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장로교회)
할렐루야! 평안하셨죠?
평안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샬롬"의 뜻은 완전함인데요, 이 단어가 육신에 쓰일 때는 건강을 의미하고,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는 풍년을 의미하며, 나라의 지도자에게는 전쟁과 환난이 없는 태평성대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늘 이러한 주님의 "샬롬"으로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히브리서 3장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잘못하고 구제불능이 되었더라도, 그 예수를 더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하라는 것인데요, 그러면 그 예수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를 먼저는 사도라 했고, 그다음은 대제사장이라 했습니다. 사도는 누구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예수님께 직접 배우고 파송을 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하죠? 그런데 예수님이 어떻게 사도라는 것입니까? 영어 성경을 보면, 본문의 예수님에게 사용된 ‘사도’란 말에는 정관사 ‘the’가 붙어있는데요, 다른 사도들에게는 다 부정관사 ‘an’이 붙어있었습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다 ‘an apostle’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만 ‘the apostle’ ‘그 사도’라고 표현했을까요? 그분만이 유일하게 참되고 특별한 사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특별한 것일까요? 그분은 다른 사도와는 달리, 보내신 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누가 보내셨습니까? 성부 하나님이 직접 보내셨다는 것이죠. 오직 예수님 만이 그러하십니다. 예수 외에 누구도 이런 사도가 없죠? 그래서 ‘그 사도’(the apostle)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라고 하셨는데요, 여기서도 길이나 진리나 생명에는 모두 정관사 ‘the’가 붙어있죠? 예수님 만이 유일한 구원의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저자는 이 ‘the’라는 단어 하나로 예수님을 모세나 다른 선지자들이나 사도들과 차별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 저자가 예수님이 가지신 사도의 권위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그 이유는 바로 그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의 권위, 복음의 권위 때문이죠? 세상에서 누가 전한 말씀이 가장 정확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뜻이겠느냐? 당시 유대인들이 신봉했던 천사나 선지자를 통한 말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완전하고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총체적으로 전달하신 유일한 사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예수의 말씀을 더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천사와 선지자들을 통해 전해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그러므로 성도는 율법이나 선지자의 말들도 믿고, 순종해야 하지만, 그러나 율법이나 선지자의 말은 완성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의 말씀만이 하나님의 완성된 말씀이라는 것인데요, 그래서 모든 구약성경을 무엇으로 해석돼야 하느냐? 예수의 복음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도 버려서는 안 되지만, 구약의 모든 말씀은 오직 예수의 복음으로 올바르게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성도는 예수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리에 순종하는 참된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본문 3:7-4:13에서는, 모세의 인도를 받았던 이스라엘의 예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아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이제는 우리 신약시대 성도들도 우리를 인도하는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 오직 그분만 집중해서 바라보며, 그분의 말씀에만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본문은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 표현했는데요, 어떻게 예수님이 대제사장일까요?
이런 표현들이 히브리서의 독특함이라 할 수 있는데요, 대제사장은 누굽니까? 인간의 모든 제사를 대표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죠? 대제사장은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유일한 중재자인데요, 라틴어로는 Fontifex ‘교량을 세우는 자’ 그러니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어떻게 대제사장이라는 것입니까? 오직 그분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는 유일한 중보자이시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구약의 대제사장은 바로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하였던 그리스도의 그림자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골로새서 2장에도 나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편에서 그분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우리 편에서도 우리의 고백과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다리 역할을 완벽하게 하신다는 것인데요, 그것은 오직 그분만이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 사도요,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도 말씀을 들을 때 예수만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어떤 염려나, 근심거리나, 유혹이나 시험 앞에서도 오직 예수만 깊이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깨닫게 될 줄 믿습니다. 반드시 문제 해결의 올바른 실마리를 얻게 될 줄 믿습니다.
본문 3장 1절에서 시작되는 ‘그러므로’라는 단어는 2장 18절을 받고 있는데요,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시험을 당할 때, 앞서 히브리 기자가 말한 천사나 모세나 다른 것 볼 게 아니라, 오직 예수만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오직 그분만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시험 중에 있는 자를 능히 도우시는 참된 위로자요, 하나님의 참된 진리의 사도요, 참된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헬라어로 ‘카타노에오’라는 단어를 썼는데요, ‘주목하다. 주의깊게 살피다’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 ‘오직 예수만을 주목하고 주의 깊게 살피라’는 것인데요, 그러니까, 성도는 결코 예수 외에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만을 뚫어지게 집중해서 바라보면서, 예수만을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마음은 어떠하시고, 성품은 어떠하시고, 어떤 삶을 사셨고, 그래서 지금 내가 따라야 할 삶은 무엇이며, 또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성도는 그 삶이 오직 예수께 집중된 시선으로 무엇이든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유대인처럼 단지 기록된 말씀만을 귀하게 여기고 묵상하며 따르고자 하는 신앙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예수께 집중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망과 불평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오려고 할 때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예수님을 생각하며 참으셨죠? 그리고 용서하셨죠? 자신이 대신 그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참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사실 용서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벧전 2;19)라고 하였죠. 그렇다면, 여기서 베드로는 누굴 생각하며, 하나님을 생각하라고 했을까요? 예수님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어지는 21절을 보면,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용서가 힘들고 어려워도 예수만 생각하며 용서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막 용납이 안 되고, 힘들어도, 결국 용서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오직 예수만을 생각함으로, 죽는 날까지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아무리 사탄이 우릴 시험하고 유혹하더라도 예수만을 바라봄으로 포기하지 말고, 설령 포기했다 하더라도 또다시 그 예수만을 바라봄으로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했죠.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진다!)”(고후 4:8-10) 그러면 반드시 예수의 생명이 나의 몸에 나타난다!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역사가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범죄한 모습을 가지고 살지만, 이 복음의 말씀을 붙들 때,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그리스도만을 깊이 생각하고 주목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어렵고 힘들수록 더 그리스도만을 생각하고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험에 들어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너지고, 신앙의 퇴보를 가져올 수 있고, 변형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시선을 돌릴 때, 물속으로 빠져들어 갔지 않습니까? 그때, 예수님이 뭐라 하셨습니까?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14:31)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만 바라보지 못하고, 예수를 바라본다 하면서도 자꾸 다른 것을 함께 바라본다면, 그것이 적은 믿음이고, 나를 세상의 유혹 속으로 빠뜨리는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온전한 믿음이고, 승리하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예수만을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어떤 시험과 유혹과 고난도 반드시 이기게 될 줄 믿습니다. 반드시 여러분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더 크고 은밀한 하나님의 소원과 역사를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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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