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스티그마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바울은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했다(갈6:17). 예수 때문에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서 받은 정신적 상처가 있었고 수감과 추방은 물론 생명의 위협도 수없이 겪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찢긴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다시 매를 맞아 상처의 골이 깊어졌다. 바울은 그것을 예수 때문에 받은 상처(흔적, 스티그마)였다고 술회했다. 결국 바울은 스티그마를 안은 채 순교의 잔을 마셨다.

목회자가 가진 정신적 상처

바울의 후예인 목회자들 역시 다양한 스티그마를 간직한 채 목회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깊고 넓은 상처를 지녔다. 해도 바울의 것엔 비길 수 없다. 아니, 흉내도 낼 수 없다. 목사만 아픈가? 아니다. 모두 다 아프다. 세월호 침몰은 집단 분노, 집단 우울, 집단 트라우마 현상을 일으켰고 ‘이럴 수가?’라는 집단 회의를 만들었다. 목회자가 지니고 있는 외상보다 정신적 상처가 더 심각한 스티그마일 때가 많다. 그러나 외상도 스티그마일 수 있다. 전기누전으로 교회가 화염에 휩싸이자 뛰어들었다가 얼굴에 화상을 입은 목회자를 만났다. 그 얼굴의 화상 흔적은 곧 교회 때문에 받은 스타스마였다. 교회 신축현장에 나갔다가 3층에서 떨어진 각목에 머리를 맞고 열네 바늘을 꿰맸다는 목사님을 만났다. 머리에 남은 그 상처 역시 스티그마였다. 그러나 정신적 상처는 깊고 넓다. 교인들에게서 받는 상처, 피할 길이 없다.

흔히 목회를 목양이라 부른다. 사람을 다루는 목회와 양을 키우는 목양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양은 짐승 가운데 가장 피동적 동물이다. 목자가 없으면 자립자생이 어렵다. 먹이도 물도 목자가 찾아 챙겨줘야 하고, 질병도 목자가 치료해줘야 하고, 예방도 목자가 책임져줘야 한다. 자기들 끼리 감정이 토라져 머리를 맞대고 싸우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왜 머리를 맞대고 서 있는지 이유를 잊는다. 병든 이유도, 자녀가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진 것도, 자기들 끼리 다투고 싸우는 것도 목사가 책임져야 한다. 목회자는 체육관 권투장의 샌드백이어야 하고 야구연습장의 야구공이어야 한다. 두들기면 맞고, 흔들면 흔들리고, 소리치면 다소곳해야 한다. 참고 참고 열백 번 고쳐 참지 않으면 목회가 성립되지 않는다. 비수로 도려내듯 아파도 견디고 참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겉은 말짱한데 속병이 깊어진다. 그것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골, 깊은 스티그마다. 그러다가 참지 못해 한마디라도 던지면 동네방네 사발통문이 되어 난리가 난다. 옛말에 처녀가 시집을 가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소경 3년 세월을 보내야 된다고 했다. 10년 세월을 시집살이를 해야 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목회는 9년으로 인고의 세월이 지나거나 끝나지 않는다. 시작부터 내려놓는 날까지 각고와 극기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가족도 동참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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