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타이완을 떠 난지 30년 만이다. 그렇다면 이곳 강산이 3번이나 바뀌었단 말인가? 옛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여기 사는 사람들의 소망은 무엇일까? 야릇한 궁금증이 밀려왔다.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하기도 했다. 옛 기억들을 더듬으니 하나 둘씩 주마등(走馬燈)처럼 되살아났다. 야속한 세월이여, 무심한 사람들이여. 우리는 바쁘고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서로 잊고 살았다. 어느새 비행기는 타이완 상공에 이르렀다. 위에서 내려다 본 지형은 큰 고구마 모양을 띠고 있었다. 나는 착륙하기 전 기도를 했다. “주님! 2,400만 영혼들이 거주하는 이 땅을 굽어 살피시옵소서. 저의 발걸음을 인도하사 순적하게 하시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 하옵소서!” 그 사이 큰 기체는 진동을 일으키며 타이베이 국제공항에 안착했다.
1. 타이완 기후와 지형
9/2일 늦은 오후였다. 공항에서 臺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승차장으로 나왔다. 아열대 기후의 여열이 확 다가왔다. 덥고 습한 공기였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등에서 땀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에어컨이 빵빵한 리무진 버스에 오르니 상쾌함이 느껴졌다. 지정석에 앉아 차창 밖 전경을 유심히 살폈다. 평균적으로 5층 정도의 신식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옛날에 비해 인구가 많이 늘어났다는 증거가 아닐까? 건물들 사이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땅거미가 어스름하게 내려져 왔다. 타이완은 중양 산맥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마치 등뼈처럼 가로지르고 있다. 봉우리들의 평균 고도가 3,000m를 넘는다. 섬에서 가장 높은 위산(玉山)은 표고가 3,997m이다. 산맥의 동쪽은 태평양 연안을 끼고 절벽이 계속된다. 그에 비해 서쪽은 비옥한 평야가 완만하게 펼쳐져 있다. 여기 국토는 한국(남한)의 1/3 밖에 안 됨에도 이렇게 험산준령(險山峻嶺)이 있다. 년 중 내내 폭풍우가 잦다. 강우량이 풍성하기에 초목들이 푸르고 싱싱하다. 그러고 보면 사막기후에 시달린 캘리포니아 초목들은 불쌍하기 그지없다.
2. 思恩堂 의 사람들
9/3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주일 날 아침 나는 택시를 타고 교회에 갔다. 1부 예배가 끝나가고 있었다. 杜 목사는 나를 보자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미리 연락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나 반가웠다. 그는 올 해로 38년째 이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두 목사 부부는 나를 인근의 식당으로 안내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늘 청년 같은 그에게도 이제 머리털이 희끗희끗했다. 안타깝게도 두 사모(杜 師母)는 큰 수술 후라 몸이 야위어 있었다. 그간 사역하면서 받은 중압감이 얼마나 컸을까? 나는 옛 교우들의 안부를 물었다. 어려움 가운데 다행히 시앙메이와 지아윈 자매를 연결시켜 주었다. 그들은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들고 황급히 나타났다. 젊고 예뻤던 청년들이었는데 벌써 50대 초반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냉엄한 세월이 미웠다. 교회를 떠나면서 나는 마음 한켠에 쓸쓸함이 없지 않았다. 옛날 함께 예배하며 우정을 나누었던 교우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였다.
포르모사(Formosa)는 포르투갈 어로서 아름다운 섬이란 뜻이다.
타이완은 큰 고구마처럼 생겼으며 이것은 동네 상점 어디에나 있다.
원컨대 주께서 은혜를 베푸사 이 땅의 백성들에게 산 소망을 주옵소서.
