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한인 크리스천들은 대부분 세계선교에 관심이 있다. 1988년 이래 격년으로 치러졌던 선교한국이나 KWMC가 주관했던 CHICAGO 선교대회 등 그간 크고 작은 집회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선교헌신을 했다. 그러나 정작 선교사로 나간 자들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선교구조나 후원 아니면 선교신학의 부재인가? 복합적이다. “선교사”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이 일생 동안 전적인 헌신을 해야 된다는 부담이다. 위대한 선진들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성령의 감동으로 선교적 결단을 했다 할지라도 막상 현실의 벽에 부딪쳐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러한 사람들 중 어떤 이는 평생을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고 있는 자도 있다. 이래저래 한인교회는 잠재적 선교인력과 자원에 비해 표출되는 선교사례는 너무나 미미하다. 문제이다. 어떻게 하면 봇물이 터지듯 선교의 물꼬를 틀 수 있을까? 선교를 향한 계약적 모델이 한 대안이다. 이는 오랜 선교역사를 가진 서구 선교사회에서 일반화되고 있는 사례이다. 이제 한인교회도 이러한 방안을 우리 특성에 맞게 소화할 때가 되었다.
1. 기도를 통한 세계선교
선교의 주체는 성령이다. 이에 우리는 기도로 선교할 수 있다. 선교를 향한 중보기도(Intercessoryprayer)는 남을 돕는 피동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선교이다.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는 아론과 훌의 받침 속에 중보기도로 싸움에 임했다. 이 전쟁에서 모세의 기도가 승(昇)할 때 아군이 승하고 그의 기도가 쇠(衰)할 때 아군이 쇠했다. 이때의 승패는 전면에 있는 여호수아 보다 후면에서 기도하는 모세에게 달려 있었다. 이처럼 기도사역은 시, 공간을 초월한다. 기도는 크리스천에게 최고의 무기이다. 우리가 일하면 우리 자신이 일하지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로 선교할 것인가? 이는 하나님 앞에서 무릎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이 사역을 위해서는 세계선교를 위해 어느 주기로 얼마 동안 중보 기도를 하겠다는 서약이 필요하다. 선교적 기도는 다니엘처럼 기한을 정하고 생명을 건 탄원이어야 한다. 그리고 때가 차면 평가를 한 후 다시 재 서원을 하면 된다. 선교는 기도이다. 기도 없는 사역은 주의 일이 아니다. 따라서 계약적 기도사역은 인간의 연약성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다.
2. 헌금을 통한 세계선교
오늘날 여러 성도들과 교회들이 선교헌금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선교 후원금은 그 방법적 이해 부족으로 인하여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대부분의 교회는 재정이 어려울 때마다 외부로 나가는 선교헌금부터 끊는다. 또한 담임목사가 바뀌면 인간관계와 자기 목회철학에 따라 후원 선교사도 교체되기 일쑤이다. 그래서 선교사를 가리켜 파리 목숨이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설명 하나 없이 후원금이 중단되면 선교사는 마음이 무겁다. 비단 재정적인 타격뿐만 아니라 영적 비애를 느낀다. 후원교회 입장에서 보면 “언제까지 우리 교회가 책임져야 하나?”라는 부담이 있다. 어떻게 하면 선교헌금을 잘할 수 있을까? 그것은 기도와 함께 헌금을 정한 때에 정한 금액을 송금하는 것이다. 형편에 따라 송금한 액수가 다르고 날 자도 들쭉날쭉하면 선교사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텀(Term)을 정해 계약적으로 후원해야 한다. 이 방안은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며 피차간에 선한 유익을 준다. 개인이나 교회도 상황변화가 크다. 이런 속에서 무작정 마르고 닳도록 선교헌금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계약 안에서 일정기간은 책임을 질 수 있다. 이후 때가 차면 내규에 따라 후원을 연장하면 되고 만일 그것이 불가할 경우 정중한 양해를 구하면 된다. 기간을 정한 계약적 헌금은 서로를 편하게 하며 시험 들지 않게 한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다.
계약은 사람이나 조직체 사이에서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한 것이다.
