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십니까? (창세기 33:18-20)

한세영 목사 (워싱톤메시야장로교회)
한세영 목사

(메시야장로교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로써, ‘어디로 가느냐’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야곱을 보면, 이것이 아주 큰 문제가 되어 인생의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밧단아람에서 외삼촌 라반과 그의 자녀들로부터, 얍복강가에서 형 에서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가나안으로 돌아온 야곱이 등장하는데, 어디로 갑니까? 

성도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삶의 온갖 어려움과 시련들을 극복함으로 평안을 얻었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이제 야곱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죠. 그런데 야곱이 어디로 갑니까? 본문 17절을 보면, ‘그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잘 하고 있는가요?

여기서 집을 짓고, 우릿간을 지었다는 말은 야곱이 이곳에 오랫동안 거주할 생각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야곱이 숙곳에 머물렀던 까닭을, 첫째, 지난 20여 년간 피곤했던 밧단아람에서의 삶을 이곳에서 쉬면서 재충전하기 위함이었고, 둘째,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할 때 얻은 환도뼈 골절로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라 보는데, 이해할 수 있는 일이죠? 

여러분이 20년 이상을 한 번도 쉬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오다가, 어느 시점이 되어 휴식을 갖는 일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죠? 그러나 영적인 면에서는 어떨까요? 문제가 있죠? 

무엇이 문제입니까? 지금 야곱의 말에는 ‘자기를 위하여’, ‘짐승을 위하여’라는 말만 나오고, ‘하나님을 위하여’라는 말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셨는데 하나님을 위해서는 살지 않고 나만을 위해 산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어지는 33장 18절 이하를 보면, 그다음으로는 그가 세겜으로 가서, 그 세겜성 앞에 땅을 사고 있는데요, 이것은 집을 짓는 것보다 더 확실한 정착의 의미가 있죠? 그래서 땅을 무려 백 크시타에 샀는데, 혹자는 1크시타를 새끼 양 한 마리로 봅니다. 그는 백 마리 새끼 양을 주고 땅을 샀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얼마나 큰 땅을 샀을까요? 

그런데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을 위해 얻은 것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운운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죠? 그래서 문제가 터지죠? 

어떤 문제가 터집니까? 34장을 보면, 그의 외동딸 디나가 세겜성을 방문했다가 강간을 당하고, 그로 인해 그 형제들이 세겜 사람을 죽이며, 엄청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제단을 쌓고,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했다는 말은 어떤 의미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이용했다는 것이죠? 그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면서도, 하나님을 멀리하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의로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죠? 이것은 그의 무지와 연약함에서 비롯된 실수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아직은 잘 몰라서, 또 믿음이 연약해서 저지르는 실수와 허물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것들은 괜찮을까요? 그러나 야곱은 그로 인해 세겜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주변 족속들로부터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할 수 있는 아직 심각한 위기 가운데 빠지는데요, 이런 실수와 허물은 결코 괜찮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아무리 무지하고 어리석어 실수한다 해도, 괜찮지 않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제 야곱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데요, 그러나 35장을 보면, 이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 하시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첫째, 성도의 인생은 아무리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더라도, 얼마든지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누구나 무지하고 부족함이 많기 때문이죠. 이것은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경험한 위대한 성자라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무엇을 좀 안다고, 경험했다고, 이제는 실수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했는데요, 그러므로 뭘 좀 안다고, 좀 괜찮아졌다고 생각할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받은 은혜와 복이 도리어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고, 더 큰 시련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죠?

 

둘째, 전지전능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그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무지와 연약함으로 인해 실수하고 당하는 시련을 허용하신다는 것인데요, 이 부분은 인간이 책임져 할 부분이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죠?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을 때도, 전혀 관여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선택에 맞기셨죠? 

또 가인이 범죄하기 전에도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했죠?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 그런데 가인이 어떻게 합니까? 그는 오히려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그의 아우 아벨을 죽였습니다. 누구의 책임입니까? 가인의 책임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짓는 죄는 누구의 책임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내가 범죄하는 것을 막아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내 책임 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범죄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도, 우리가 범죄하는 것은 내 책임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오히려 내 책임을 돌아보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의 실수와 시련을 허용하실까요? 1)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잘못한 것에 대하여는 그게 잘못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라도 실수와 시련을 허용하시는 것이죠. 2)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그 실수와 시련을 통하여, 과연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죠.  3)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지를 깨닫게 하시며, 결국 우리를 더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기 위함인데요, 그래서 로마서 5장 3절로 4절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말씀했습니다.

 

셋째,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작은 허물과 실수 때문이라도, 본문의 야곱과 같이 엄청난 고난도 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사한번 잘못 갔다가, 그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고, 그의 아들들이 세겜의 남자들을 속여 살인을 저지르고,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가 잘못한 것은 단지 이사를 잘못 간 것 밖에 없는데,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했을까요? 

그러나 오늘날 우리도 오직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오직 나만을 위해 살고자 하면, 얼마든지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항상 경거망동하지 말고, 오직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어디로 가야 했던 것일까요? 창세기 28장 벧엘 광야에서 하나님과 약속한 바와 같이, 벧엘로 갔어야 했죠? 그리고 결국 아브라함과 이삭의 언약을 이어받기 위하여, 아버지 이삭이 있는 헤브론으로 갔어야 했는데요, 그런데 야곱이 기억하고 있었습니까? 

이런 것을 다 잊어버리고 있었죠? 창세기 34장을 보면, 심지어 그가 세겜의 사건으로 인해 주변족속들로부터 쫓김을 당해 멸문지화를 당할 지경에 이르렀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것이 어리석은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처럼 아무리 고난을 당해 깨닫지 못하는 야곱은 어떻게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넷째,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와 고난을 허용하실지라도, 결국은 반드시 우리를 건져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신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이제 35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가르쳐주시고 계시죠? 35장 1절의 주어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시죠? 이제는 오직 하나님이 그의 주권자이심을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야곱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은 야곱이 어리석음으로 고난 가운데 헤매고 있을 때,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삶의 주권자도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리석고 모자라 실수하고 고난당할지라도 하나님이 도우실 줄 믿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못나고 부족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느니라”(롬 8:28)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아무리 실수하고 어려움을 만난다 하더라도, 항상 나를 도우심으로 선한 길, 축복의 길을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항상 나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만 믿고 바라며, 순종함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5장 5절을 보면, “야곱이 벧엘로 올라갔을 때, 하나님이 그 사면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심으로 그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여러분의 실수와 허물로 고난을 당할지라도, 오직 말씀에 순종한다면, 문제가 해결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한번 큰 은혜와 복을 받았다고 그것이 우리의 삶과 영적건강을 영원히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그러고도 얼마든지 또다시 불순종하며 실수하고, 시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받은 은혜를 지키고자 한다면, 늘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살피며, 더욱 예배와 기도 가운데 말씀에 순종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고, 늘 하나님의 집, 벧엘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복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해도, 실수하고 시련을 당한다고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못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여러분을 위해 역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실수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을 버리지 않고, 반드시 오늘 야곱과 같이 다시 일으켜 세우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어리석고 무지함으로 죄악 가운데 방황하는 인생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이죠. 하나님은 어리석고 무지한 우리 인생들을 위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셨고, 그로 하여금 십자가까지도 지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여러분을 이 자리에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임마누엘이라 하라는 하셨는데요, 그러므로 꼭 그 예수 안에서 이와 같은 놀라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syhan91@hotmail.com

04.27.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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