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닌케족의 주거 지역들 중 하나가 가나에 세워진 것은 주후 750년경이었다. 베르베르족의 압박 때문에 소닌케족은 작은 그룹들로 흩어져 이웃 지역들로 흡수됐는데, 이들은 Marka, Nono 그리고 Azer의 세 주요 그룹들로 나눠졌다. 대체로 이들 그룹들은 그들이 생산하는 공예품의 다양한 종류에 따라 더 작은 종족 그룹들로 세분되는데, 가장 중요한 소닝케의 종족 그룹들은 시세(Sisse), 드라메(Drame), 실라(Sylla) 그리고 칸테(Kante)다. 어떤 소닝케 종족 그룹들은 점차적으로 월로프족, 세레족 그리고 말린케족들에 흡수됐다.
오늘날 부르키나파소에는 10만명 가량의 소닌케족이 살며 이는 전체 인구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국토의 남서쪽, 말리와 코트디브와르(Cote d'Iboire) 국경지대에 거주한다. 보다 거대한 유목민인 풀라니족의 영향에 떠밀려 소닌케족은 농업과 목축에 종사하게 됐으며 소닌케어(또는 사라콜레어 Sarakole)로 불리는 만딩고 언어의 한 종류를 사용한다.
삶의 모습
소닌케족의 사회적 구조와 조직은 만데(Mande) 계통 종족 그룹의 전형이다. 그들은 수수, 쌀, 땅콩 그리고 조 등을 재배하는 농부들이며 염소, 양, 말, 닭 그리고 소들을 사육하기도 한다. 고기잡이와 사냥은 거의 하지 않으나 무역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소닌케족은 그들의 생산품을 교역하기위해 지역시장들 뿐 아니라 다른 지역들을 여행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소닌케족 남자들은 땅을 갈아서 곡식을 재배하고 여자들은 채소밭을 가꾸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은 서부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취업 이주율을 보인다. 남자인구 중 약 20-70% 가량이 이주 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2-4년간 집을 떠나있다. 여자들은 노인 그리고 어린이들과 함께 집에 남아 여자가 주도하는(matriarchal) 사회를 형성한다.
소닌케족은 두 종류로 구별된 방식의 가옥들이 밀집한 촌락들에 산다. 하나는 원통형의 벽돌담에 초가를 얹은 움막집 형태이고, 또 하나는 벽돌담에 편평한 계단형 지붕을 얹은 내부 정원이 있는 장방형의 가옥이다. 간선도로 양 옆으로 집들이 줄지어 있고 마을광장에 모스크가 있는 것이 전형적인 소닌케 마을이다.
신부대를 지불하는 것이 소닌케족의 결혼조건이다. 주변 종족들과는 대조적으로 신부대는 신부의 부모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신부에게 지불해 지참금의 일부가 되도록 한다. 혼전 성관계는 금기시되며 이슬람법을 따라 한 남자가 네 명의 아내까지 거느릴 수 있는 일부다처제가 용납된다.
과거에 유산은 아버지로부터 아들들에게 전수됐다. 오늘날은 무슬림의 재산분배 규정들에 의거해 8분의 1은 미망인이 갖고, 아들들은 각각 동일한 몫을, 딸들은 아들 몫의 절반씩을 물려받게 된다.
신앙
부르키나파소에 사는 소닝케족은 대부분(80%) 수니무슬림들이며, 나머지 20%는 다양한 종류의 정령숭배신앙을 따른다. 무슬림들은 이슬람 선지자인 모하메드의 가르침을 따르는데, 그들의 성전인 코란은 모하메드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받았다고 전해진다.
무슬림들로서 소닌케족은 다섯 가지 중요한 "기둥"으로 불리는 이슬람의 의무들을 준행한다. 이 다섯 기둥들은;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모하메드는 그의 선지자이다"라는 믿음의 선언; 메카를 향해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는 것; 관대한 구제; 무슬림력으로 아홉 번째 달인 라마단기간의 금식; 그리고 가능한 한 일생에 적어도 한번 메카로의 성지순례 등을 포함한다.
필요로 하는 것들
부르키나파소의 10만 명이 넘는 소닌케 사람들 가운데 알려진 그리스도인은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현재 한 개의 선교단체가 이 신자들을 위해 사역하고 있으나 아직 그들의 언어로 성경번역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들 개종자들은 무슬림들에 의해 극심한 핍박을 받고 있으며 따라서 복음전도 또한 극히 어렵다. 대부분의 소닌케 사람들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명확히 들어본 적이 없다.
10.17.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