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활동 이야기(중)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6)정도(正道)를 걷는다 교회목회, 연합사업 그리고 한평생을 살아가는, 이 모두 정도를 따르고 걷자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고 신념이다. 정도를 걷는 사람에겐 야합이나 타협이 근접하지 못한다. 최고 최상의 정도는 성경이다. 정도를 이야기할 때마다 다가서는 성경구절이 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 통합교단 부총회장 선거는 입후보자들의 소견을 밝히는 5분 스피치로 시작된다. 필자는 소견발표를 위해 강단에 오를 때 성경을 가지고 등단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선거 역시 소견발표를 해야 한다. 필자는 역시 성경을 들고 등단했다. 그리고 “성경대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가 따르고 지지해야 될 정도는 성경대로 하는 것이다. 세상 정치는 권모술수와 허위날조가 춤추지만 하나님의 일은 그러면 안된다. 교단과 교계정치를 세속적 방법으로 몰아가 는 정상배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게 좋다.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사역들

1)통합교단 총회장으로 섬기다 필자 나이 55세 되던 해 부총회장으로 피선되었다. 당시 수도권에서는 최연소 부총회장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부총회장은 총회장을 보필하는 위치여서 1년 동안은 학습자의 자세로 총회를 섬겼다. 총회장으로 취임하고 재임 1년 동안은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생산성 본부와 계약을 체결하고 총회 전반에 관한 컨설팅을 실시한 일이다. 전문기구에 외주를 주고 총회본부와 각 부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모색한 것은 총회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른기억은 헝가리 데브레첸에서 개최된 세계개혁교회 대표들이 모였던 자리여서 의미가 깊었지만 더 큰 의미는 코리아의 날을 정하고 조선그리스도연맹 대표였던 고 강영섭 위원장과 함께 등단해 강연을 하고 회중과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한 일이다. 그리고 부총회장 재임 기간 총회 주제 해설위원회를 구성하고 주제 선정과 선정된 주제해설집을 교단 최초로 만들어 총대들에게 배포했다. 전도부장 재임 기간에는 만사운동 지침을 마련, 총회에 보고하여 만장일치 기립박수로 결의하기도 했다. 전도학교를 설립하고 교재를 개발하고 보급하는가 하면 훈련원을 만들어 만사운동(1만교회 4백만 신도운동)을 추진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섬김들이었다.

2)음악과 함께 해외를 돌다 1997년 충신교회가 창립 40주년을 맞는 해였다. 여러 가지 기념행사 중 기념음악회를 열기로 하고 창작 칸타타를 준비했다. 필자가 시(가사)를 쓰고 작곡은 예술종합학교 교장이었던 이영조 교수가 맡아 “베들레헴에서 갈보리까지”라는 곡을 완성하였다. 충신교회 찬양대 600여 명과 오케스트라가 노래를 부르고 솔리스트로는 이현, 김향란, 유미숙, 장유상, 김남두 교수들이 참여했다. 연주 장소는 예술의전당이었다. 한국 음악계는 이 행사를 한국교회 음악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라고 반겼고 한국교회 합창음악을 승격시킨 쾌거라고 예찬했다. 개교회 음악행사를 예술의전당에서 개최한 것도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7년 50주년을 기념하는 제 2회 창작 칸타타 연주를 같은 장소인 예술의전당에서 개최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작시는 필자가 맡고 작곡은 김정수 교수가 맡았다. 10년 세월이 흐른 탓도 있지만 두 번째 연주는 더 완숙한 경지에 달했고, 개교회가 예술의전당에 두 번째 막을 올리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iamcs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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