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틴 대제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오늘날의 모든 기독교인은 콘스탄틴 대제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즉, 디오클라티아누스 황제의 엄청난 핍박으로 재산 몰수와 교회 파괴, 예배 금지에 대한 제재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허락받았다는 점이다. 즉 폰테밀비오 전투에서 기적적으로 막센티우스를 물리친 승리의 원인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기에서 로마의 수도 밀라노에서 313년 칙령을 발표했다. 즉 신앙에 대한 자유와 전 황제가 몰수했던 모든 기독교도의 교회 재산을 돌려주도록 했다. 고로 이제까지 음습한 카타콤 베에서 햇볕을 그리워하며 고난을 받던 성도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마음껏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에 못지않은 큰일을 도모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공의회의 결정이었다. 그 결정을 통하여 우리는 지금까지 약 1700여 년 동안 바른 신앙 고백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문제는 3세기부터 싹트게 되었고 4세기 아리우스로 인해 공의회에서 본격적인 쟁론이 벌어지게 되었다. 금욕생활과 실천적인 설교로 존경받던 알렉산드리아의 바우칼리스 장로인 아리우스가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아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동일 본질이 아니라고 하였고, 그에 반대하여 소수파인 알렉산더는 동일 본질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런 두 주장은 그것을 추종하는 세력들의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음으로 황제가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콘스탄틴 대제는 최초로 로마제국의 제 1차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통치자의 입장에서 국론 분열은 제국의 약화를 도모한다고 여겼기에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황제는 개회 인사 후 공의회가 종료되는 여러 달 동안을 회의에 함께했다. 

주요 쟁점은 “성자는 성부와 동일한 본질이 아니며 창조된 피조물”이라고 주장한 장로 아리우스에 대한 논점이었다. 초대교회 이후 변증 가들과 교부들의 관심사는 기독론에 관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면 창조주 하나님과는 어떤 관계인가? 등 그리스도의 양성과 관련된 문제들이 오랫동안 쟁점이 되어 왔다. 그런 중에 아리우스가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당시 공의회에 참석한 318명의 참석한 자들은 칼타고와 디존, 밀란, 그리고 페르시아와 고올에서 온 다른 2명의 교부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헬라어 권에서 사역하는 사람들이었다. 아타나시우스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중요한 회의에 성령님의 역사가 개입하셨다. 놀랍게도 318명 중의 316명의 찬성으로 열세인 것처럼 보였던 아타나시우스의 의견이 받아들여졌고 인간적으로 존경 받았고, 유능했던 아리우스는 이단으로 결의되었다. 이런 일은 공의회에 개입하신 성령님의 역사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시고 두 손을 놓으시는 것 같아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변곡점에 개입하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된다. 가정해 본다면, 만일 아리우스의 주장이 공의회에서 받아들여졌다면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결정적 역할에 쓰임 받았던 아타나시우스는 그 후 그 주장 때문에 미움을 받고 정치적 부침에 따라 무려 다섯 번이나 유배형에 처해져야 했다. 아무튼 이런 놀라운 결정을 도출한 콘스탄틴 대제로 인해 기독교의 물줄기는 바르게 흘러가게 되었다. 그 후 뒤를 이은 아들 콘스탄틴 2세도 자신이 통치하던 동 로마지역을 아우르고 있던 아리우스 지지자들의 끊임없는 유혹과 간청이 있었지만, 선왕 때 결정된 공의회의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성도들은 콘스탄틴 대제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공의회를 통해 채택한 니케아 신조는 우리는 한 분 하나님, 전능자를 믿는다. 또한 우리는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분은 하나님의 외아들이시며,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와 본질에서 동일하신 분임을 믿는다.

chiesadiroma@daum.net

07.29.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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