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의 이민 역사(歷史)와 나아갈 방향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2023년은 한인 미국이민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짧은 역사 가운데 한인은 양(量)과 질(質)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해 왔다. 한국 외교부가 2년마다 발간한 “2021년 외교 백서”에 따르면 미국 내에 거주하는 한인은 총 263만 3,777명으로 집계했다. 이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디아스포라 한인 중 1/3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COVID19로 인하여 닫힌 문들이 열린 지금은 얼마나 될까? 여행객 등 이동 인구까지 합산하면 적어도 3백만 명은 넘을 것이다. 미주 한인 공동체는 그 시작부터 한인교회와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있었다. 이민교회들은 정신적 힘의 근원으로서뿐만 아니라 이민자들에게 동질성을 찾게 하고, 사회 문화적 상호작용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퓨 포럼 (Pew Forum) 홈페이지에 의하면 재미 한인의 종교 실태는 개신교 61%, 가톨릭 10%, 불교 6%, 무종교 23%의 순으로 나와 있다. 기타 통계 등을 종합해보면 미주 한인 중 70% 이상이 개신교도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않다. 이민교회들을 포함한 미주 한인 사회는 산적한 난제들을 떠안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며 나아갈 방향을 모색함이 마땅하다 아니 할 수 없다.

 

1. 미주 한인 이민 역사

 

제1기 이민그룹은 1903~1944 사이에 일어났다. 최초의 공식적 한인 이민은 1903년 1월 13일 증기선 갤릭호를 타고 102명이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면서 시작하였다. 이렇게 노동자, 사진 신부, 유학생들로 구성된 미국의 한인 사회는 1945년 한국이 광복되기까지 하와이에 6,500명가량, 그리고 미국 본토에 3,000명가량이 있었으며, 이들은 미국 주류사회로부터 고립된 생활을 하였다. 제2기 이민그룹은 1945~1964 사이에 일어났다. 이때는 광복과 한국전쟁의 영향이 컸다. 주로 미군 병사와 결혼한 한인 여성, 전쟁고아, 입양아, 유학생 등 총 14,352명의 한인이 미국으로 왔다. 이러한 상황은 1970년대부터 한인 이민자들이 대거 증가하게 되는 기반이 되었다. 제3기 이민그룹은 1965~1991 사이에 일어났다. 1965년에는 미국 “이민법”이 국적별 쿼터 제도를 폐지하고 대신에 전문직 종사자 우선과 가족 재결합이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개정되었다. 이로써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한국인의 집단 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주로 유학생, 객원 간호사와 의사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이들은 국제결혼을 한 한인 여성들과 함께 한국의 가족을 초청하면서 한인 수는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제4기 이민그룹은 1992년 이후 현재까지이다. 이 시기는 1992년 LA 4.29 폭동과 1998년 한국의 외환위기(IMF)의 영향이 컸다. LA폭동으로 말미암아 한인들은 “아메리칸드림(American dream)”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면서 이민 수자가 줄게 되었다. 1998년에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고용 불안정과 발생한 실업으로 인해  2000년부터 다시 이민이 증가하는 추세가 되었다. 전문직종과 투자 이민이 대세를 이루었다.

1620년, 미국을 개척한 최초 청교도들은 102명이었다.

1903년, 미국에 처음 발을 딛은 한인의 숫자도 102명이었다.

재미 한인들은 미국이 청교도적 가치로 서도록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2. 미주 한인교회의 역사 

 

