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장로교회)
‘여행의 시간’이란 제목은 너무나 답답하다. 참 여행은 떠나는 것, 누리는 것인데 그 발걸음마저 시간이라는 틀 속에 넣어버린다면 그 여행은 이미 자유를 뺏기고 묶여버린 상태가 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제목은 선택을 했어야 했다. ‘여행’이냐 ‘시간’이냐? 기독교신앙은 여행이다. 그런데 시간이 소요되는 여행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여행이다. 참 여행. 멀리 온 우주만물 태초의 시간을 둘러볼 수 있고, 저 멀리 오고있는 그 날(The day)의 재림과 심판과 구원의 날도 미리 둘러볼 수 있기 때문에 기독교신앙은 시간을 초월한 여행, 영원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교단(KAPC) 총회가 기대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총회가 미국 동부, 서부, 중부 등 각 지역을 돌아가며 개최하기 때문에 총회를 참석하면서 가보지못한 지역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최근에만 해도 총회 덕분에 서부에 살면서 뉴욕여행을 할 수 있었고, 시카고 여행도 할 수 있었다. 올 봄에는 가까이지만 자주 갈 기회가 없던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10년만에 방문할 수 있었다. 이런 지역들을 방문하면서 세계적인 도시인 맨하탄이나 노아의 방주, 창조박물관, 금문교를 방문함으로써 시간을 넘어선 초월여행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을 시간초월여행으로 인도해가는 것이 목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최근, 성경공부 교재로 펼쳤던 창세기 여행과 요한계시록 여행도 그랬지만 요즘 함께 배워가고 있는 출애굽기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또 새로운 감동은 분명히 멋진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주고 있다. 여행은 소그룹이든 몇 십명 그룹여행이든 인도자에 따라 그 질이 많이 좌우되곤 한다. 어느 장소에 왔다간다는 기록남기기에 집중하는 인도자와 함께 하는 여행은 주변 경치나 그 곳이 가진 의미는 안중에 없고 그야말로 여행사 깃발만 따라다니다 기념사진 몇 장 촬영한 것 밖에는 남는게 없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시간 맞춰 끌고다니는(?) 스케쥴 때문에 피곤한 하품소리만 가득한 경우도 경험하곤 한다. 여행은 인도자의 역할이 이토록 중요하다. 그러나, 한편 여행의 감동은 무엇보다도 여행자 본인의 마음에 달려있기도 하다. 무엇을 보아도 시큰둥하거나 불평으로 참여한 여행객에게는 그 어떤 탁월한 인도자 그룹과 함께 하는 여행일지라도 아무런 감흥이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풀 한 포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결 하나에도 “오~”, “wow~‘감탄이 넘쳐나온다면 그 여행은 얼마나 행복한가! 신앙생활, 감탄이 없는 여행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여행 인도자와 같은 역할의 교회리더들이 보여주는 낯뜨거운 문제들, 교회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한 여행객 같은 평신도(?)들이 던지는 문제들. 그 문제와 씨름하다 여지없이 한판 패로 끝나곤 하는 신앙생활이 얼마나 많은지. 여러 이슈들은 시간에 따라 솟아나왔다가 흘러가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그 흐름 속에 빠져버리는 신앙이다. 허우적대며 산다. 기독교신앙이 겨우 그 정도라면 성경을 관통하는 구속사와 하나님의 세미한 손길들을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취사선택(取捨選擇)이란 단어에는 지혜를 요구하는 뜻이 담겨있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려야하고 붙잡아야할 것은 마땅히 붙잡아야 한다. 시간은 붙잡아 두고자하는 욕심 안에 머문다. 그러나, 여행은 벗어나는 자유와 연결되는 의미의 단어이다. 교회는 언제나 문제가 많다, 그러나 교회문제에 빠지지 말고, 여행에 나서기를 바란다. 태초의 창세기부터 마지막날의 요한계시록까지 여행을 떠나보라. 한여름 더위일지라도 시간을 초월한 영원여행에 올라서면 하루가 감탄사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djlee7777@gmail.com 08.17.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