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중화권 인구는 약 15억이다. 이는 80억 세계 인구의 1/5에 육박한다. 현재 세계 속에서 인구수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중화권의 힘은 서구권과 대비될 정도로 막강하다. 하지만 복음화율은 7% 미만이다. 절대다수인 14억 정도가 비기독교(Non-Christian)인이다. 따라서 중화권 사역이 없이는 아시아 복음화와 세계선교도 요원할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만의 위치와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이곳은 중화권 선교를 향한 항공모함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항공모함은 바다에 떠다니는 해상 기지로서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 대만은 중국을 마주하고 있다. 7천만 화교권의 중심이다. 세계교회는 대만 기독교가 부흥하여 선교적으로 크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대만의 일반적 현황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대만은 중국 본토에서 150km 떨어져 있다. Worldometer자료에 의하면 그 면적은 남한의 1/3 격인 35,410㎢이다. 전체 면적의 64%가 산지이다. 인구는 금년 8/28일 기준 23,927,554명으로서 세계 57위에 해당된다. 이 추세로 나간다면 금년 말에는 2,400만 명을 초과할 것이다. 인구밀도는 676명이며 80.2%가 도시권에 살고 있다. 종족은 98% 가 한족(漢族) 계열이며 2%가 여러 소수민족들이다. 한족 중 84%는 명·청 시기부터 이주해 토착화된 대만인(臺灣人, 내성인 內省人)이고, 14%는 1949년을 전후해서 국민당 정부와 함께 이주해 온 대륙인(大陸人, 외성인 外省人)이다. 소수계 2%는 원주민, 인도네시아인, 외국인 기타 등이다. 공용어는 국어(國語: 만다린어)이다. 이밖에 대만어(台語)와 객가어라 하는 방언과 원주인이 사용하는 대만 제어가 있다. 국가 제도는 입헌 공화국이고 국회는 일원제이다. 국가원수는 총통(總統)이며 임기는 4년 연임제이다. 산업구조는 97.7%가 중소기업으로서 가족 경영체제와 화교상권 네트워크를 근간으로 한다. 2022년 10/11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세계 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에서 대만은 1인당 국내 총 생산 (GDP)이 $35,510로서 일본과 한국을 제치는 것으로 예측되었다. 종교 실태는 불교 35%, 도교 33%, 기독교(천주교 포함)6.3%, 토속 종교, 무종교 순으로 나타났다.
대만의 일반 역사
대만의 역사는 크게 7단계로 구분한다. 1) 선사시대이다. 이때에는 대만에 원주민들의 선조라고 볼 수 있는 말레이-인도네시아 계통의 사람들이 살았다고 추정된다. 대만 내의 약 500여 곳에서 선사 유적지의 출토물이 발견되었다. 2) 네덜란드 식민지 시기(1624∼1662)로서 38년간이다. 1624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대만 남부에 소규모 거주지를 건설하였다. 1642년부터는 동인도회사를 통해 대만을 직접 관할하고 총통을 임명하여 토착민에 대해 과세를 실시하였다. 3) 정성공(鄭成功) 시기(1662∼1683)로서 21년간이다. 그는 대만에서 네덜란드 군대를 몰아내고 반청복명(反淸復明)을 위한 거점을 구축했다. 그와 아들 정경(鄭經)은 대만에서 유교 교육을 실시하고 중국식 관습과 문화를 이식하였다. 4) 반청 시기(1683∼1895)로서 212년간이다. 청(淸)나라는 1683년 군대를 파견하여 대만을 점령하였다. 1822년에는 대만을 청나라의 22번째 성(省)으로 편입시켰다. 5) 일본 식민지 시기(1895∼1945)로서 50년간이다. 일본은 대만을 일본 본토에 대한 식량 공급기지 및 공산품의 소비기지로 만들기 위한 정책을 폈다. 6) 중국국민당 시기(1949~1995 )로서 46년간이다. 1949년 5월, 당시 국민당은 대만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30만 명의 군대를 진주시켰다. 같은 해 12월, 중화민국 정부는 대만으로 완전히 이전하였다. 7) 민주화 시기(1996~현재)로서 27년간이다. 1996년 3월 23일에는 최초의 총통 직접선거가 시행(리덩후이 재선)되었다. 이로써 대만은 중국국민당 일당독재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
대만을 불안케 하는 3요소