1903년 11월 10일, 하와이 오아후섬에서 미국 최초의 한인 이민교회가 탄생했다. 현재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의 효시인 한인감리교회(Korean Methodist Church)가 이날 첫 주일 예배를 드렸다. 그 후 꼭 4개월만인 1904년 3월 11일 미국 본토에 최초의 한인교회인 나성한인 감리교회(현재의 LA연합감리교회)가 세워졌다. 그다음 해인 1905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상항 한국인연합감리교회가 설립됐고, 1906년에는 제퍼슨장로교회로 불리는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1914년에는 오클랜드한인감리교회, 1919년 시카고한인감리교회, 1921년 뉴욕감리교회 순으로 세워졌다. 1960년 중반에 미주 한인이민교회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민연구센터(Center for Immigration Studies)와 퓨 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에 따르면 새 이민법이 1968년부터 완전히 시행됨에 따라 1970년 초부터 한국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왔는데 바로 그 시기 한인교회가 본격적으로 생겨나게 된 것이다. 당시 교회만이 유일하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이었기에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교회를 찾아오게 된 것이다. 따라서 1970년대는 교회를 개척하며 이식하는(implantation)시기, 1980년대는 교회가 계속 성장하며 정착한(settlement)시기, 1990년대는 교회가 안정된(stabilization)시기, 2000년대 이후는 이민인구가 감소되고 교회가 고령화되면서 성장과 쇠퇴(growth and decline)를 반복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 비영리재단인 “재미한인기독교선교재단(KCMUSA)”은 최근 발간한 2022 미주 한인교회 주소록에 의하면 2021년 10월 기준 미주에 총 2,798개의 한인교회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19년의 3,456개와 비교하면 658개, 곧 약 20%가 감소한 것이다.

 

3. 미주 한인교회와 한인 공동체의 나아갈 방향

 

첫째는 다음 세대들을 신앙적 토대 위에서 Korean American으로서 소명과 은사 따라 정체성을 갖춘 실력자들로 키우는 일이다. 재미 한인 공동체는 이민 1세의 비율이 감소하고 미국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2세, 3세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저들은 이민자인 부모 세대의 불리함과 제약을 뛰어넘어 미국 주류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하지만 타 인종·민족과의 족외혼의 비율이 50%를 넘고, 교육 배경과 문화적 요인으로 인하여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해지는 측면이 있다. 둘째 한인교회들과 공동체는 우리만의 경계선 (Korean line)을 넘어서 지역사회를 섬기고, 다민족·다문화 사역에 관심을 갖고 선을 행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그 핵심은 우리에게 체질화되어 있는 단일민족 특유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문화를 과감히 타파하는 것이다. 우리가 결코 북미라는 바다에 외롭게 떠 있는 섬의 모습으로 전락해서는 아니 된다. 셋째로 절대적 성경 말씀에서 상대적 세속화로 물들어 가고 있는 미국 교회와 사회를 다시 청교도적 가치로 회복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인교회가 가지고 있는 뜨거운 영성과 열정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어야 한다. 그것은 “영적 화로”이자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이다. 넷째로 조국 통일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조국 대한민국의 융성 없이는 이민 사회도 힘을 쓸 수 없다. 우리 민족의 숙원은 평화통일이다. 분단 고착화는 민족적 불행의 씨앗이 된다. 3억 아랍권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을 보라. 만일 저 나라에 원군 세력인 미국 내의 유대인 동족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제 한반도보다 이념적 갈등에서 자유로운 미주에서 통일의 물꼬가 트이도록 뭔가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다섯째로 세계적 선교 센터 역할이다. 문명사를 보면 언제나 여러 문명이 서로 충돌하고 융합하는 곳에서 새로운 운동이 일어났다. 그런 점에서 이곳 LA와 미국은 너무나 중요한 곳이다. 미주 한인교회의 사명이 크다. 

 

맺음 말

 

“중국인은 가는 데마다 식당을 차리고 일본인은 회사를 설립하며 한국인은 교회를 세운다.”라는 말이 있다. 미주 한인 공동체는 시작부터 한인교회와 맥을 같이 했다. 1903년, 하와이에 첫발을 딛은 102명 가운데 거의 절반 이상이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비록 노동자 신분으로 입국했지만, 첫걸음부터 주일에는 일하지 않는 원칙 속에서 교회와 학교를 세웠다. 나아가 이민 사회가 미국 본토로 확장되는 곳마다 한인교회가 들어섰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1620년 메이훌라워(Mayflower) 호를 타고 플리머스(Plymouth Rock)에 도착한 청교도들 102명이 했던 것과 궤를 같이한다. 그들은 신대륙 미국을 말씀 위에 건설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미국은 사상적 혼돈과 쾌락적 사고와 끝없는 소유욕으로 사회는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다. 이때 우리 한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소수 민족으로서 “어떻게 하면 좀 더 도움을 받을까?”라는 소극적 사고에서 벗어나 믿음의 시각으로 이 나라가 의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사명을 다해야 한다. 그것은 바닷물이 썩지 않고 생물들이 살 수 있도록 3% 염분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jrsong007@hanmail.net

08.19.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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