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리한인커뮤니티교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맞는 말입니까?
세상의 땅은 제한되어져 있습니다. 제한된 땅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다투고, 나라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땅을 차지하게 될까요? 강한 사람입니까, 온유한 사람입니까?
역사상 많은 정복자들은 많은 땅을 가졌습니다. 강한 자가 땅을 얻는 것이 지금까지의 세계역사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온유한 사람이 땅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원리와 예수님의 원리 중에 어떤 것이 옳을까요?
알렉산더 왕은 정복자였습니다. 그는 많은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는 정복하는 땅에 자기 이름의 도시를 세웠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는 세계에 70개가 있다고 합니다. 정복자하면 빠질 수 없는 이름이 징기스칸입니다.
알렉산더는 자신이 차지한 땅에서 살아 보지도 못하고 33세의 나이에 삭막한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징기스칸이 남긴 땅은 척박한 땅인 몽골입니다. 바벨론, 페르시아, 로마 제국도 많은 땅을 정복했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자연의 흐름 속에서도 보면 강한 자들이 많은 땅을 차지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구 역사가 가장 강한 힘을 가졌던 공룡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호랑이처럼 강한 짐승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호랑이의 개체 수가 계속 줄어들어서 이제는 보호 동물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사는 땅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오히려 온유한 동물들이 더 많이 번식합니다.
강한 자들이 세상을 점령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온유한 자들에 의해 점령되고 있습니다. 한때 강한 자들이 이름을 날리는 것 같지만, 그것은 잠깐이고 온유하고 인내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의 역사는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땅은 누가 차지합니까? 온유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온유한 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사람들은 온유함이라고 하면 나약함, 부드러움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독교가 나약한 자들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기에 하나님을 의지해서 사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1. 온유함이란 무엇일까?
온유함을 오늘날의 의미가 아닌, 성경을 기록할 당시 헬라인들은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온유함 (프라에이스)이란 단어는 당시에 3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 환자가 고열로 고통당할 때 의사가 준 약을 먹고 열이 떨어져서 단잠에 빠진 상태를 프라에이스-온유하다고 합니다. 두 번째, 폭풍우가 몰아치던 바다가 갑자기 비바람이 그치고 잔잔할 때 프라에이스-온유라 합니다. 세 번째, 길길이 날뛰던 야생마가 훈련되어져서 온순해진 상태를 프라에이스-온유하고 했습니다.
세 번째 뜻에 주목해 보십시오. 길들여진 야생마가 온유함을 잘 설명해 줍니다. 온유함이라는 것은 나약하고 연약한 것이 아닙니다. 강한 힘이 있지만 절제되어진 것입니다.
온유함이란 온순하고 미약한 것이 아닙니다. 힘이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이 있습니다. 그 마음에 열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과 열정에 끌려가지 않고, 정의와 선을 이루기 위해 절제하는 힘을 말합니다. 이것이 온유함입니다.
야생마가 길들여져서 온순해지면 힘차게 달리지 못합니까?그 힘과 기상은 여전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의 뜻대로 달리지 않고, 주인의 뜻대로 자신의 힘을 사용합니다. 이것이 온유함입니다. 그래서 온유함은 ‘길들여진, 또는 굴복되어진’이란 뜻입니다.
2. 성경에 나오는 온유한 자
성경에 온유한 자가 나옵니다. 온유한 자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두 인물이 구약과 신약에 있습니다.
첫 번째 인물은 모세입니다. 민 12:3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모세는 유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모세는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도 자기 백성을 데리고 나가야겠다고 말하던 사람입니다. 200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려면 유약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모세에게 불평하고 원망합니까, 또 돌을 들어서 치려고 한 적이 여러 번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견디어 냅니다. 금송아지를 섬기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분노합니다. 이런 모세를 온유하다고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굴복되어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온유한 사람입니다.
두 번째 인물은 예수님입니다. 마 11:29에 보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입니다. 그렇다고 나약한 분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누구도 예수님보다 더 강하고 능력 많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온유하다고 말합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온유하심은 나약함이 아니라, 세상의 죄를 구속하는 강함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께 굴복되어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을 드린 분입니다.