3. 내가 좋아하는 타이완의 음식
타이완에는 도처에 식당이 있다. 날씨가 습하고 덥기에 사람들은 집에서 요리하기보다 인근의 식당을 즐겨 찾는다. 나는 품격 있는 고급 식당보다 길 거리에서 파는 음식을 좋아한다. 값도 싸고 편리하다. 바쁜 아침에 거리 음식은 너무나 대중적이다. 5분이면 충분하다. 주된 메뉴는 주먹 밥(飯糰: 판투안), 계란말이(蛋餅 딴빙), 무우떡(蘿蔔糕: 루오보까오), 밀가루 튀김(油條: 요우티아오), 콩물(豆漿: 또우장), 밀크티(奶茶: 나이차) 등이다. 나는 오토바이를 탄체 판투안과 따뜻한 또우장을 마실 때의 그 맛과 기분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예전에 없었던 새로운 타이완의 명물을 발견했다. 그것은 동네 상점 어디에서나 팔고 있는 군고구마였다. 너무 달고 맛있었다. 나는 어렸을 적 고구마를 많이 먹고 자랐다. 인이 박혀 지금도 고구마를 좋아한다. 여기 고구마가 임자를 제대로 만난 것이다. 나는 저녁 식사와 상관없이 매일 고구마를 사 먹었다. 신기한 것은 이 땅 백성의 사랑을 받고있는 고구마가 타이완의 지도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무슨 연고일까? 바라건대 저들도 복음으로 거듭나 군고구마처럼 구수하고 단내 난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4. 한인 선생들과의 만남
나는 이번에 여러 사역자들을 문안하고 그들에게 조금이도고 힘이 되어드리고 싶었다. 그 노선은 臺中(Taichung), 臺南(Tainan), 高雄(Kaohsiung), 臺東(Taitung), 臺北(Taipei) 순이다. 한마디로 해안가를 따라 타이완을 한 바뀌 돈 일정이다. 대부분 옛 친구들은 소재 파악이 안 되었다. 하지만 몇 사람은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감사했다. 만일 저들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허전했을까? 나는 사역의 규모와 내용을 떠나 이렇게 30년 이상 헌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어야 한다고 여긴다. 생각해 보라. 자기 집을 떠나 한달(30일)만 외국에서 살아 보라고 할 때 힘들어 하지 않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3년이 아니요 30년도 넘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낯선 문화권에서 청춘을 바쳐 사역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내가 본 한국 선생들은 서구에서 나온 사람들에 비해 너무나 열악한 지원과 환경 속에 서 있다. 그러함에도 계산적이지 않고 믿음으로 도전하며 남다른 성과를 내고 있다. 저들에게 두고 온 노 부모에 대한 지원이 있던가? 안식년이 있던가? 노후대책이 있던가? 저들의 고독, 아픔, 슬픔, 갈등, 눈물, 뒤척임, 철야, 금식, 기도, 희생, 제사, 섬김, 열망, 감사, 환희를 누가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5. 하나님이 보여주신 신선한 충격
금번 Taiwan Mission Trip를 통해 나는 수고하고 계신 여러 선생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을 격려하기보다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 가장 큰 감동은 高雄의 김선생 부부였다. 그들은 가능한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뒤로 한체 온전히 현지인 사역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는 OMF을 일으킨 허드슨 테일러의 사역방향이기도 하다. 어떻게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저렇게 뛸 수 있을까? 나는 농담조로 말했다. 당신들은 언제 숨을 쉬느냐고? 하나님께서 그 믿음과 수고를 받으시고 사역뿐만 아니라 자손들에게까지 복에 복을 주고 계셨다. 그는 말했다. 아무리 성도들에게 제자훈련을 시켜도 자기가 제자가 안 되어 있으면 모두 헛 탕이다. 백번, 천번 맞는 말이다. 선교의 핵심은 전략이나 기술(Skill)이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나는 김K.M.선생이 20여년 이상 사용하고 있던 성경책을 보았다. 그 중국어 성경책은 첫 장부터 끝장까지 다양한 색깔로 채색되어 있었다. 각 페이지 여백마다 참고 자료인 글씨가 빼곡히 써 있었다. 나는 그 낡고 닳은 성경책을 보면서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갈망하며 선한 투쟁을 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훗날 언젠가 그가 하늘나라로 갔을 때 그 성경책을 받아 한국교회 선교 유산으로 보관했으면 싶다.
맺음 말
9/8 금요일 오후 1시, 내가 탄 비행기는 타이베이 공항을 이륙했다. 나는 지난 1주일간의 여정을 돌아봤다. 지그시 눈을 감고 좋은 소식, 가슴 아픈 사연, 스쳐지나가는 얼굴들을 가슴 속에 일일이 담았다. 내게 타이완 Trip의 물꼬를 터 준 臺中의 김선생, 처음이지만 의기투합된 조선생 부부, 밤새워 얘기 나누며 격려했던 臺南의 김선생 부부, 高雄의 김선생 부부와 현지인 공동체, 臺東의 여장부격인 진 선생, MK 선교사로서 장래가 촉망된 臺北의 박교수 부부 그리고 내가 3년 동안 협력했던 思恩堂의 타이완 동역자들이었다. 난 당신들이 자랑스럽다. 감사하다. 힘내라. 비행기는 창공을 향해 높이 치솟았다. 밖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비는 이내 내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포르모사(Formosa:아름다운 섬)여 안녕 (再见: Zàijiàn)!
Jrsong007@hanmail.net
09.16.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