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10-10 Prayer Movement! 만일 전 세계 모든 크리스천들이 매일 밤 10시에 자기가 있는 곳에서 10분간만 민족 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해 합심 기도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늘이 열리고 땅이 진동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는 말이 있다. 레이저 광선이 철판을 뚫는 것은 빛이 모아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단단한 바위라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에 의해 갈라진다. 우리 개신교는 말씀 중심의 신앙 공동체로서 그간 세상에 빛과 소금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너무 독립적이고 분파적이어서 힘을 모으는데 한계가 있었다. 군대나 천주교가 힘이 있는 것은 조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코로나 세균의 도전, 끊일 날 없는 전쟁과 종족분쟁, 기근과 재난 등은 인간 세상에서 평화를 앗아간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인공지능의 역할은 커져만 가고 세속주의와 물질문화는 우리 영혼들을 혼탁하게 하고 있다. 안팎으로 밀려오는 이 먹구름을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한단 말인가? 이제 우리 기독교회는 교파나 파송 단체를 초월해 힘을 모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우리는 세상의 도전 앞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질 수도 있다. 그 한 대안이 무엇인가? 동일 시간대에 공통의 주제를 놓고 합심 기도하는 것이다.
1. 정한 시간 기도의 성경적 근거
시 55:17, 단 6:10에서 추론해 보면 구약의 성도는 정규적인 기도시간이 하루에 세 번 있었다. 예수님도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했으며(MK1:35) 또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셨다. 그곳에 가신 것은 기도하기 위해서였다(NK22:39-42). 사도행전 3장 1절을 보면, "제 구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라는 구절이 있다. 베드로와 요한도 그들의 기도관습에 익숙해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다니엘 역시 습관을 따라 정한 시간에 기도를 했다. 그는 포로 신분의 총리로서 막중한 일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경우에도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생활을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시기 자들의 간계로 왕의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정한 시간에 기도를 한 것이다.
2. 유태인의 기도 전통
유태인은 4,200년 동안 나라 없이 유랑하면서도 흩어짐을 면하며 민족적 동질성을 가지고 살아남았다. 그들이 생존 비결은 무엇인가?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지구촌 어디에 있던 하루 3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공통의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 회복이었다. 그들은 지금도 하루에 세 차례씩 기도한다. 아침기도(샤하리트), 오후기도(민하), 저녁 혹은 밤 기도(마아리브)이다. 그들은 신성한 기도시간을 위해 몸을 깨끗이 하고 옷을 단정히 입는다. 어떤 장소이건 청결해야 하며 사람을 자극하는 향내나 냄새가 나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이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3. 이슬람의 강성 원리
이슬람의 교세와 그 성장 속도는 가히 폭발적이다. 이들의 강성 원리 중 하나는 하루 5번씩 정한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이 기도 생활은 그들 국가와 민족 가운데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동일한 시간대에 동일한 메카를 향해 지구촌의 모든 무슬림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다. 매일 때가 되면 다섯 번 기도시간을 알리는 (أذان adhan) 아잔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진다. 그러면 성인 무슬림은 의무적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 설사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할지라도 행동을 멈추고 기도 폼이라도 잡아야 한다. 길게 횡으로 늘어서 함께 절을 하며 기도하는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이들은 이슬람의 율법에 포로가 되어 있다. 누가 감히 이 기도 문화에 역행을 할 수 있을까?
레이저(Laser) 광선은 철판을 뚫는다.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쪼갠다.
정한 시간에 합심기도는 경천동지(驚天動地) 할 수 있다.
4. 기독교인의 기도생활 실상
기독교는 복음 안에서 자유하다. 구태여 행위적으로 규례에 묶일 필요가 없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율법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을 경성케 하며 발전적으로 지탱케 해준 제도라면 자기문화로 소화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본시 죄성으로 인하여 기도하는 것을 거부할 때가 많다. 육신의 소욕은 끝없이 편함을 추구 한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눈을 감게 된다. 이로써 규율없는 신앙생활은 방종으로 흐르기 쉽다. 하지만 기도시간이 토착화되어 있다면 습관을 따라 참석하게 되고 새롭게 소생하기도 한다. 아무튼 오늘날 대다수 크리스천들은 기도 생활이 없거나 있어도 무질서하다. 연합적이지 못하다. 위의 정통파 유대인이나 무슬림들에 비교하면 부끄러울 정도이다. 다행히도 한국교회는 새벽기도회가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어 있다. 이는 한국교회 성장과 성도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문제는 날이 갈수록 참여자가 적어지고 그 열기도 식고 있다는 데 있다.
5. 매일 밤 열시에 합심기도를 통한 선교 도전
왜 10-10 Prayer movement 인가? 이는 한 두 사람보다 교회가 연합하여 기도하면 더 강력한 탄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체적으로 기도하면 자기중심 기도를 하기 쉽다. 하지만 모든 크리스천이 인종과 국가 그리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정한 시간에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기도하면 아마도 지옥문이 흔들릴 것이다. 나아가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애를 느끼며 성령의 역사하심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 복음화와 세계선교는 개체적이며 분산적으로 기도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러면 왜 밤 10시에 10분간인가? 밤 10시에는 취침하기 전이며 마음에 부담이 없다. 또한 누구나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참여할 수 있다. 10분은 하루는 24=1,440분의1/100도 안 되는 시간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교회의 새벽기도는 참여하기가 쉽지 않지만 10-10 기도는 누구나 가능하다. 한 사람의 100보다 100사람의 한 보가 낳다.
맺는 말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코로나 시대 이후 세상은 혁명적으로 변혁되고 있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그늘진 곳이 너무 많다. 도처에서 고통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이때에 우리 크리스천은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악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궤멸의 대상이다. 이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통치권이 지구촌 구석구석 미치도록 대동단결해 흑암의 세력을 대항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할 때 우리 교회는 도전하는 적그리스도와 세속에 함몰되어 갈 수 밖에 없다. 여러 방안이 있지만 가장 쉽고도 강력한 대응은 정한 시간에 같은 기도 제목으로 합심하여 부르짖는 것이다. 매일 아침 새벽에 교회로 모이라 하면 극히 소수에 그칠 뿐이다. 전쟁에서 군사는 많을수록 좋다. 따라서 전임 사역자들은 경기장 스탠드에 앉아 구경하는 사람들이 다 그라운드로 내려와 함께 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다시 말해 뒷짐 지고 앉아 있는 수많은 평신도들을 선교적으로 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레이저 광선이 두꺼운 철판을 뚫는 것처럼 연합기도를 통해 지상명령을 준행해 나갈 수 있다. 그 일환으로 하나님의 킹덤을 향한 10-10 기도운동(Prayer Movement)이 들불처럼 퍼져 나가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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