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사역을 통한 선교 도전

송종록 목사

(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21세기 한인 세계선교의 좌표(座標)는 어디인가? 우리 선교는 지금 피선교지 국가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감사하기는 커녕 냉소적인 곳이 늘어나고 있다. 이미 몇몇 선교지에서는 사역 한계인 임계점(臨界點, Critical point)에 도달해 있다. 이제 한인 선교사가 추방되는 일은 창의적 접근 지역을 떠나 지구촌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다. 불행이다. 선교사가 청춘을 바치고 수많은 기도와 재정이 투여되고 있음에도 정작 현지 나라에서 달가워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좀 더 냉철히 앞뒤를 살필 필요가 있다. 우리는 탁월한 선교 전략가인 고(故) 조동진 목사의 지적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그는 “한인 세계선교의 치명적 약점은 감상적 선교 시각과 더불어 팀 사역을 못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COVID19로 인하여 선교환경이 통째로 변한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은 하나님의 킹덤 관점에서 바라보며 100개의 텐트보다 1개의 대형 빌딩을 짓는 것이다.

 

1. 선교지에서 팀 사역의 실상 

 

선교사들은 일반적으로 개성이 강하다. 그래서 꼬리보다 머리가 되기를 원하며 누군가에게 간섭받는 것을 힘들어한다. 그래서 100명의 선교사들은 연합하여 1개의 빌딩을 세우기보다 각각 100 개의 자기 텐트를 선호한다. 이는 부담이 덜하고 신속하게 세팅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전권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피선교지에 요구되는 것은 100개의 텐트가 아니다. 빌딩처럼 1개라도 제대로 된 작품 같은 사역이다. 텐트는 오래갈 수가 없다. 바람만 세계 불어도 날아가 버린다. 그렇다면 이러한 텐트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1개의 빌딩이 의미하는 것은 팀 사역이다. 그 누구도 혼자서는 만리장성을 쌓을 수 없다. 사역에서 홀로 서기란 위험하다. 성경적이지도 않다. 효율성도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경우 해결할 길이 없다. 비록 팀 사역이 간단치는 않지만 그래도 독립 사역의 약점을 상당수 커버할 수 있다.

 

2. 성경에 나타난 팀 사역의 본

 

팀 사역에 대한 최고의 본은 성경이다. 먼저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이란 3 위격으로서 팀워크로 존재한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일하셨다. 그들은 사역에 도움이 되기보다 때로는 걸림돌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용납하시며 긴 안목으로 선교 공동체를 이루셨다. 결국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그들로 하여금 선교의 유업을 잇게 하셨다. 바울도 확실한 팀 사역자였다. 그의 행선을 보면 홀로 움직이는 때가 없었다. 디모데, 마가, 누가 외 여러 일꾼들이 항상 그 주위에 있었다. 로마서 16장에는 그와 동역했던 많은 일꾼들이 언급되고 있다. 구약에서 팀 사역의 대표적인 사례는 출애굽기 17장에 나온다. 모세는 산 위에서 아론과 훌의  도움 가운데 기도로 승부했고 여호수아는 산 아래서  아말렉 군과 싸웠다. 이처럼 선교에서 팀워크는 시너지 효과를 나타낸다. 이는 능률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곱하는 것이다. 

 

3. 팀 사역에 관한 사회적 비유 

 

시대의 전쟁사를 보면 흥미롭다.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산업혁명이 있기 전만 해도 인간은 힘과 무예가 뛰어난 용장을 의존했다. 삼국지에서 보듯 이들 장부들은 일개 사단 병력 이상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러나 현대는 아무리 람보같이 신출귀몰한 자가 있다 해도 총한방이면 끝난다. 지금의 전쟁은 전, 후방이 없다. 땅, 바다, 하늘에서 글로벌한 입체작전을 전개한다. 세상 전쟁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영적 전쟁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이것은 시작부터 시 , 공간을 뛰어넘어왔다. 더욱이 현대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구촌이 하나의 선교지가 되었다. 이제 각개전투 양상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다. 따라서 오늘의 선교는 오케스트라, 축구팀, 그리고 군대의 작전과 같은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홀로 종횡무진 뛰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지도자를 중심으로 팀워크를 이룬다는 것이다.

