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奬學)사역을 통한 선교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인간 사회는 훌륭한 일꾼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 대형교회는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해 어려워하고 있다. 국가도 새로운 통치권자가 들어서면 내각에 청렴하고 실력 있는 일꾼을 찾기에 혈안이다. 헌데 유감스럽게도 “사람은 많은 데 쓸 만한 인물은 흔하지 않다”라는 것이 중론이다. 왜 총리 요셉이나 에스라 같은 출중한 지도자감들이 별로 없는가? 답은 간단하다.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은 일꾼은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긴 세월 동안 자양분을 먹고 자란 대들보 나무처럼 역사 속에서 키워진다. 그러므로 교회들은 100년 대계를 내다보고 인물을 키우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그 방편 중 하나가 장학사역이다. 오늘날 몇몇 교회나 단체 등에서 이 일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 미약하고 단회적이며 순수성이 떨어진다. 지금까지 해온 관행적 장학사역으로는 걸출한 인재들을 배양하기 어렵다. 장학사역에 대한 배경과 대안은 무엇인가?

 

1. 장학금의 의미와 역사성

 

장학금의 사전적 정의는 “가난한 학생이나 우수한 학생에게 학비 보조금으로 내주는 돈”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종종 학문을 장려하는 의미로 나라에서 학생들에게 재정적 뒷받침이 되어 주었다. 한민족은 고려 때 국자감에 설치한 양현고를 일종의 장학재단으로 볼 수 있다. AD 1119년에 설치하여 판관(判官) 4명을 두었다. 이 가운데 두 명은 양현고 직속의 전지(田地)에 파견하여 세(稅)를 거두어들이게 하고, 나머지 두 명은 양현고에 남아 이를 받아들이게 했다고 한다. 조선에서도 이를 계승하여 성균관 유생들에게 식량을 제공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양현고 옛터는 현재 성균관대학교 쪽문 근처에 있다. 성균관대학교는 지금도 양현고를 계승해 우수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이처럼 장학금에 대한 역사와 사례는 나라마다 다양하다. 가장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영국의 “로즈 장학금”이다. 이는 1902년부터 시작하여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2. 장학 사역의 모범적 사례

 

1999년 NY의 백민교회는 선교사로부터 A라는 학생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 학생은 그 나라의 명문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고 덩그렁 형제 둘만 남게 되었다. 그는 학업을 포기해야 할 형편에 놓였다. 이때 백민교회는 선교사를 후원하듯 기도하며 매달 일정액을 학생에게 보냈다. 그뿐만 아니라 담임 목사님은 매년 한 차례씩 방문하여 격려하며 지도했다. 원래 신앙심이 투철했던 그 학생은 대학 졸업과 함께 온전히 헌신했다. 그는 선교사가 운영하는 신학교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했다. 그는 일정 과정을 마치고 다시 현지 국가에서 운영하는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의 학업 과정은 대학 본과 4년 말고도 성경학교 2년, 신학부 4년 대학원 3년 등 학업 과정만 장장 13년이 걸린 것이다. 그는 결혼을 하였고 마침내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제 그는 신실한 종이 되어 주의 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영성, 지성, 덕성, 헌신도 면에서 손색이 없다. 한마디로 인물이 된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백민교회의 선교 내용이다. 본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에게 투자했다. 장학사역을 한 번 떡값 주듯 일회적으로 끝내지 않고 그가 자립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도왔다. 교회가 영적 아비 된 심정으로 고독한 청년을 키워 세상 한복판에 내어놓은 것이다. 

세상은 각 분야에 탁월한 인재를 필요로 한다.

훌륭한 리더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길러진다.