먼저 영적인 측면이다. 일반적으로 섬에는 악령의 힘이 강하게 나타난다. 대만도 예외가 아니다. 단적인 예로 음력 7월은 귀신의 달로 지켜진다. 대만인 다수는 이때 구천에서 떠돌고 있던 영혼이 지하세계로 돌아가기도 하며, 지하세계의 영혼이 이승을 방문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때에는 결혼식이나 개업식 등을 피한다. 주택매매나 이사도 하지 않는다. 운전도 평상시보다 조심한다. 사람들은 귀신을 위로하기 위해 종이돈을 사 태운다. 귀신들도 돈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안타까운 것은 상당수의 크리스천마저도 악령의 세력에 눌려 살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정치적인 측면이다. 중국은 대만과 완전한 통일을 염두에 두고 이에 반할 경우 수시로 위협을 하고 있다. 반면에 지금 집권세력인 민진당은 독립을 지향하나 힘의 균형상 어쩔 수 없이 현 체제 유지가 차선책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에 비해 국민당 세력은 마잉주 대만 전임 총통이 제시한 3불(不統,不獨,不武) 즉, “통일을 추구하지 않고, 독립을 시도하지 않으며,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정책을 지지한다. 정치적인 갈등과 불안이 상존하고 있다. 끝으로 사회적인 측면이다. 자유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쾌락 문화가 범람하고 있다. 도박, 마약, 음란 등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가치를 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청소년과 젊은이들은 가치관과 세계관의 혼돈 속에 전통사상을 거부하며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다.
대만 선교의 나아갈 방향
첫째는 2,400만 명의 영혼 구원이다. 대만은 절대다수인 93.7%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대만 선교가 중국 선교를 위해 가교 역할 기능만 한다면 문제가 크다. 대만 선교의 1차적 책무는 그 땅의 백성들을 죄와 악령의 그늘에서 구출하는 것이다. 대만인을 사랑하지 않고 그들을 이용만 할 경우 선교사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둘째는 대만교회가 선교적으로 동원되는 것이다. 중화권 선교를 누가 가장 잘 할 수 있는가? 대만교회이다. 외국인은 언어와 문화의 한계성을 뛰어넘을 수 없다. 저들이 동족에 대한 부담을 안고 중화권 선교에 올인 하도록 부축하며 일으켜 세워야 한다. 셋째는 선교를 위한 문서와 영상 자료를 개발하는 것이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좋은 무기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훈련된 전도자들이 많다 해도 사역을 위한 좋은 기자재가 없으면 힘을 쓸 수가 없다. 현대는 영상시대이다. 시대변화를 읽지 못하고 교회가 도식적 방법만을 고집할 경우 청소년들은 교회에 발을 붙이기 어렵다.
맺음 말
대만은 비록 작은 섬이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은 곳이다. 따뜻한 아열대성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환경 나아가 풍부한 자원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땅을 아름다운 섬(Formosa)이라 불렀다. 태평양 바다에 떠 있는 외딴 섬이기에 악령들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전천후로 영혼들을 포획해 왔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료 선교사 맥스웰(馬雅各, Dr. James L. Maxwell)은 더글라스 목사와 함께 1865년 영국 장로회 파송을 받아 대만 까오숑에 도착했다. 그는 미신이 많고 교육 수준이 뒤떨어진 곳에서 많은 교회를 세워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하였다. 그래서 맥스웰을 대만 선교의 아버지라고도 부른다. 대만 북부에서는 1872년 캐나다 장로회 소속의 마제(馬偕, Rev. George Leslie Mackay)가 헌신했다. 그는 병원을 세웠으며 설교, 교육, 의술 등 많은 분야에 공을 세웠다. 이처럼 초창기 선교사 이후 언 150년이 흘렀다. 하지만 대만은 여전히 복음화율이 낮고 귀신들이 득세하고 있다. 어찌해야 할까? 대만에서의 영적 싸움은 간단치 않다. 더구나 저들은 15억 중화권 복음화를 위해 큰 사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저들 힘만으로는 버겁다. 우리 한인 선교사들과 교회들이 손을 잡아 주어야 한다. 그 자세는 섬기려고 오신 예수의 모습을 본받는 것이다.
jrsong007@hanmail.net
09.02.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