계약적 선교는 많은 이가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건강한 방안이다.
3. 단기 사역을 통한 세계선교
COVID19 전만 해도 많은 교회들이 단기선교를 앞 다투어 해 왔다. 그것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낳았다. 역기능이 된 주된 이유는 많은 팀들이 바람 쐬러 가듯 준비 부족과 더불어 단 회적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단기 사역이 되기 위해서는 일관성과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란 말인가? 계약적 단기선교가 답이다. 이를테면 A 교회가 B 선교사와 앞으로 10년 동안 매년 8월 초순에 단기 사역 팀을 보내겠다고 계약을 한다. 그러면 서로가 계약에 묶이어 책임을 지게 되고 정도 들며 해마다 사역도 업그레이드(Upgrade) 될 것이다. 단기선교란 이름으로 여기저기 바람만 일으키고 다니는 것 보다는 한 우물은 집중적으로 팔 때 좋은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다른 한 방편은 교단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입안을 하는 것이다. 몰몬교의 사례를 보자. 저들 교단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모든 남자들은 2년, 여자는 1년 반 동안 교회에서 선택해주는 곳에 가서 선교 활동한다. 이 기간 동안 사역에 집중하기 위해 이성교제/학교공부/일 등이 금지되고 집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돌아갈 수 없다. 이러한 제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우리 기독교 선교도 교단이나 단체차원에서 이러한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4. 장기 사역을 통한 세계선교
근세 선교역사를 보면 많은 선교사들이 현지에서 뼈를 묻었다. 당시 여러 선교사들은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정신으로 헌신을 했다. 하지만 당시는 교통과 통신의 미발달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한 곳에 정착할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도 있었다. 만일 그들이 21세기에 살고 있다면 어떠할까? 뼈를 묻는다는 정신은 가상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략적이지 못한 면도 있다. 바울은 한 곳에서 뼈를 묻지 않았다. 그는 가능한 속히 이양하고 새로운 개척지로 나아갔다. 현대는 팀워크로 하되 사역지에서 선교를 가능한 빨리 위임하고 떠나주는 것이 요구된다. 보통 서구 선교기관은 4년 텀으로 계약을 한다. 그들은 매 안식년마다 평가를 한 후 다음 텀을 재계약한다. 계약적 선교는 믿음이 없는 행위가 아니다. 이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건강한 대안이다. 아프리카의 성자라 일컫는 데이빗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처럼 처음부터 평생 선교사로 결단하라고 다그치면 과연 얼마나 사람들이 지원할까? 대나무는 매듭의 연속이다. 선교사역도 대나무처럼 텀이라는 매듭 안에서 연속되어야 한다. 한텀, 두텀 이렇게 계약가운데 사역이 지속될 때 마음도 가볍고 더 집중할 수 있다. 매듭이 없는 선교사역은 자기를 돌아보기 어려우며 심신이 병들어 종국에는 사역을 내려놓기 쉽다.
5. 맺음 말
한인 세계선교! 우리는 지난 날의 무대포(無鐵砲)적인 선교를 지양하고 이제는 좀 더 전략적일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도약을 위해서는 사역기간을 정한 계약적 선교가 일반화되어야 한다. 한 달은 하루가 쌓여서 되고 일 년은 한 달이 쌓여서 된다. 선교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선교여행(Mission Trip)으로 출발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단기 선교(Short Term Mission)로 발전하게 되며 후에 장기 선교(Long Term Mission)로 한 텀, 두 텀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흐름은 순리적이다. 처음부터 무리한 결정을 하면 자칫 올 무가 되며 파송하는 선교부나 본인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 수 없다. 근시 거리도 잘못 보는데 원시 거리까지 담보할 필요가 있겠는가? 좋은 계약은 이어지기 마련이다. 잘못된 계약은 곧 끝이 난다. 따라서 계약적 선교모델은 우리 한인교회가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 그러면 한인세계선교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으며 선교사와 후원교회 나아가 선교본부와의 관계도 아름답게 엮어질 것이다. 할렐루야!
jrsong007@hanmail.net
08.13.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