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에 있어서 최대 시험거리인 금권(金權)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한인 세계선교는 기독교인 수 대비 비율로 볼 때 질과 양적인 면에서 독보적이다. 세상에 한인교회처럼 선교에 열정적인 나라가 어디 있을까? 한인 선교사들은 영성, 지성, 감성, 야성 등 모든 면에서 잘 준비되어 있다. 한민족 특유의 돌파력과 속도감도 있다. 선교사를 보낸 단체나 교회들도 그 열심을 알아주어야 한다. 그러나 빛이 강한 곳에 그림자도 짙다. 한인 선교의 어두운 면이 있다면 무엇일까? 몇 가지를 예로 들 수 있으나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을 언급한다면 금권선교이다. 사역자와 선교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우리는 물질에 상당한 영향을 받아 왔다. 오죽하면 어떤 선교지에서는 교회를 정화하고 독립시키기 위해서 한인 선교사를 철수시켜야 한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부끄러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우리 한인 선교의 양태를 바라보는 현지인 리더십과 서구적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성찰해야 한다. 우리는 장차 피선교지의 역사책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좀 더 단호하게 약한 부분을 개선해야 한다. COVID19로 선교 환경이 바뀐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다.

 

물질 선교를 앞세운 사례

 

우리 주변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금권(金權)적 선교사례가 종종 있다. 모 선교사는 선교 헌신을 하기 전 회사에서 근무했다. 그는 세상 물정에 이해도가 깊었다. 이런 이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후원금이 넉넉했다. 그의 사역 방법은 특이했다. 선교지에서 동역할만한 현지인 일꾼을 찾아 계약을 한 것이다. 내용인즉, 요구사항과 그에 따른 처우(處遇)를 문건으로 작성한 후 사인하게 하였다. 이를테면 기한을 정하고 그때까지 교회를 개척하고 교인 수를 몇 명까지 채우라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 선교회에서 매월 사례비를 주고 거처와 예배처소도 마련해주겠다는 조건부였다. 이는 한국 속담처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식이다. 그의 사역은 초창기에 여러 일꾼을 거느린 회사처럼 상당한 규모로 성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계약에 묶였던 사역자들은 점차 시험에 들고 말았다. 익히 아는 바 물질은 잘못 사용하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특히 선교사역에서 재물로 인한 주종 관계적 리더십은 하나님 나라의 거룩 성을 훼파한다. 물론 열악한 현지사정을 고려해 한시적 지원은 할 수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믿음과 사랑이 선행되어야 하며 조건적이지 않아야 한다.

 

금권을 사용한 선교지 교회

 

일반적으로 한인 선교의 패턴은 현지인을 양육한 후 신학훈련을 받게 한다. 그 후 목사 안수를 주고 전임 사역자로 뛰게 한다. 저들에게는 학생 때부터 장학금을 주고 목회를 할 때도 계속적으로 지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들은 생활이 어렵다. 이뿐 아니라 교회당을 지을 때도 후원교회의 도움 속에 건축한다. 주도자가 현지인이 아니라 선교사의 후원교회이다. 이렇게 하다보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 된다. 재정적 부담이 끝이 없다. 어느 불교권에서 회심한 성도는 자기 교회가 너무 어려워 부처에게 찾아가 도와달라고 빌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물질은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능력이 있다. 시작부터 저들을 의존적으로 이끌면 장성해서도 자립하기 힘들다. 교회적 선교사역은 어떠한가?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는 교회도 뭔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 대표적 사역이라면 교회 창립 10, 20, 30주년 기념일을 맞아 선교지에 개척교회를 세우기를 갈망한다. 사실 제3세계는 문화와 경제력이 낮아 큰 비용을 안 들이고도 교회당을 세울 수 있다. 문제는 선교지의 사람들이 신앙적으로 어리고 교회당 건축에 대한 의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건축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돈으로 하는 선교는 위험성이 크며 세월 따라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기 쉽다. 

