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장로교회)
컴퓨터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던 시절, 투박하고 커다란 그 기계는 마냥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주판과 계산기를 사용하던 때 나타난 컴퓨터는 문과(文科)인 나에게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는데, 연필이나 만년필로 원고지를 채워가거나 흰 종이에 운(韻)을 맞추고 행간(行間)을 정돈해 마무리한 글을 읽으며 지식을 채우고 마음을 정돈하던 글쓰기 습관이 바뀌게 되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나타난 모니터 화면에서 글을 정돈하는 글쓰기 습관은 오히려 손 글씨로는 글쓰기가 불편해질 정도가 되었다. 한마디로 설교문 작성도 컴퓨터 자판으로 더 수월해진 상황이 되었다.
처음 컴퓨터를 배울 때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것이 바로 컴퓨터의 체계(體系)였다. ‘컴퓨터는 단순하게. 1과 0으로 소통하는 기계이다’라는 말을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컴퓨터의 ‘1과 0’의 체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첫 배움 당시 강사의 이 설명이 기억난다. “컴퓨터의 세계에서는 0과 1이라는 숫자 외에 2~10까지와 같은 다른 숫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수학에서 배운 진법(進法)을 모르는 바 아니었고, 초등학교 때 암기한 구구단을 수 십년 넘게 사용하면서 경제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진법(Binary)으로 이루어진 컴퓨터의 세계는 낯선 나라같았다.
새해, 우리는 컴퓨터 세계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2024라는 큰 숫자 속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1과 0의 나라’인 컴퓨터가 2024라는 숫자 속에 담긴 365일의 날들을 이미 자기 수하에 두고 이 새해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달력과 수첩에, 전화기 시간표에 우리는 국경일과 병원갈 날, 친구와의 약속, 누군가의 생일 등을 저장한다. ‘0과 1의 체계’를 이해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비트(bit)와 바이트(bite)를 연구하지 않고도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활용한 여러 작업들을 할 수 있고 무려 엄청난 숫자인 테라바이트(TB)도 내장 외장의 단위로 알맞은 기기를 선택해 편리하게 사용하며 살아갈 것이다.
새해, 성경읽기, 성경쓰기, 성경공부가 시작되었다. 교회가 성경을 중심으로 성도들이 모이도록 하는 것은 컴퓨터 원리강좌를 하고자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실생활에서 컴퓨터를 효율성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접하는 것 같이, 성경 속에 담겨있는, 아니 담겨있다고 믿는 ‘믿음’으로 성경말씀이 삶 속에 녹아져 들어오도록 교회가 돕는 것이다.
성경이 어렵다고? 레위기는 골치 아프다고? 마태복음은 나와 관계없는 이스라엘 민족의 족보라고? 마치 계룡산에 몇 년 올라갔다 내려온 산신령같은 사이비 가르침으로 교인들을 기만하는 약장수 목회자(?)가 있다면 겸손해져야 한다. 뭔가 가슴이 찡했다는 감정중심의 신앙에 끌려다니는 교인들이 있다면 ‘1과 0처럼’ 아주 간단한(simple) 하나님의 통치원리를 배워야 한다.
우리의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서의 0’과 ‘유일하신 오직 한 분이신 1’로서의 하나님과 만나야 인생이 바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통치이다.
우리가 배운 십진수의 사고(思考)를 컴퓨터나라의 이진수로 바꾸는 방법만 적용하면 어렵지않게 이진수의 답을 찾을 수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나의 삶을 적용하는 방법으로 살면 될 것이다. 그 적용을 성경에서는 ‘순종’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 순종을 위해서 우리에게 먼저 주신 것이 ‘믿음’이며, 그 ‘믿음’은 ‘결심, 결단, 작정’과도 같은 인간의 단어가 아니라 ‘은혜’라는 하나님의 언어로 설명되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가 가진 한계는 3일이다.(作心三日). 그러므로 새해 첫 달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언어인 ‘은혜’를 사모(思慕)하며 한 걸음씩 내어딛는 순종의 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마침내 소망을 이룬다는 말씀의 원리처럼 ‘은혜는 믿음을 믿음은 순종을 순종은 하나님의 기쁨을 낳는’ 새해가 열려진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기대하며 새해의 문을 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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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0.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