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교회, 풀러 Th. M
이번 달에 내가 속한 오렌지카운티교회협의회(교협)에는 큰 슬픔이 있었다. 회장인 박재만 목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박 목사는 작년 3월경에 대장암 4기로 진단을 받았다. 박 목사는 암을 진단받고도 흔들림이 없었다. 자신이 하던 목회 일을 꾸준히 하였고 교협 사역에도 열심을 냈다. 그러면서 나름 치료에 힘을 쏟았다. 놀랍게도 11월에는 암세포가 다 사라졌다는 판정을 받았다. 올해 교협 회장직도 맡았고 나름 열심히 맡은 바 책임을 감당하였다. 그런데 올해 초에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임종을 하는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손에는 힘이 있었기에 세상을 곧 떠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존 윔버 목사가 말했듯이, 죽음으로 판명 날 때까지는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것이 옳다고 권면하였다. 그런데 이런 조언이 무색하게 무엇이 그리 급하셨는지 하나님은 그를 곧바로 불러가셨다.
박 목사와는 2014년에 처음 만났다. 그때는 내가 교협 회장일 때였다. 그 당시 월례기도회가 있어서 박 목사에게 설교를 부탁하였다. 박 목사는 대뜸 “무엇을 설교하면 좋을까요?”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대부분 목회자들이니까 목회에서 성공한 이야기보다는 실패한 이야기를 하면 더 많이 위로를 받을 겁니다.”라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그런 거라면 자신이 있습니다. 저는 실패를 많이 한 사람이거든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박 목사는 설교에 은사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 때 그가 한 설교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주제와 대지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는 말씀이 본문이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해서 자기 목회에서 실패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젊어서 개척했을 때 교만하게도 믿음 소망 사랑, 이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씀이 틀렸다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사랑이 제일이 아니라 믿음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지 않으셨는가? 믿음만이 최고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모든 것을 믿음으로, 믿음으로 밀어붙였다고 한다. 그랬더니 교회 문을 닫게 되더라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안 된다는 벽에 부닥쳐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말씀을 다시 묵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믿음이 아니라 사랑이로구나!’ 그래서 그때부터 교인들을 열심히 사랑해 주었다고 한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교인들을 사랑해 주고 섬겼다고 한다. 필요하다면 교인들 라이드도 직접 해주고 부지런히 심방을 다니고 물불 안 가리고 몸도 마음도 물질도 다 쏟아 부었다. 그랬는데, 어느 정도는 되는가 싶더니 또다시 교회가 깨지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고 하였다. 너무나 낙심이 되던 어느 날,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제일 되는 것은 은혜라는 사실이다.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다 인간이 행하는 것들이지만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결국 목회를 하면서 오직 은혜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간증을 통해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큰 은혜를 받았다.
나의 믿음, 나의 소망, 나의 사랑, 다 중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나에게 주어질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내 믿음, 내 소망, 내 사랑을 자랑하고 싶은 욕구가 독사처럼 고개를 쳐들 때가 있다. 그런데 정신 줄을 다시 붙잡고 나 자신을 돌아보면 오직 은혜뿐이다. 은혜가 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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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3.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