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손에 들린 붓처럼

김창섭 목사 (세계선교교회)
김창섭 목사

(세계선교교회)

고린도 교회에는 네 개의 파벌이 있었다. 바울을 따르는 바울파, 아볼로를 따르는 아볼로파, 베드로를 따르는 게바파,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그리스도파이다. 그리고, 이 네 개의 파벌은 서로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에서 그토록 파벌을 나누지 말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 왜 파벌이 있었을까? 물론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두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나를 과시하기 위함이고, 둘째, 내가 이익을 얻기 위함이다. 내가 더 대단함을 과시하고 싶고, 내가 리더와 더 친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고, 내 위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데,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파벌을 만들었던 것이고, 그렇게 파벌이 나뉨으로 인하여 내 이름이 높아지든지, 내게 무슨 경제적인 이익이 있든지 등의 개인적인 이익을 얻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고린도 교회 안에서는 교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파벌이 나뉘어 있었다.

이렇게 파벌이 나뉜 교회를 향하여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3장 5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바울이나 아볼로는 사역자, 곧 종이나 노예라는 뜻이다. 노예는 주인의 뜻대로 한다. 주인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다.

한 아이가 미술관에 다녀와서 너무나 멋진 그림들을 많이 보고와서 놀랬던 모양이다. 그래서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빠, 피카소의 그림들이 정말 멋졌어요! 그런데 피카소가 썼던 붓은 어디에 있나요? 그 붓은 정말 대단한 도구인 것 같아요! 그 붓이 있으면 나도 피카소처럼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부모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들아, 피카소의 그림이 훌륭한 것은 그 붓 때문이 아니라 피카소라는 훌륭한 화가 때문이야. 붓은 그저 피카소의 손에서 사용된 도구에 불과한 거야.”

만약, 피카소의 손에 들린 붓이 피카소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생각해보라. 피카소는 부드럽게 붓을 움직였는데 거친 붓질이 되고, 피카소는 거칠게 붓을 움직였는데 부드러운 붓질이 되었다면 피카소가 대단한 그림을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붓은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든지 상관없이, 그것이 얼마짜리냐와 상관 없이, 화가 마음대로 움직여져야 좋은 붓이다. 붓은 그 붓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 붓을 사용한 화가가 드러나야 진짜 좋은 붓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들린 붓과 같다. 그러니, 화가 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붓이 자기 주장을 한다면, 좋은 붓이 아니다.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여야 좋은 붓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는 붓임을 깨닫는다면, 고린도 교회에 파벌은 없지 않았을까? 섬기는 모든 교회에 오직 그리스도파 만이 있기를 기도한다. 

wmclakim@gmail.com

10.19.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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