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2023년 새해가 밝았다. 년 초가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새 소망을 갖는다. 꼭 이루고 싶은 바람은 개인뿐만 아니라 여러 교회들과 단체들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헌신하고 있는 한인 선교사들은 22,000명쯤 된다. 그들도 올해에 다양한 사역적 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과정이다. 어떻게 하면 그 과업들을 성취할 수 있을까? 성경은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스가랴 4:6) 고 말씀하고 있다. 찬란한 계획은 누구나 세울 수 있다. 그러나 끝까지 완주하며 목표에 도달한 이들은 많지 않다. 사명이 클수록 넘어야 할 산도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유대민족의 지도자였던 스룹바벨이 어떻게 난관을 돌파하며 성전을 완공했는지 돌아보며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1. 유대 민족을 귀환시킨 스룹바벨
스룹바벨은 누구인가? 그 이름은 “바벨론의 씨, 바벨론에서 낳은 아들”이란 뜻이다. 그는 구약의 인물들 중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사람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업적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스룹바벨은 스알디엘의 아들이자, 유다의 19대 왕 여호야긴의 아들로서 다윗 계보를 잇는 왕의 손자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직계 조상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이 70년의 포로 생활을 마쳐 갈 즈음 세계사의 주요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B.C. 539년에 바벨론을 패퇴시키고 고대 근동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의 1차 귀환은 고레스의 온건한 식민지 외교정책의 결과라고도 이해될 수 있다. 스룹바벨은 B.C. 538년에 선포된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유대 총독으로 임명되어 대제사장 예수아와 함께 유대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킨 인물이다. 그 때가 B.C. 537년이었으며 돌아온 백성의 수는 총 49,897명이었다(스 2장). 이는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 생긴 기적적인 일이었다.
2. 성전 건축을 시작한 스룹바벨
스룹바벨은 고레스의 칙령(스 1:1-4)에 따라 대제사장 예수아와 함께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난민과 다름없는 백성들을 결집하여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했다(스 3, 4장). 그 때는 B.C.536년 태양력으로는 5월이었다. 이 시기는 근동 지역의 기후가 건조한 때이므로 성전 재건 작업을 착수하기가 용이하였다. 헌데 성전공사가 시작되자마자 사마리아 사람들이 방해하기 시작하였다. 이유인즉 그들은 이 건축 공사에 거부되었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이 동참을 거부한 이유는 그들 중 상당수는 과거 앗수르의 식민지 백성 이주계획에 따라 사마리아 땅에 옮겨진 이방인들이었고 일부 이스라엘인들도 모두 이방인들과의 통혼으로 혈통적, 종교적 순수성을 완전히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주변에 거하던 다른 이방 민족들도 예루살렘 성이 재건되는 일을 방해하였다. 이렇게 외적인 도전 외에 유다 백성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성전 재건에 대한 의욕을 잃고 말았다. 결국 재건 사역은 바사 왕 고레스 제4년 (B.C.536년)에서 다리오 즉위 때(B.C.522년)까지 약 14년간 중단되게 되었다. 이처럼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고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명이 클수록 넘어야 할 산도 높다.
믿음의 영웅들은 도전하는 세력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선교적 과업은 하나님의 영권으로 나아갈 때 거칠 것이 없다.
3. 난관을 돌파하고 성전을 완공한 스룹바벨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1:8). 이는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스룹바벨과 유대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이셨다. 그때는 “다리오 왕 2년(주전 520년) 6월 초하루”(학 1:1)였다. 즉, 대부분의 백성들이 낙담하거나 아니면 무사안일주의로 인해 성전 재건을 시도할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을 때였다.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하신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학 2)고 힘을 실어 주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스룹바벨에게 사역 방법을 알려 주셨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야가 되리라” (스가랴 4:6-7). 이러한 말씀에 고무된 스룹바벨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성전 건축을 재개하였다. 결국 그들은 B.C. 516년에 성전을 완공하였다. 스룹바벨은 단순히 건물만 세운 것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을 따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반열대로 정비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다(스 6:16-18). 남 유다가 BC 586에 망한 후 70년 만에 이루어진 셈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언약의 성취였다(슥 4:9).
4. 스룹바벨 성전의 의의
유대 민족의 정체성을 보존케 하는 두 기둥은 율법과 성전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볼 때 율법에서 떠나는 것과 성전의 붕괴는 유대 민족의 전면적 위기를 초래하였다. 성전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만나기 위해 내려오시는 곳이고 또한 그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올라가는 곳, 즉 거룩한 만남의 장소였다. 이스라엘 역사상 성전은 세 번 건축되었다. 그 첫 번째가 솔로몬 성전(B.C. 957년, 왕상 6장), 두 번째 여기의 스룹바벨 성전(B.C. 516년, 스 6:15-18). 세 번째가 신약시대의 헤롯 성전(A.D. 63년)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이 성전들이 각각 훼파될 때마다 이스라엘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로써 무너진 옛 성전을 재건하는 것은 유다 민족의 정기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스룹바벨 성전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에 의한 이스라엘의 포로 회복의 일차적인 증거이다. 흔히 이스라엘의 포로 기간 70년을 솔로몬 성전 훼파에서 스룹바벨 성전 재건까지로 본다. 그러나 스룹바벨 성전은 과거 솔로몬의 성전에 비해 그 규모나 화려함에 있어서 훨씬 미치지 못하였다. 성전 안에는 언약궤가 없으며 대제사장은 우림(Urim)과 둠밈(Thummim)을 소유하지 못했다(스 2:63).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하나님 임재의 상징에 불과한 건물로서의 성전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성전의 실체로서 메시야가 찾아 올 것을 대망하게 되었다.
맺음 말
스룹바벨은 유대 총독으로서 백성을 귀환시킬 책임뿐만 아니라 성전 재건의 임무를 완수해야 할 사명자였다. 그는 훼파된 땅에서 가진 것 없는 난민과 같은 사람들로 이 공사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더구나 내외적으로 방해 세력이 만만치 않았다. 그것은 넘기 어려운 큰 산과 같았다. 큰 산이란 우리 힘으로 무너뜨릴 수 없는 거대한 세력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모세 앞에는 거대한 홍해 바다가 있었다. 여호수아 앞에는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이 있었다. 다윗에게는 거인 골리앗과 시시탐탐 자기를 노리고 있는 사울 왕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쌓고자 하는 성전은 무엇이며 그 길목에 어떤 장애물이 있는가? 의로운 사역일수록 사탄의 도전은 강렬하다. 앞길을 가로막는 산이 있다는 것은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거친 풍랑이 싫어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다면 그 배는 존재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사명인은 고독하다. 고난이 있다. 하지만 영광스런 가치와 상급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둠의 세력에 주눅 들지 말고 믿음으로 당당하게 도전해야 한다. 혹여 원치 않는 난관에 맞닥뜨려졌을 때 안절부절 하기보다 스룹바벨에게 임한 말씀처럼 하나님의 영권으로 나아가면 거칠 것이 없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무너뜨리시고 시온의 대로를 활짝 열게 하실 것이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jrsong007@hanmail.net
1.14.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