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교회, 풀러 Th. M
성경은 사람을 미화하지 않는다. 우리가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자라 해도 그가 허물이 있는 연약한 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곤 한다. 유대인들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자기 목숨을 위해 비겁하게도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고,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도 낳아서는 안 될 아이를 낳기도 하였다. 다윗은 또 얼마나 대단한가. 그러나 성경은 그가 하나님의 이름 대신 골리앗의 칼을 의지할 때도 있었고 불륜과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인간이라는 사실을 공개한다.
바울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지만 그도 사역의 실패를 경험하였다. 2차 전도여행 중 아덴에서 전도할 때 그 지역 사람들이 철학과 수사학을 좋아하고 종교성이 풍부한 점을 고려하여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전도하고 자신도 학문적으로는 꿀릴 것이 없다는 인간적 자신감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그에게 복음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롱하였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으나 복음을 받아들이지는 않았고, 소수의 사람들만 친분 관계 때문에 믿을 뿐이었다. 그래서 다음 전도대상지인 고린도에서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원색적으로 전하였고, 자기 때문에 복음의 빛이 가리지 않도록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면서 전하였다. 그는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을 쓰지 않았고 다만 말씀에 붙잡혀 성령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며 복음을 전하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비록 대적자들의 비방은 있었지만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였고 세례를 받았다.
목사는 강단에서 실패와 성공을 경험한다. 어느 날은 설교 준비가 잘 될 때가 있다. 내심 설교학적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심을 느낄 때도 있다. 그래서 이 정도면 교인들이 은혜를 받겠다고 생각하고 설교할 때마다 죽을 쑤었다. 어떤 날은 설교 준비에 아주 애를 먹으면서도 잘 준비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한탄하곤 한다. 심지어 설교 원고가 채 끝나지 못한 상태에서 강단에 서야 할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정말 다급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애타게 부르짖으며 주님의 도움을 호소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 쪽의 준비가 미흡할 때 오히려 주님의 은혜가 임하여 말씀을 그 어느 때보다 힘 있게 전하곤 한다. 그래서 이제는 설교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좀 더 많이 할애한다. 설교에서 중요한 것은 내 준비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느 교회에서 5, 6학년 교육전도사로 일할 때였다. 여름 수련회 때마다 유명한 외부강사를 모셨다. 그러면서 나도 저렇게 어린이 부흥회를 인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생각하였다. 3년 차가 될 때 용기를 냈다. 이번에는 내가 여름 수련회 강사로 섬기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런데 곧바로 후회막급이었다. 그 해 너무나 복잡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처음 부흥회라는 것을 인도해야 하는데 설교 준비를 제대로 할 상황도 아니었다. 너무나 답답하여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주일학교 교사들에게도 내 사정을 설명하였더니 다들 한마음이 되어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다.
그런데 수련회에 가서 개강예배를 드릴 때부터 은혜가 임했다. 개강예배는 대개 의례적으로 드리지 않는가? 잔디밭 땡볕 아래서 핸드마이크를 들고 설교하는데 성령님이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계속 되는 집회마다 은혜가 넘쳤다. 이런 일도 있었다. 3박 4일의 수련회에서 둘째 날 영화 상영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전구가 나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전구를 교체하여 다음 날 영화를 상영하였다. 영화 제목이 <불타는 지옥>. 그런데 그날 저녁 나의 설교 주제가 천국이었다. 어린이들은 영화를 통해 지옥이 어떤 곳인지를 보고, 천국의 영광스러움에 대해서 듣고는 기도회가 시작되자 데굴데굴 구르며 울부짖었다. 그날 밤 많은 아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목회자와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모든 교사들이 이번 집회는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이지만 주님의 사역은 철두철미 주님의 작품이다. 사역의 성공은 우리가 약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떠는 데서 시작된다.
08.31.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