5,000명분을 혼자 먹는 사람, 5,000인분의 식사비를 한 끼에 사용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을 가지고 5,000명의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강한 사람은 혼자서 많은 땅을 정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먹고살 수 있는 땅으로 만드는 사람이 정말 강한 사람입니다. 온유하신 예수님은 이런 분이셨습니다.
‘강한 것은 딱딱한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혀와 이빨 중에 어떤 것이 더 강합니까? 이가 강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는 다 빠져 버립니다. 그러나 부드러운 혀는 여전합니다.
나무를 보아도 딱딱한 나무가 강한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나무가 강합니다. 나무가 딱딱해졌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마른 장작이 딱딱하고 강해 보입니다. 그러나 죽은 나무입니다. 꺾으면 꺾여집니다. 살아있는 나무는 부드럽게 휘어집니다.
딱딱한 사람이 강하지 않습니다. 딱딱하게 버티다가 부러져 버립니다. 부드러운 사람은 어떤 공격을 받아도 부러지지 않습니다. 내면의 힘이 있기에 여유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받아줄 힘이 있기에 부드러운 것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정말 강한 사람입니다.
3. 땅을 기업으로 받음
온유한 사람이 받는 복이 무엇입니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사람이 땅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을 말할까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땅을 분배받은 것처럼 부동산을 갖게 되는 것일까. 시 37:9-11은 “땅을 갖는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여호와를 소망하는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땅을 갖는 것은 그것을 누리며 즐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종합해보면 땅을 얻는 것은 “소유권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단순히 땅을 갖고, 물건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들을 누리고, 만족해하며 즐기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가진 권리를 즐기는 것이 땅을 얻는 것입니다. 처음 집을 사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어떤 분은 무리해서 큰 집을 샀습니다. 처음에는 좋았는데 여름이 되니 물값, 전기값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에어컨을 틀 수 없습니다. 겨울에도 난방을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끄고 삽니다. 그래서 방 하나에 포터블 에어컨을 놓고 여름을 보내고, 겨울에는 전기난로를 놓고 겨울을 보냅니다. 이런 것은 자신의 소유를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옷을 샀습니다. 한 번 입고 나니 싫증이 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입지 않고 옷장에 걸어둔 옷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옷장에 있어도 내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소유권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땅을 기업으로 얻는 것은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그것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온유한 자가 누리는 복이고 특권입니다.
온유한 마음이 없이 얻은 집은 그곳에 살고 있지만 만족이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물건을 사도 온유한 마음이 없으면 불평만 생깁니다. 그렇게 사랑해서 부부가 되었는데, 왜 결혼 생활을 즐기지 못합니다. 왜 만족하지 못합니까? 온유한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불평을 합니다. 내가 눈이 잘못되었지, “어쩌다가 저런 것을 선택 했을꼬”하며 한탄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온유함이 없으면 그것은 나의 소유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보면, 작은 것도 그렇게 소중합니다. 그렇게 감사합니다. 온유한 마음을 가질 때에 비로소 실제 소유하게 되고 누릴 수 있습니다.
누가 땅을 얻습니까?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이 온유한 사람만이 가진 것을 누립니다.
온유한 자는 자신이 가진 힘으로 사람을 해하고 죽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힘으로 사람을 일으키고 세우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자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영향력을 넓혀나갑니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생깁니다. 이것은 사람이 사는 모든 곳에서 동일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어려움은 문제 때문이 아닙니다. 문제가 있어도 온유하고 성숙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혜롭게 잘 해결해 내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는 문제가 계속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계속 문제와 어려움이 올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가 온유한 마음으로 문제를 대해 보십시오. 그러면 어려움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고 부드럽게 지나갑니다.
성도들끼리, 친구들끼리 수십 년 함께 하는데, 왜 문제가 없겠습니까? 싫어질 때가 분명히 올 것입니다. 그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온유한 마음을 가지세요. 온유함으로 상대를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온유하신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하심으로 전 세계에 많은 땅을 얻었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게 됩니다. 여러분은 온유함으로 많은 땅을 얻으십시오. 자신의 지역에서 많은 영향력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의 온유함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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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