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교회, 풀러 Th. M
1995년 6월 29일 정확하게 오후 5시 57분, 서울 서초동에 있는 삼풍백화점이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사망자만 502명, 부상자 937명, 6명은 실종. 선교지에서 이 사건의 보도를 접하고는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전에 살던 아파트와 아주 가깝게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자주 찾았던 백화점인데다가 백화점이 무너진 바로 그 시간 어간에 그 곳을 찾은 적이 몇 번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선교지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나도 그 피해의 당사자였을 수 있다. 더군다나 그 백화점은 당시 가장 최근에 지어졌기에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이 넘쳤었다. 핑크빛과 강한 코발트색의 대비로 건물 색깔부터 부티가 흐르는 건물이 어떻게 이렇게 어이없이 허물어질 수 있단 말인가!
그 백화점의 붕괴 이유는 한 마디로 잘못된 인간의 욕심 때문이었다. 원래 지하 4층, 지상 4층의 건물이었는데 완공 직전에 용도를 변경하여 지상 5층으로 둔갑시켰다. 또한 더욱 많은 점포들을 들이기 위해 건물의 하중을 견디게 하는 장치 중 하나인 벽들을 많이 없애 버렸다. 게다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원래의 철근보다 가는 철근을 사용하였고 심지어 L자 철근을 써야 할 곳에 1자 철근을 썼던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건축물을 짓는 자라고 하였다. 그런데 금이나 은이나 보석과 같이 견고하고 영구적인 재료로 짓는 자도 있지만 나무나 풀이나 짚과 같은 약하고 일시적인 재료로 집을 짓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각각 다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해 노력하고, 그 집들은 외적으로 비슷해 보이거나 어쩌면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집이 더 좋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차이는 마지막 날 불 시험에서 드러난다. 영구적인 재료로 집을 짓는 자의 집은 그대로 있지만 일시적인 재료로 지은 집은 불타고 만다. 기껏 일생을 공들여 지은 집이 심판의 날에 다 불타 버린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여기서 중요한 강조점은 노력의 정도가 아니라 재료의 차이다. 즉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애쓰고 노력했는가가 이 비유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무슨 재료로 지었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트리나 포올러스의 그림책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이야기. 줄무늬 애벌레가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높은 기둥을 바쁘게 오르는 애벌레 무리를 만나 자신도 뭔가 꼭대기에 오르면 분명히 생각하는 것 이상이 있을 거라 여기고 무작정 올라간다. 그 기둥에서는 다른 애벌레들을 밟고 기어오르느냐 아니면 밟히느냐 오로지 그것만이 문제였다. 그런데 수많은 애벌레들을 밟고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그 허망함이란... 줄무늬 애벌레의 행복은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서 나비가 되는 데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내 방식의 헌신을 기뻐하시는지를 항상 돌아보아야 한다. 성경은 거룩한 책이면서 거룩한 거울이다. 말씀이라는 거울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면서 자기를 돌아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공들여 쌓는 빌딩이 마지막 날에 불타 버릴 수도 있다는 경고를 가슴으로 새겨야 한다.
올해 4월 대만에 7.2강도의 대지진이 있었다. 많은 건물들이 무너졌는데 대만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지하 5층, 지상 101층의 <타이페이 101>은 끄떡없었다. 2004년 건축할 당시 이 건물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빌딩이 안전을 유지한 비결은 그 빌딩의 87-92층 사이에 있는 댐퍼보이라는 구체(具體) 때문이다. 댐퍼란 진동을 흡수하는 장치를 의미하는데 엄청난 두께의 강철을 잘라서 공 모양으로 붙여놓은 것이 댐퍼보이다. 이것의 무게는 자그마치 660톤, 92개의 케이블로 건물 안에 매달아 놓았다. 지진이 나서 건물이 흔들리면 댐퍼보이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어 균형을 유지하기 때문에 이 건물은 극한의 지진을 견딘다. 우리에게도 이런 하나님의 댐퍼보이가 필요하다. 제아무리 삶이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균형추와 같은 말씀 위에 선 섬김과 봉사여야 땅이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고 마지막 날에도 불타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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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