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오솔길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지인의 초청으로 피에몬테 주에 속한 파에사나(Paesana)에 한 주간 머물렀다. 그곳은 순수한 이탈리아 지역에 속한 몸비소(Monviso 3841m)산을 아우르고 있는 마을이다. 다른 높은 산들, 예로 몽불랑, 마테흐른 등등은 한쪽은 프랑스, 한쪽은 스위스로 걸쳐있으나 몬비소산 만은 온전히 앞뒤 모두 이태리 지역이라고 한다. 항상 구름으로 가려있다는데, 이번에 먼 곳에서 방문한 길손을 위해 안개를 물리고 속살을 내보였다. 삼각형의 모습인데 정삼각형이 아니라 이등변 삼각형의 형태였다. 이 지형을 연구하는 후배는 중세 불란서의 개혁자들이 이 높은 산을 넘어왔다고 한다.

신앙의 핍박을 피해 고향과 재산과 땅, 가축 등을 버리고 작은 보따리를 둘러메고 이 높은 산을 넘어왔을 것이다. 할 수 있는 대로 추적자들을 빼돌리기 위해 고요한 날 보다는 비바람 부는 험한 날, 환한 대낮보다는 어두컴컴한 시간을 선택하였을 것이다.

그 옛날 신앙의 순례자들인, 왈도파나 위그노인들의 족적을 더듬어 차를 이용하여 1700M 까지 오를 수 있는 길이 있다. 그 이상 원하는 사람은 걸어서 가도록 되어 있다. 가톨릭 성지는 대체적으로 걸어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아마도 공로를 위해서인가 보다. 이런 먼 곳까지 온 사람들에게 마지막 험한 코스는 걸어서 도착하도록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현명한 방법이다 싶다. 

험난한 길을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오르면서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신 주님을 묵상할 수 있다면 영적으로 얻는 게 있을 것이다. 나는 열정만을 앞세워 올라갔다가 입술이 두 군데나 터지고 말았다. 앞을 가로막는 능선이나 산을 보면 꼭 올라가보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저 너머에 대한 환상 내지는 궁금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 호기심으로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말이다.

아마도 이 험한 산길을 넘어오던 중 천 길 낭떠러지로 굴러 생을 마감해야 했던 분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어떻게 했을까 싶어진다. 히말라야 등반을 오르는 산악인들은 낙오자가 생기면 일정을 포기하고서라도 그를 구원할까? 아니면 모처럼 얻은 기회(일기)를 허송할 수 없어 그냥 모르는 체할까? 어둑어둑한 밤에 앞이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구조하려고 해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신앙의 순례자들이 이 주변의 높은 산들을 넘고 또 넘어야 했다. 오직 마음껏 주님을 찬송하고 자유롭게 예배드리기 위해, 그 선배들의 함성이 저 앞에 떨어지는 폭포처럼 들려오는 것 같다. “그의 나라를 도모하라”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핸드폰에서 띵동하고 소식이 왔음을 알린다. 이 높은 이태리의 알프스 산자락에서 일 만키로나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의 뉴스를 실시간으로 본다. 참 신기한 일이다. 뉴스는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은행 빚을 내서 구입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니 당신도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대부분의 뉴스는 돈을 벌 수 있는 방법, 또는 그 길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더 중요하고 정말 요긴한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모르기 때문인지, 또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무관심해서인지 모른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요긴한 것은 영혼에 대한 문제다. 육신은 길어야 백 년을 살지만,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만이 진정한 자존감을 소유하게 된다. 자존감을 어떤 이는 내 존재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이가 이런 자존감을 지닐 수 있을 까?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이요, 교회를 다니는 자가 아니라 진정한 신자들이다.

위대한 자존감을 사자처럼 외친 바울의 고백을 음미해보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해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도니라”(딤후 4:7-8) 이 구절을 암송하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본다.

우리의 위대한 선배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 걸어갔던 도상에서.

chiesadiroma@daum.net

09.23.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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