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면 이깁니다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주일 오후다. 저녁을 먹고 카푸치노를 마시러 나왔다. 코로나 이후 대체로 기계를 이용하여 집에서 커피를 마시지만 가끔은 밖에서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집에서 마시는 것보다 밖에서 마시는 것이 왠지 더 맛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후 8시경 밖을 나왔더니 몇 달 만에 느껴보는 서늘함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얼마 만인가, 이런 기분이! 더위가 너무 심하여 언제 시원함을 느꼈었는지 기억에서 멀다. 그런데 오늘 이런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고, 고마웠다.

금요일에 로마에 비가 한차례 내렸을 때,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는지 모른다. 비가 너무 내려 물난리로 고생한다는 지역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로마에서 내린 비는 그 치열한 더위를 일시적이라도 물러가게 만드는 일이었기에 순간적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견디면 이긴다”는 잠언 말씀이 떠올랐다. 힘들다고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사람이 만나는 고난들은 모두가 견딜 수 있는 정도의 고난이다.

오늘도 TV에서는 패널들이 나와 기후 이상으로 인한 염려의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북극 얼음이 엄청나게 녹아내라고 있어, 바닷물의 증가로 해안에 사는 분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는 둥, 며칠 전 시칠리아의 카타니아에서는 주먹만 한 우박이 떨어져 자동차들이 망가지고, 밀라노에서는 태풍으로 큰 나무들이 뽑혀 막심한 피해를 주었다는 등등…. 이 모두가 우리에게 불안한 얘기들이다.

그러나 인내하고 견디기만 하면 살아남게 된다. 힘들다고 미리 겁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도 있다. 온 세계에서 그렇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뉴스는 전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감당할 수 있어, 나는 더위에 도전할 거야, 더위에 굴복하지 않을 거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힘과 강인함이 주어지게 된다.

우크라이나는 이 시대 겁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 러시아가 얼마나 거대한 제국인가! 가늠하기 어려운 땅과 거기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석유, 가스 등등…. 거기다가 그들이 소유한 핵무기는 세계에서 가장 많다. 거기에 비하면 우크라이나는 너무나 형편없는 나라가 아닌가! 지하자원도 별로 없고 군대도 약하고, 무기도 비교할 수 없는 나라이기에 러시아가 얕볼 수밖에 없던 나라이었다. 그래서 며칠 만에 정복하고 괴뢰 정부를 세우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자국의 군사 훈련이라고 계속 속이고는 공격을 했다. 우크라이나는 대통령도 연예인 출신이라서 정치에 문외인이라고 깔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항복하지 않고 결사적으로 응전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대통령처럼 위기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만약 대포 한 방 쏘았을 때 두 손 번쩍 들고 항복했다면 대통령은 일신상은 편했을 것이다. 푸틴의 화려한 별장에서 고급 양주를 마실 수 있었을 테고…. 그러나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항전했고, 그런 항전에 감동한 서방과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 이런 죽기를 각오한 항전에 오히려 러시아가 종이호랑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들어내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렇다. 인간은 적응력에 대해서는 천재적 능력을 소유했다.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하였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역사를 이어온 것이다. 고로 미리 겁먹을 필요가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곤란한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 나는 60년대에 판자촌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 무허가 판잣집들을 구청에서 깡패들을 용역으로 보내 때려 부수면 한 시간도 안 되어 복구해 버렸다. 그래서 결국은 그들의 요구를 수용해주어야 했다.

결국 견디는 자가 살아남고 역사를 만들어간다. 오늘 밤은 오랜만에 너무 시원하여 폭염을 견딘 자에게 주는 위로를 느끼게 한다. “견디십시오! 견디는 자가 이겨내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법입니다”라고 온 세상에 외치고 싶다. 

chiesadiroma@daum.net

08.26.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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