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의 부교역자론(상)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1)인정해야 한다 그들도 사람이고 하나님의 종이고 목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시차가 있을 뿐 그들도 정규 신학수업을 거쳤고 목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수했다. 물론 나이 차도 있을 수 있다. 이 모든 사실과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그들을 목사가 아닌 듯 대한다든지 용역회사 직원 다루듯 해선 안된다. 그건 내 자식이 부목사여도 안된다. 현재 필자의 두 사위가 모두 목사이면서 신학대학 교수와 선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사석이나 집 안에선 김 목사라든지, 김 교수라는 호칭을 쓴다. 그러나 공식자리에선 단 한번도 그런 식의 호칭을 쓴 일이 없다. 반드시 ‘김 목사님’, ‘김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스승, 선배, 담임목사라는 점을 내세워 ‘어이, 김 목사’, ‘야, 너 XX야’라고 부른다든지 공사 구분하지 않고 호통 치고 벼락 치는 것은 함량 모자라는 교양 탓이고, 자신의 약점을 덮으려는 일종의 콤플렉스 현상이다.

2) 내일을 보아야 한다 오늘은 부목사지만 내일 그리고 어느 날 그들은 중대형교회 목회자가 될 것이고 한국교회 지도 그룹을 형성할 사람들이다. 오늘은 숨죽이고 말 못하는 존재처럼 사역하겠지만 내일은 세계를 호흡하고 뻗어나갈 제 2, 제 3의 바울임을 인식해야 한다. 필자는 늘 이 점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부목사들을 차별 없이 대했고 형제처럼 지냈다. 물론 개인적 잘못이 드러나거나 시행착오가 발견되면 따로 불러 타이르고 함께 기도하고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때로는 직격탄을 날려 정신이 들도록 했다. 그들이 지금은 각처에서 크게는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달하는 중대형교회 목회자로 섬기고 있다. 부목사는 동역자이지 종도 경호원도 아니다. 그들 속에 잠재된 내일을 보는 사람은 그들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3)리드해야 한다 부목사에게 전권을 맡기고 목회를 거의 위임하다시피 한 채 부흥회 인도, 학교 강의, 총회, 연합체, 사회활동 등에 전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양은 피동적 동물이어서 이끄는 사람을 따라간다. 그리고 두뇌 입력 시간이 경과하면 밖으로 나도는 목자는 잊어버리고 지금 곁에 서성대는 목자를 진짜 목자라고 인식해 버린다. 사고의 틀이 바뀌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나돌면 내 양이 아니고 언젠가는 목자가 바뀌기를 기대하게 되어 버린다. 담임목사가 부교역자들의 멘토가 되고 리더가 되려면 최소한 존경이라는 기본 줄 아래로 떨어지면 안 된다. 직위와 서열상 그 앞에선 머리를 조아리겠지만 그 앞을 떠나면 다른 몸짓을 할 것이 뻔하다. 부교역자뿐이겠는가? 교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모으는 것도 똑같다. 목사의 웅변에 감동하던 시대는 지났다. 학벌이나 위용에 매료되던 시대도 지났다. 배경이나 족보에 환호하던 세월도 물처럼 흘러갔다. 그가 누구인가? 어떻게 사는가? 신행과 언행의 일치가 교인을 매료하고 동역자들을 감동시킨다. 그런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너도 나도 아니다. 여기도 없고 거기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주님을 닮기 위해 피땀을 흘려야 한다.

부목사의 역할과 책임 부목사 그들은 어떻게 살고 일해야 하는가?

1)최선을 다하라 필자는 충신교회 35년 목회 기간 동안 수많은 부목사들과 동역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하는 사람과 최선을 기피하는 사람들로 대별된다. 화려한 학벌과 학위, 넓은 가문에 인맥 등을 움켜쥐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거만하고 태만하고 자만한 사람들이 있다. 담임목사를 얕잡아 보고 동료들 위에 군림하려 든다. 그리고 오래 못 견디고 제 갈 길로 가 버린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목회도 안되고 교수도 못되고, 기관장의 자리에 앉지도 못한 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다. 그러나 세칭 가방끈 짧고 지닌 것은 없지만 입술이 부르트고 코피가 터지도록 소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지금 어디 누구라면 다 알만한 중대형교회 목회자로, 대학과 신학교의 교수로, 교회기관의 대표로 달음질하고 있다.

2)존경하고 배우고 야단맞으라 담임목사가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는 세월 탓도 아니고 운세 탓도 아니다. 남이 모를 일들과 말 못할 사연들이 배경이 되었고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목사들은 곁에서 보이는 객관적 상황만으로 절로 되었다거나 운이 좋았거나 세월이 그렇게 만든 것으로 이해하려 든다. 목회에 우연이 어디 있는가? 목회에 산절로 수절로는 없다. 있다면 눈물, 아픔, 고통, 고뇌, 가슴앓이, 고독이 있을 뿐이다. 그들을 존경하고 반면교사로 삼아 배우고 때로는 야단도 맞아야 한다. 부목사가 담임목사 목회에 걸림돌이 된다든지 장애물이 되면 안된다. iamcs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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