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엄마의 반란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얼마 전, 밀라노에서 남쪽으로 40여 Km 떨어진 아름다운 마을 파비아(Pavia)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마 세계 최초로 매스컴에서 다룬 일이 아닐까 싶다. 내용은 75세 된 늙은 어머니가 두 아들을 집에서 나가게 해달라는 소송 사건이다. 두 아들은 이미 나이가 첫째는 42살, 둘째는 40살인데도 독립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늙은 어머니의 뒷바라지를 즐겼다고 한다.

자녀가 어릴 때는 당연히 돌보아주어야 하나 장년이 되고, 나름대로 직장생활을 하는 데도 독립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75세나 된 늙은 엄마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싶다. 이 시대의 패턴인지, 혹은 문화인지 모르나, 젊은이들 가운데는 부모의 집에 눌러앉아 독립할 생각을 하지 않는 자녀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한다.

“엄마가 내려주는 카페 맛은 최고예요.” “엄마가 해주는 파스타 요리는 그 어느 레스토랑에서도 맛볼 수 없어요.” 그러면서 집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영악한 자녀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늙은 엄마들이 많다고 한다.

결혼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여자 친구와 콤파냐 관계(동거하면서 결혼은 하지 않는)를 유지하는 젊은이들이 유행처럼 늘어난다. 책임 질 필요가 없으니 선호하는 것 같다.  몇주전, 여성으로 이태리 총리인 멜로니가 10년간의 동거를 끝낸다고 발표했다. 두 사람은 딸 하나를 두었는데, 동거남이 이태리 방송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 중에 음담패설을 막걸리 마시듯 함부로 해 댄다는 것이다.   

동거녀가 총리여서 그 후원으로 방송 프로그램을 맡았을 텐데 말이다. 그런 행동들이 구설수로 오르내리고 인기도 갉아 먹게 되니 안 되겠다 싶었을 게다.  동거인이기에 헤어지는 것이 아주 간단한가 보다. 이제 끝이다, 한 마디로 정리가 되었다고 하니— 남자는 당장 밥줄이 떨어지게 되어 몹시 당황하고 있다고— 진중하지 못하고 촐싹거리더니 깨소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무튼 늙은 엄마는 두 아들 뒷바라지가 너무 힘드니 독립하라고 여러 번 부탁하고 사정도 했다고 한다. 아마도 늙은 부모가 받는 연금으로 산 것 같다. 그래서 두 아들이 직장을 다니니 생활비 일부라도 지원해야 하는데 그 마저도 외면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설마 엄만데 어쩌겠어, 우리가 버틴다 해도— 아마도 이런 생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도 있다. 도무지 개선의 여지가 없다 싶은 늙은 엄마는 변호사를 고용하여 소송을 걸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재판 받으러 나오라는 통보를 받은 두 아들은 소스라치게 놀랐을 터! 밥 먹듯이 사기를 치는 사람은 검찰이 보낸 출두서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지만, 처음 그런 서류를 받는 사람은 밤잠을 설치게 되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기도 한다. 아무튼 할머니의 적극적인 고소를 통해 재판이 열렸고, 늙은 판사는 동질감을 느꼈는지 엄마의 손을 들어주었다. 판결은 금년 12월 18일까지 집을 나가라는 통보였다. 약 한달 반의 기간을 주었을 뿐이다. 두 아들의 사정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판결인 셈이다.  

그동안에 집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태리는 모든 것이 느려터지기 때문이다. 정 안되면 등산 도구를 사서 주변의 야산으로 올라가 텐트를 쳐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늙은 엄마의 승리는 전 세계의 마마보이들에게 혁명적 사건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갈수록 늘어가는 집 떠나지 못하는 자녀들에게도 경종이 되었으면 싶다. 평생 고생하는 부모를 조금은 편하게 해드려야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늙은 엄마의 반란이 왠지 통쾌하게 여겨진다.

나도 늙었기 때문일까?

chiesadiroma@daum.net

11.18.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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