 

피선교지에는 100개의 텐트보다 1개 빌딩을 필요로 한다. 

텐트는 바람에도 날아가기 쉬우나 빌딩은 100년을 버틸 수 있다. 

빌딩이란 분업화, 전문화, 조직화로 이루어진 연합적 과업을 의미한다.

4. 팀 사역을 이루지 못한 주된 원인

 

    사실 사역에 있어 팀 사역의 중요성과 그 가치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을 한다. 헌데 이를 잘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1992년 선교한국에 주 강사로 섬겼던 고(故)  Thomas Wang목사님이 명쾌하게 제시했다. 그것은 “누가 이 사역에서 중심이 될 것인가? (Who is a center in our ministry)”에 대한 헤게모니(hegemony패권:覇權)적 싸움 때문이었다고 했다. 왕 목사는 이것 때문에 우리 기독교가 2000년 역사 이레로 얼마나 많이 사탄에 이용되어 왔으며 힘을 소진했는지 탄식해야 한다고 외쳤다. 맞는 말이다. 사실 여러 단체들과 교단 총회를 들여다보면 누가 크며 중심이 되느냐에 대한 치열한 쟁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러한 경쟁은 함께 팀워크로 힘을 발휘 할 수 없도록 유도하는 사탄의 지배 논리이다. 사탄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조직적이고 치밀하며 인간의 약점을 꿰뚫고 있다. 이에 우리는 더 이상 어둠에 세력에 놀아나서는 아니 된다.

 

5. 팀 사역을 이룰 수 있는 방안 

 

첫째는 하나님의 킹덤 시각이다. 우리는 “지금뿐만 아니라 이후 역사가들에 의해 각 나라들에서 행해졌던 한인선교가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사역에 임해야 한다. 역사는 냉엄하다. 선교 대중화 시대인 지금은 분명코 개인보다는 “한인선교”라는 집단적 판단이 되어질 것이다. 우리는 저들에게 찬사(讚辭)는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부끄러움의 족적을 남겨서는 안 된다. 둘째는 철저한 팀 사역이다. 이는 파송 단체와 교단별로 하되 나아가 그 울타리 밖에서도 대연합적인 사역을 펼쳐야 한다. 더 이상 독불장군이요, 각개전투식 사역이 발을 못 붙이도록 정책적 입안을 해야 한다. 이는 각 사람의 개성이 죽은 용광로(Melting Pot) 같은 성격이 아니라 샐러드 그릇(Salad bowl) 같은 연합을 말함이다. 셋째는 한 빌딩을 세우는 것이다. 각 나라에서 소프트웨어(software) 이든 아니면 하드웨어( hardware) 이든 사역적 힘을 분산하지 말고 모아야 한다. 한인 선교의 랜드마크(Landmark)적 뭔가를 남겨야 되지 않겠는가? 특히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신학교들은 그 성격과 지향점에 따라 100년 대계를 내다보며 과감하게 합병해야 한다.

 

맺음말 

 

모진 풍파에도 끄떡없는 시온 성을 쌓으라! 이것이 21세기의 시대 논리라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1인 다역(多役)보다 1인 1역으로 분업화, 전문화, 조직화되어 팀 사역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간 우리의 관행처럼 저마다 자기 킹덤을 세우려 할 때 한국 선교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주님의 왕국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마음을 비울 수 있다. 이에 사역자는 종말론적 시각으로 부르심의 소명을 따라 은사와 준비됨에 맞게 역할을 하면 된다. 보험의 원리처럼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돕고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쉬운 것부터 하나씩 시도하면 된다. 먼저 선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고 현지인과 함께 팀 사역을 이루며 나아가 타 기관 선교사들과 가능한 선에서 연합을 시도해 가는 것이다. 내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선교 현장의 중심이 되면 모든 갈등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 우리는 “한 사람의 100보 보다 100 사람의 한 보가 낳다”는 속담을 그저 흘리지 말아야 한다.

 

jrsong007@hanmail.net

08.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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