가 이루어졌다. 그들은 교회의 파송이나 후원을 받지 않았으며 자연인으로서 자기 직업을 따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마치 바람결에 흩날린 들꽃씨를 연상케 한다. 이런 야생적 선교 모델은 지난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계속 있어왔다. 하지만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COVID19 이후 지금 세상은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각 족속과 나라들의 선교환경은 창의적 접근 지역(CAN : Creative Access Nations)은 물론이고 선교사 비자로 들어갈 수 있는 개방된 지역(OAN: Open Access Nations)에서조차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격변의 시대에 우리 기독교회가 추구해야 할 선교적 방향은 무엇인가? 그 답이 사도행전에 나와 있다.

 

1-1. 사도적 선교 모델의 사례

 

사도행전13장~ 28장에는 바울과 그 팀을 중심으로 하는 선교의 이야기가 나온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를 베이스로 해서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다. 이는 사도적 선교 모델의 전형이다. 이러한 사역의 패턴은 근대 이후 지금까지 기독교회의 선교패러다임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본문에 나타난 바울 선교 여행은 다음과 같다. 바울은 총 14년 동안 4번에 걸쳐 약 14,700km을 동선했다. 제1차 선교는 (행13:1-14:28) AD 46~49경이다. 동반자는 바나바와 마가 요한이었다. 주요 목적지는 구브로와 튀르키에였다. 동선 거리는 약 2,250km였다. 제2차 선교는(행15:36~18:22) AD51~53경이다. 동반자는 실라, 디모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누가였다. 행선지는 수리아 튀르키에, 그리이스, 예루살렘이었다. 동선 거리는 약 4,500km였다. 제3차 선교는 (행18:23~21:26) AD54~58 경이다. 동반자는 디모데와 누가 등이였다. 행선지는 튀르키에, 그리이스, 레바논, 이스라엘이었다. 동선거리는 약4,350km였다. 제4차 선교는 (행27:1~28:16) AD59~62 경이다. 동반자는 로마 경비병, 누가 등이다. 행선지는 이스라엘, 레바론, 튀르키에, 그레데, 멜리데, 시칠리아, 로마였다. 동선 거리는 약 3,600km였다.

 

1-2. 사도적 선교 모델의 특징

 

본문 행전 13~28장에 나타나는 선교 모델은 2,000년 기독교 선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다. 이전까지는 복음이 지역적으로는 팔레스틴, 사상적으로는 시온니즘(Zionism), 민족적으로는 유대인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때가 됨에 성령께서 안디옥 공동체를 통하여 놀라운 일을 하셨다. 비로소 복음이 아시아와 유럽 등 열방과 온 민족으로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그 특징은 첫째 조직화이다.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관계자들의 조직화가 필요하다. 군대가 힘이 있는 것은 조직화가 잘 되기 때문이다. 세계선교를 위해 안디옥 교회가 짜임새 있게 구성되었다. 둘째 파송이다. 안다옥 교회는 최고의 고급 인력인 바나바와 바울을 안수하여 보냈다. 교회가 희생을 감수한 것이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을 보내거나 아니면 자투리 남은 것으로 드리는 제물은 하나님께서 흠양하시지 않는다. 셋째 팀워크이다. 세상만사 모든 이치가 한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과 기관이 힘을 합칠 때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다. 선교는 각개전투보다 여러 사람이 전문화, 분업화, 조직화되어 팀워크를 이룰 때 뭔가를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초대교회 때는 성령께서 사도적 선교 모델을 통하여 놀라운 역사를 하셨다. 하지만 이 모델은 절대 기준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쓰셨던 종들과 사역구조가 달랐기 때문이다. 21세기 적합한 선교 모델을 무엇일까?