교회는 다음 세대를 내다보며 일꾼을 키우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3. “Scholarship America”라는 장학재단 

 

본 장학재단은 어빙 프래드킨(Irving Fradkin)에 의해 1958년에 시작되었다. 그는 원래 러시아에서 온 유대인 이민 2세였으며 검안의 (optometrist)였다. 그는 성장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었다. 그는 가난을 이기고 마을을 살리는 길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한 그는 가난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는 청년들을 위해 1달러 장학 캠페인을 시작하였다. 그는 집집마다 돌면서 취지를 설명했고, 피켓과 헌금함을 들고 거리에 나서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 시작한 ‘Dollars for Scholars’ 캠페인으로 그 해 말 4,500달러를 모금했다. 당시 $1은 지금의 $8이며 주립대학 등록금은 약 200달러였다. 그는 이것으로 고교 졸업반 24명에게 100~300달러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2년 뒤인 1960년 모금액은 17,000달러로 성장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 금액 가운데 14,000달러가 ‘1달러’ 기부였다는 것이다. 그는 이 장학금으로 70명을 대학에 보냈다. 캠페인 규모가 커지면서 프래드킨은 61년 ‘미국시민장학재단(CSFA)’을 설립했고, 합병 등 이런저런 계기로 명칭을 바꿔오다 2003년 지금의 ‘Scholarship America(SA)’로 정착했다. 미네소타 주 세인트 피터스에 본부를 둔 SA는 1958년 이래 지금까지 약 35억 달러를 모금해 220만 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2015년 말 1,100개 지부를 둔 미국 최대 비영리 민간 장학‧교육 재단이 된 것이다. 프래드킨은 장학철학은 다음과 같다. “청소년이야말로 황금이나 석유보다 더 소중한 미국의 자산이다. 장학금은 가난한 이들에게 거저 주는 시혜(hand out)가 아니라 그들을 더 높은 자리로 받쳐 올리는 것(hand up)이다.” 

 

4. 장학 사역에 대한 기독교단체의 방향

 

우리 주변에는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청소년들이 의외로 많다. 신앙, 재능, 의지도 있는데 공부할 여건이 안 되어 포기한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는 하나님 나라 확장 차원에서 매우 애석한 일이다. 미국 대학에는 전 세계에서 온 110만의 유학생들이 있다. 저들은 차세대 지도자들이 될 사람들이다. 우리가 비행기 타고 가 만나야 할 청년들이 제 발로 우리 곁에 와 있다. 선교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대상인지 알 수 없다. 북미주 4,700 한인교회에서 1년에 1명씩만 영적 자녀로 입양해 뒷바라지한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예산적으로 크게 버거워 할 필요도 없다. 각 교회에서 장학 사역으로 1%의 예산만 책정해도 가능하다. 문제는 긍휼한 마음과 선교적 열정이다. 사랑의 씨앗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 성령님이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장학 사역을 어떻게 펼칠 것인가? 첫째, 가능한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남에게 베푸는 선행은 은밀할수록 좋다. 둘째, 장기적이어야 한다. 길거리 엿장수가 맛 베기 엿 주듯 단회적인 장학사역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셋째, 장학금의 주인공은 지급자가 아니라 수혜자라는 인식변화이다. 이에 교회나 단체는 수혜자가 자존심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쥐꼬리만 한 금액으로 청년들을 전체 교인들 앞에 세워 전달식을 하며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찍어 언론에 띄우는 행위는 절제하는 것이 좋다.

 

  맺음 말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 60:22). 장학 선교는 겨자씨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처음에는 눈에 잘 안 보인다. 자라는데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물과 거름을 지속적으로 주는 것이다. 선을 행할 때 조건적이지 말아야 한다. 목표 지향적이어서도 안 된다. 그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람을 품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다. 장학 사역에 대한 노하우는 서구 기관들이 한 참 앞서 있다. 우리 한인교회와 단체들은 겸손하게 저들의 투명성, 합리성, 전문성, 전략성을 배울 필요가 있다. 감상적이고 주먹구구식이며 단발적인 장학 사역은 이제 멈출 때가 되었다. 위에 언급한 어빙 프래드킨(Irving Fradkin)이 추진한 Scholarship America 단체처럼 소리 없이 한 발자국씩 나아가야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다. 문제는 마음이다. 

jrsong007@hanmail.net

02.25.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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