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비쉬족은 약 19개의 부족과 소규모 하위 부족들의 연합으로서 공통 문화를 공유하며 “나지르”(nazir)라고 하는 단일한 족장의 지도를 받고 있다. 이 부족들은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 조상 대부분은 아라비아 출신이다. 언어는 카바비쉬어 또는 마쉬리키-바다위어다. 그러나 대부분의 카바비쉬족은 읽거나 쓸 수 없다. 카바비쉬의 “다르”(dar, 영토)는 수단의 북부에 위치해있으며, 다른 유목민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가축 떼를 끌고 사막을 떠돌며 가끔 있는 모래폭풍 후 자라는 목초를 찾아다닌다. 그들은 복잡한 이동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 체계는 매년 일정기간 동안 가족들이 다른 장소로 각각 흩어진다. 이들은 여러 형태의 가축들을 길러서 팔아 곡물이나 소금, 차, 설탕, 옷, 대추, 조미료, 금속제품과 같은 필수품을 구한다. 낙타는 가장 중요하며, 유목민들에게 주식이 되는 우유를 제공해주고 고기와 텐트를 만들 재료가 되며 사막의 교통수단이 된다.
삶의 모습 카바비쉬족은 “디카”(dikkas)라고 하는 캠프에 사는데 낙타털로 만든 지붕에 면을 둘러서 텐트를 만든다. 텐트 안에 가죽과 양모 장신구로 치장한다. 기본적 가구는 야자줄기를 가죽천으로 묶어 만든 2인용 침대가 있으며 지면에서 1피트 정도 되는 곳에 못을 박아 걸어놓는다. 텐트 장식물조차도 실용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전통에 따라 아랍인들은 매우 호의적이며 항상 손님을 잘 접대한다. 남자들은 낙타 떼를 이끌고 사막을 가로질러 이동하며, 여자들과 아이들은 디카의 집에 머무른다. 여자들은 밭을 가꾸고 아이들은 들에서 놀며 집의 낙타를 부리고 염소와 양이 경작하는 밭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지킨다. 카바비쉬의 아이들은 걸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가축 떼를 돌본다. 그들은 수줍고 내성적이다. 사막 생활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모든 카바비쉬 남자들은 왼쪽 팔에 칼집에 든 단검을 차고 다닌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검을 가지고 있으며, 모두가 권총이나 라이플총을 휴대한다. 그들은 자신과 부족들을 강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밤에는 깊은 잠을 자서는 안된다. 주식으로는 낙타의 젖과 차를 섞어먹으며 그들 중 누군가 사막의 동물을 잡을 수 있는 행운이 생긴다면 고기도 먹을 수 있다. 각 사람들은 다목적의 캔버스 천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땅에 깔고 앉을 자리나 텐트, 동물에게 물을 주기 위한 물통, 그리고 건초 더미 같은 무거운 것을 운반하기 위해 어깨에 메는 삼각건이 될 수 있다. 1960년대 이전에 한 부족이 소유한 가축의 수는 물을 얻을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제한됐다. 그 후 정부는 새로운 우물을 파서 가축들이 잘 성장하고 그 수가 늘어날 수 있도록 했다. 불행한 것은 목초지가 더이상 많은 수의 동물을 먹일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강우량이 줄고 있어서 목초지가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많은 목자들이 그들의 가축을 상실했고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게 됐다.
신앙 전통적으로 카바비쉬족은 수니파 무슬림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대부분은 그다지 종교적이 아니며 이슬람교에 대해서도 지식이 적다. 이슬람의 5가지 “기둥”이 되는 의무사항 중 하나는 무슬림이 하루에 5번 기도해야 하는 것이 있지만 카바비쉬족 중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을 때만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예 기도를 하지 않는다. 물이 귀하기 때문에 정결의식은 생략되거나 완전히 무시되며 물 대신에 모래를 사용하기도 한다. 카바비쉬족 중 극소수만 읽고 쓸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문자를 마력의 원천이라고 여긴다. 파키(Fakis)라고 하는 거룩한 사람들이 부적을 만들어 돈이나 가축을 받고 부족사람들에게 판다.
필요로 하는 것들 수단에 있는 여러 종족들은 문화와 생활양식이 중복되기 때문에 그들을 분명하게 구분해 인식한다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족적 종족적 정체성을 자부하고 있다. 기꺼이 카바비쉬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거친 유목생활을 인내해낼 수 있는 동정심이 풍부한 선교사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문맹이 많기 때문에 기독교 교사도 또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