 

2-1. 대중적 선교 모델의 사례

 

사도행전 8장에서부터 11장에는 흩어진 사람들의 선교 이야기가 나온다. 첫번째 “흩어진 사람들”은 사도행전 8장에 나온다. 저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큰 박해를 피해 유다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나간 그리스도인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행 8:1). 빌립은 그들 중의 한 명이자 7집사의 일원으로서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행 8:5, 12, 35, 40). 두 번째 “흩어진 사람들”은 사도행전11장에 나온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 11:20-21). 이상 두 번에 걸쳐 언급된 흩어진 사람들은 같은 사람인지는 명확치 않다. 분명한 것은 저들이 유사 문화권(E-2)뿐만 아니라 타 문화권(E-3) 사람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 로마의 백부장인 고넬료(행 10:1-4), 알렉산드리아의 아볼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행 18:24-28)가 나온다. 이 믿음의 사람들이 있기 까지는 누군가가 저들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을 그 곳의 형제들이 나와 영접했다(행28:15). 저들 형제들이란 아마도 오순절 성령강림때 로마에서 온 나그네(행 2:8-10)가 중심이  된 공동체가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다면 바울이 로마에 가기 전에 이미 복음이 선포되어 믿는 자들이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렇게 사도행전에는 여러 곳에서 선교사라는 직함 없이 무명의 사람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선교가 진행되었음을 보게 된다. 

 

21세기 지구촌은 선교의 전, 후방이 없이 하나로 통합되고 있다.

사도적 모델은 조직적이며 선택받은 소수를 통해 하는 선교사역이다.

대중적 모델은 자연적이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선교적으로 동원하는 일이다.

 

2-2. 대중적 선교 모델의 특징

 

대중적 선교 모델은 성경뿐만 아니라 역사 가운데도 수없이 있어 왔다. 신학자 브루스(F.F.Bruce)는 “영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 곧 고올(Gaul) 지방에서 온 상인들이었다”고 소개했다. 중세에는 모라비안 교도들과 바젤 선교회 역시 대중적 선교운동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저들은 모두가 자기직업을 가지고 생계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선교 사역을 했다. 대중적 선교모델은 비 제도권 선교이다. 선교의 주체는 모든 성도들이다. 선교의 대상은 모든 사람들이다. 선교지역은 광범위하다. 조직은 없으며 자유롭다. 재정은 후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파송교회는 따로 없다. 선교전략은 자유롭다. 복음의 수용성은 비교적 반발이 없다. 이 밖에 대중적 선교 모델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정체성이다. 선교를 감당하고 있음에도 자신을 선교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 조직이다. 파송교회나 선교단체 같은 기관이 없다. 셋째 의도이다. 자발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한다. 누군가에게 보고 해야 할 책무도 없다. 넷째 방법이다. 획일적이지 않다. 직업 따라 이동하며 삶의 현장에서 복음전파를 한다. 다섯째 재정이다. 후원을 받지 않고 자비량 사역을 한다. 풀뿌리 선교를 제창한 손창남 선교사는 “요리는 요리사만 하는 것이 아니다. 노래는 가수만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선교는 파송 받은 선교사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부과된 준엄한 책무이다.” 백번 천 번 맞는 말이다. 

 

맺음 말

 

위에서 보듯 사도행전에는 선교를 위해 사도적 모델과 대중적 모델이 제시되고 있다. 이 두 모델은 하나님의 선교에서 이원적 사역 구조가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하나였다. 단지 각각 은사와 소명을 따라 그 직임이 달랐을 뿐이다. 하지만 기독교회는 지나간 2천 년간 사도적 선교 모델을 근간으로 해 왔다. 즉, 교회는 소수의 몇 사람을 선택해 파송하고 나머지 절대 다수의 성도들은 선교에서 뒷짐을 지게 한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선교는 인구 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제 오늘의 기독교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익숙한 관습을 깨고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의 지침은 “모든 이가 모든 곳으로”가는 총제적 선교이다. 지상 과업은 선교사라는 대표선수 몇 명으로 될 일이 아니다. 선교는 특별한 교회나 선교단체의 전유물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전임으로 파송되었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자기 삶의 자리에서 선교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마치 사도 바울이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정신(행20:24)으로 헌신한 것처럼! 사도행전의 선교가 그러했다.

Jrsong007@hanmail.net

 

02.2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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