 

자립 선교 역사와 신학

 

자립적 선교신학! 이는 철저히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그 일생이 자립적이었다. 제자들을 보내실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 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에 있었던 카타콤 교회는 살아남았다. 문화대혁명이라는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었던 중국 가정교회는 오히려 부흥했다. 바로 자립신앙 때문이었다. 1727년 모라비안들이 짧은 기간에 전 세계에 걸쳐서 선교적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저들은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였으며 누구에게도 지원을 받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기술공들이 많았는데 그것은 자립하기 위해서였다. 반면에 공무원 월급 받는 식의 유럽식 관제교회는 거의 다 죽었다. 자립 선교에 관한 대표적인 이론은 삼자(3S) 삼자 원리(三自原理)이다. 이것은 원래 헨리 벤(Henry Venn)과 루퍼스 앤더슨(Rufus Anderson)이라는 사람들이 주창했다. 하지만 존 리빙스턴 네비우스(John L Nevius)가 21년간 중국에서 선교한 경험을 토대로 소화하여 산출해 낸 실천원리라 할 수 있다. 네비우스는 1890년 내한했다. 그는 당시 조선에 와 있던 미국인 젊은 선교사들에게 이 선교원리를 강의하였다. 그 내용이란 자치(Self-government), 자전(Self-propagation), 자급(Self-support)이다. 이 삼자 원칙은 조선인의 마음속에 있는 독립정신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후에 한국교회 성장에 결정적인 원리로 작용되었다.

빛이 강한 곳에서는 그림자도 짙다.

한인 선교의 가시적 성과 뒤에는 물질이라는 어둠의 요소가 있다.

금세기 선교는 금권을 최소화하며 현지인들이 3자 정신으로 자립하게 해야 한다.

 

한인 선교의 나아갈 방향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늦게 복음을 받아들였다. 당시 한국교회는 이들 나라보다 더 가난했다. 하지만 외국 선교사의 재정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했다. 이렇게 자립하는 교회로 건강하게 성장해 온 한국교회가 유감스럽게도 선교지에서 비자립적이며 의존적 교회를 세우고 있다는 데 이의가 있다. 대체로 외부의 재정 후원으로 지어진 교회는 생명력이 없다. 반면에 시간이 걸린다 해도 현지인 중심의 자립을 지향해온 교회는 건실하게 성장해간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너무 성급하게 자금을 가져와 교회건축이나 프로젝트 형 사역을 하는 일에  조심해야 한다. 세상은 급격하게 변혁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 미션이 전통적인 방법을 탈피해 상황에 맞게 대처해야 할 때이다. 그것은 목회자 선교사보다 자비량 전문인 선교사를 주축으로 파송하는 일이다. 이 원칙은 현지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현지인 사역자들에게 월급 주는 형태는 정말 숙고해야 한다. 또한, 전 세계 5만여 한인교회가 복음 일꾼 양성은 소홀히 한 체 물질로 선교지 교회당 세우는 일에 열심을 낸다면 소망이 없다. 철저히 일꾼 양성에 초점을 맞추되 현지 교회당을 세울 때도 절대 선교지 사람들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맺음 말

 

선교사는 누구나 빠른 시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원한다. 자기를 파송한 단체나 후원교회가 영웅적인 소식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 상대하는 일이 그렇게 뚝딱해서 될 일인가? 오늘 사과나무를 심고 내일 열매를 따 먹을 수 없듯이 선교사역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세월이 흘러감에도 사역적 결과가 미미할 때 선교사는 조급하게 된다. 그래서 간혹 물질로 프로젝트 형 사역을 추진하기도 한다. 그것은 단기간에 가시적인 모양새를 드러내며 선교사가 부빌 언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유념해야 한다. 선교의 핵심은 건물이 아니다. 사람을 얻어 양육하고 그들이 선교의 주체인 성령의 통치 아래서 자립적 신앙으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이 거룩한 사역에 금권사용은 최소한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잘 사용하면 몸에 이로운 보약과 같되 잘못 사용하면 독약이 되기도 한다. 물질은 사역에서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임을 우리는 늘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Jrsong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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