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한인교회
세상에는 진리가 있고 또한 지식이 있다.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고, 변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은 과학이 발전함으로 늘 가변성이 있다. 일례로 중세에는 지구는 평평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과학의 발전을 통해 깨닫게 되었고 평평하다는 사실은 수정되었다.
이 세상의 지식은 진리가 아니기에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영원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은 성서가 기록된 이후로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유는 성령께서 고비마다 도와주셨기 때문이다. 세상의 무수한 책들은 역사와 더불어 수많은 오류를 수정하고 보완해야 했으나 성서는 처음 기록될 때부터 완전했고, 세상 종말이 오기까지 일점일획도 수정되지 않는 완벽함으로 보존될 것이다. 이런 일에 수많은 영적 탁월한 리더가 일어나 말씀을 변질시키려고 할 때마다 온몸으로 막아냈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버리기도 했다.
이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열두 사도들이 하나같이 목숨을 버려야 했다. 그뿐인가? 그 후예들이 지금도 온 세계 각처에서 진리 때문에 순교의 제물이 되고 있다.
진리를 지키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기꺼이 희생하고 있다. 아마도 예수님의 희생 이후로 복음의 진리를 좇아 순교 당한 무리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들의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라고 당부하셨다(계 6;9-11).
제단 앞에서 우리를 신원하여 달라고 애원하는 순교 당한 영혼들의 요청 앞에서 말이다. 이처럼 진리를 지키는 일은 정말로 가치 있는 일이다.
동서방 교회가 교리 문제로 다투자, 콘스탄틴 대제는 그들을 일치시키려고 했다. 혼란스러웠던 로마제국을 통일한 황제는 이런 기독교적 교리 문제를 일치시키는 일을 가볍게 여겼다. 칼과 창으로 목숨 걸고 싸워 통일을 이뤘는데, 꼬장꼬장한 늙은이들이 성경 해석 문제로 행패 부리는 일을 역전의 노장이 보았을 때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었다. 그는 황제의 이름으로 로마제국 내의 모든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별궁이 있는 니케야(현Iznik)로 모이도록 명했다. 그래서 각처에서 주교 380명이 모였다.
그 당시 공회의 주제는 예수님의 신성 문제였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아버지보다는 조금 낮은 분이다라는 주장이 강력했다. 동방에서 참석한 지도자들은 대부분, 이 논리를 합당하게 여겼다. 그런데 알렉산더의 주교 보좌관으로 동행한 아타나시우스 부제가 있었는데 그는 젊고 외모도 볼품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동방 주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성자는 성부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다는 주장에 목숨을 걸고 싸웠고 마침내 승리하였다. 그래서 성자는 성부와 동일 본질이라는 교리가 채택되었고, 그는 그 이유로 일곱 번이나 유배를 가야 했다.
그 후에 또한 부딪친 문제가 성령님에 대한 것이었다. 결국 이 논리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결별하게 된 중요한 문제였고 지금까지도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게 무엇일까? 아들에 관한 문제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낳았다(히 1:5)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기에 논쟁의 여지가 없었으나, 성령의 문제는 요15:26,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를 근거로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성령은 성부 하나님으로 나오신다를 신조로 채택했다. 그런데 589년 톨레도에서 열린 제3차 전국 공의회에서 휠리오케(Filioche, 성령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에게서 나오심)라는 단어를 라틴어 신조에 등장시켰고 로마교회의 중요한 신앙으로 삼았다.
이 교리는 동방교회와 큰 다툼의 매체가 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이나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요20:22,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위대한 신학자 안셀무스는 어거스틴을 따라 동방교회의 주장에 반대하여 성령이 성부에게서뿐 아니라 아들에게서도 나왔다는 입장을 지지했다. 이처럼 기독교 이천 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목숨 건 투쟁들이 있었다. 1517년,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운동도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이었고---
그런데 지난 2020년 10월 교황은 놀라운 발표를 했다. 동성애에 대한 시민결합(Civil Unio)선언을 통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였다. 이것은 성서에 명백히 기록된 말씀을 넘어가는 행위다. 그 선언으로 일선에서 목회하는 분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더 나아가서 가톨릭 내에서도 찬성과 반대로 극명하게 대립한다고 하고, 이천 년 동안 지켜온 진리를 변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서도 성서의 진리는 지켜져야 한다. 이 진리를 지키기 위해 선배들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했는지 모른다. 그것은 곧 영원한 생명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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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0.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