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그화르 빌족은 전통적으로 힌두카스트 제도의 불가촉천민(untouchable)로 간주된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로 분리됐을 때 많은 수의 카스트 힌두교인들은 파키스탄 지역을 떠났다. 그러나 메그화르 빌족 같은 소수의 지정카스트(불가촉천민의 공식 호칭) 힌두교인들은 파키스탄에 머무는 것을 선택했다. 비록 파키스탄내 소수 힌두종족일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형제 힌두인에게 멸시받는 것보다 무슬림들에게 멸시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처럼 보인다. 슬프게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된 후에도 무슬림들과 힌두교도 메그화르인 사이의 오래된 적대감은 감소되지 않았다.
메그화르인은 펀잡주의 남쪽 다두(Dadu)시와 나와브샤(Nawabsha)시의 북동 지역에 산다. 메그화르 빌족의 언어는 인도-아리안 어족의 일부이며, 빌(Bhil)언어의 아그룹(sub-group)에 속한다. 메그화르 빌의 언어는 구어지만 가끔씩 신문에 쓰여지기도 한다.
삶의 모습
메그화르인들은 대부분 농사꾼으로서 시골에서 살며, 고생하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여분의 수입을 벌기 위해 시절을 따라 농작물을 따라서 이주한다. 밀과 기장은 이들의 주요 식용작물이며 쌀, 목화, 옥수수도 생산한다. 농부들은 건조한 땅을 관개해야하므로 몬순의 비는 그들에게 아주 중요하다. 펀잡의 인더스강과 동쪽으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5개 지류는 그 땅을 관개하는데 큰 도움이 되므로 그들에게 행운인 셈이다.
메그화르인의 결혼은 두 개인보다는 두 가정의 결합을 더 중요시 여긴다. 대부분의 결혼은 사회적 지위와 카스트제도를 고려해 중매결혼으로 이뤄진다. 시골지방에서 신혼부부들은 남편의 가족과 가까이 살거나 같이 산다.
메그화르 여성들은 길고 빨간 패티코트 치마 때문에 원거리에서도 쉽게 구별된다. 마을에서의 어른들은 모든 상황에서 전통적인 의상을 입으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젊은 여성들이 도회지로 나가면 파키스탄 사람들의 전형적인 옷, 넓은 바지(샤와르)와 긴 상의(까미즈)로 바꾸어 다른 여성들과 잘 혼합한다.
최근 보고에 의하면 1992년 파키스탄니 지주가 빌(Bhil)인을 노예로 부리지 못하도록 하는 법률이 제정됐지만 봉건제도의 힘은 법률위배보다도 더 강력해졌다고 한다. UN인권위원회(The Human Right Commission Of United Nation)는 계속해서 시골지방에서 숨겨져 있는 하리스(Haris)와 노예들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지주에게 진 부채 때문에 메그화르인들이 비밀감옥에서 사슬에 묶여 있기도 한다. 파키스탄 지주들은 그들의 행동을 '소작인과 지주의 협력'이라고 말하면서 정당화시키고 있다.
신앙
대부분의 메그화르인은 힌두교인들이다. 이들은 무생물에도 영혼이 있다는 정령숭배신앙을 반영하는 의식을 행한다. 한 예로 죽은 사람들을 위한 위령의식이 있다. 밀가루와 물로 반죽하여 공모양의 희생제물을 만든다. 만일 까마귀가 반죽완자를 먹으면 그 죽은 사람의 영혼이 고통 가운데 있다고 생각한다. 보고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죽은 사람의 반죽완자에는 어떠한 동물도 접근하지 않는다고 한다.
필요한 것들
1900년대 초기에는 이 지역에 성공적으로 복음이 전파됐으나 보전되고 양육되지 못했으며 현재는 메그화르 기독교인은 손으로 꼽을 만큼밖에 없다. 소수의 선교사들이 메그화르인들 가운데에서 일하고 있지만 보다 헌신된 기독교인 일꾼이 긴급히 요구되고 있다. 조사들에 의하면 만일 메그화르인들에게 빨리 접근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10년 이내에 무슬림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근본주의 이슬람법의 강력함은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의 여지가 거의 없다. 이것은 힌두교도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 미묘한 압력은 그들의 종교를 버리게 하거나 개종시킬 것이다.
성경의 일부와 예수영화가 메그화르 언어로 번역돼있으나 기독교방송은 아직 보급되지 않았다.
03.21.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