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 브힐족(Sansi Bhil)은 파키스탄 신드주의 북서쪽 시골지방에 거주한다. 이들은 브힐(Bhil) 종족에 속하며 그들의 언어인 산시어(Sansi)는 인도-아리안 어족에 속한다. 이들은 대개 2개 언어를 사용한다. 그 하나는 산시어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이 속한 지역어로 신드어나 우르두어 혹은 펀잡어다.
이들의 역사는 1500년대와 1700년대 사이에 일어난 무굴(Moghal)전쟁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산시인들이 전쟁에서 그들의 영토를 잃고 나서 인도의 북쪽을 배회하면서 유랑민이라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힌두교인들과 무슬림 간에 계속되는 충돌로 인해 1947년에 파키스탄이라는 독립된 이슬람국가가 탄생됐다. 그 분리시기에 산시인들은 동부 펀잡지역의 다른 무슬림들을 따라 파키스탄으로 이주했다. 거기서 이들은 매우 가난하게 살았고 끼니를 위해 구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생존을 위해 몇몇은 도둑질을 하거나 소를 훔쳐서 범죄자 카스트(criminal caste)가 되기도 했다.
삶의 모습
산시인들은 부유한 파키스탄 지주를 위해 소떼를 몰거나 밭일을 하면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한다. 파키스탄 건국시에 산시인들을 위한 토지는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토지를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 지주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그들을 노예로 착취하다가 마지못해 해방시켜준 경우가 많다. 이것은 파키스탄 내 주요한 분쟁거리가 되고 있다.
낮은 지위의 힌두 카스트 산시인들은 이주하며 농사를 짓는 일꾼들이다. 이들은 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여분의 수입을 벌기 위해 계절을 따라 이주한다. 밀과 옥수수가 주된 작물이며 쌀, 목화, 기장도 생산한다. 산시인들은 숙련공이나 비숙련공으로 공장 혹은 제재소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산시문화에 있어서 여성들은 고귀한 지위를 갖고 있다. 결혼한 성인은 그들이 자립할 때까지 신부는 그녀의 가정을 떠나서 신랑의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랫동안 산시인들은 대가족으로 살았으나 핵가족도 증가하는 추세다.
몇몇 산시 마을은 매우 작아서 대가족 하나 혹은 둘만으로 마을이 이룬 경우도 있다. 다른 신드 마을 근처의 산시 마을들은 대개 고립돼있다. 산시인들은 부자가 거의 없고 전통적인 회칠한 집은 비좁고 더럽다. 오늘날 이들 중 일부는 함께 사는 가족들이 비좁지 않게 살기 위해 방이 많은 집을 짓기도 한다.
힌두교도인 산시인들에게 있어서 브라만(Brahmans, 힌두 제사장과 학자)은 가장 높은 계급을 차지하며 대부분의 산시인들이 소속되는 지정카스트(scheduled castes)는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급이다. 힌두 산시사회는 족장중심의 씨족사회로 구분된다. 이는 아버지가 가족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산시인들의 교육과 건강, 식사의 수준은 매우 낮으며 양질의 물도 부족하다. 불행히도 많은 산시인들이 알코올중독자가 됐다. 이들은 가난하지만 구전설화를 통해 자녀 대대로 이어지는 풍부한 민속역사를 갖고 있다.
신앙
많은 산시인들이 1947년 인도에서 파키스탄으로 이주하면서 빠르게 무슬림이 됐다. 다른 나머지는 미신, 예언, 공포와 같은 그들의 힌두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힌두교인들은 모든 생물, 무생물들이 영혼의 거처가 된다고 믿는다. 이들은 갑자기 죽은 사람의 영혼과 시기함으로써 저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악령의 눈(evil eye)"을 매우 두려워한다.
필요한 것들
산시인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사회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이들에게 정신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정의로서 이들은 가치있게 대우받아야 하며 압제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산시인들에게 내적인 치유를 베푸실 수 있고 이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필요로 했던 안정과 보호를 베풀 수 있다.
산시어로 된 성경, 기독교 자료들이 거의 없다. "예수" 영화와 기독교방송도 산시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들 가운데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단체도 없다.
04.25.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