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민경엽 목사 (나침반교회)
민경엽 목사

나침반교회, 풀러 Th. M

언제부터인가는 모르겠다. 꽃들을 자세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아마도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를 읽은 다음일지도 모르겠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무릎을 치며 감탄한 기억이 있다. 그 뒤로는 더욱 꽃들을 자세히 관찰하는 태도가 생겼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꽃들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다. 그저 좋았다. 교회당 앞 정원에 피는 어떤 다년생 꽃은 너무나 작은 꽃들인데 마치 새의 형상을 하고 있다. 마치 떼로 몰려다니며 군무를 벌이고 있는 모양새다. 강인한 생명력에도 불구하고 몇 년 동안 건조해서 ‘새들’의 수가 줄어들었을 때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응원하였는데 지난해 캘리포니아에 비가 많이 와서 요즘은 ‘새들’이 너무 많아 보는 마음조차 즐겁다. 우리 집 마당에 하얀 나리꽃들을 보면서 꽃술을 자세히 살피니까 연한 보랏빛이 마치 수채화처럼 퍼져 있어서 볼 때마다 감탄한다. 꽃들의 마디가 계속 올라오면서 여러 꽃봉오리들이 다 함께 피고 다 함께 진다. 장미와 같은 정원의 여왕 같은 꽃들을 보면서 향기를 맡는 것도 좋지만 길가에 핀 이름 모를 아주 작은 꽃들을 보면서도 자세히 보니까 마치 꽃들이 자기 좀 보아달라고 응석을 부리는 것처럼 여겨져 사랑스럽다.

사실 자세히 보고 싶은 것이 꽃만은 아니었다. 서재에 앉아 있으면 나무들 몇 그루가 보인다. 그 나무들에 가끔 새들이 날아와 앉는다. 그들의 하는 짓이 재미있어서 자세히 살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망원경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오래 생각하였는데 선뜻 사기도 뭐하여 망설였다. 올해 생일 때 큰 아이가 묻길래 “망원경”을 주저하지 않고 외쳤더니 생애 처음 가져보는 조그마한 망원경을 사주었다. 벌새는 내가 아는 가장 작은 새인데 가끔 날아와 요란스럽게 날개를 흔들며 춤을 추는 모습이 앙증맞다. 그런 모습들을 망원경으로 보니까 실제로 그들의 날갯짓은 엄청나다. 망원경을 초점 맞추는 사이에 이미 다른 데로 날아가는 벌새를 관찰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날개로 난다기보다는 떨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어울릴 것 같은 벌새를 자세히 관찰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지난주에는 망원경 가진 덕을 단단히 보았다. 신학교 동문들과 창조과학탐사여행을 다녀왔다. 창조론 강의를 들으면서 자연을 살폈다. 오래전 다녀온 곳들이지만 강사의 설명을 듣고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더욱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신비롭게 여겨졌다. 한국인들의 버켓 리스트 1위라는 웅장하고 아마득한 깊은 계곡의 그랜드캐년, 무리를 지어 가만히 서 있는 미어캣처럼 생긴 화려한 여성미 넘치는 브라이스캐년, 너무나 거대한 바위들로 보는 이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남성미 가득한 자이온캐년을 망원경으로 보면서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찬양하는 듯하여 감탄이 절로 나왔다.

긴 시간 동문들과 여행을 하면서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현재는 무슨 사역을 하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사역할 건지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개중에는 신학교 졸업한 이후에 처음으로 만나는 이들조차 있었다. 저마다 자기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을 때 긴 세월의 무게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까마득한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젊은 시절 나의 사역에 대한 열정과 몸부림도 기억이 났다. 신학교 동문들이니 서로 모르는 처지는 아니었으나 자세히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욱 사랑스러운 마음에 마음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내 삶을 살기에 바빠서 나만 잘난 줄 알기도 하였고, 나만 뼈 빠지게 고생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동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보다 더 고생하고, 더 열심히 사는 이들이 많은 것에 마음이 낮아지기도 하였다. 동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마다 소중함이 새삼 다가왔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 교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뜻 볼 때는 그저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라도 마음의 망원경으로 자세히 그 삶을 들여다보면 이해할 측면이 있고 사랑스러운 구석이 느껴질 것이다. 자세히 보면 불쌍하지 않은 교인이 없다. 자세히 보면 사랑스럽지 않은 교인도 없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대충 보고 함부로 판단하기를 거듭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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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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