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계절에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12월에는 성탄을 기념하는 조형물들이 상가들이 밀집된 로마에 어김없이 내걸린다. 특히 장사하는 분들은 이런 계절에 대목을 보려고 바쁘게 움직인다. 길가마다 네온사인이 빛나고 상점마다 화려하게 크리스마스트리들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이런 움직임에 공연스레 마음이 들뜨게 된다. 쇼핑센터에는 선물 보따리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성탄의 계절은 이런 현상과는 달라야 한다. 성탄절은 성자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육신을 입고 세상으로 오신 날이다. 지극히 높은 영광의 보좌를 비우시고 오셔서 비천하고 연약한 육신을 입으셨다. 찬란한 빛에 거하시던 분이었는데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인의 모습을 입으셨고, 지극히 낮은 자리로 오셨다. 그리고는 온갖 수난과 고초를 당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모든 인생들은 높은 곳을 목말라하면서 오르고 또 오르려고 발버둥 치는데 말이다. 높은 곳에 올라야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되고,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탄은 예수님을 유혹하려고 찬란한 세상을 보여주고는 내게 절하라, 그리하면 저 세상을 네게 주겠다고 했다. 찬란한 곳에 빛으로 거하시던 예수님께, 그것도 그분이 만드신 세상을 내게 절하기만 하면 네게 주겠다고 유혹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코미디 같은 일인가!

그런데도 이 땅의 수많은 인생은 사탄의 제의에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것을 요구해도 하겠으니 제발 세상을 내게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구해야 할 것은 성탄절에 대한 근원적인 의미다. 몇 주 전, 친분이 있는 분과 성 프랜시스의 사역지 아시시를 방문했다.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았다는 성 프랜시스가 태어났고 사역했고 세상을 떠난 현장이다.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성 프랜시스가 처음 제자들을 결성했던 포르치 웅골라 교회당과 그리고 아시시 시내에 있는 대성당을 구경하는 것으로 끝낸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곳은 수바시오 산 800고지에 자리 잡은 Eremo delle Carceri 기도처다.

우리가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기도를 실행하는 일은 어렵다. 그런데 성프랜시스는 수시로 이곳까지 올라와 기도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지금은 소박하게 건축되었지만 그 옛날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자연스러운 기도처였다. 바위를 깎아 만든 지하로 내려가는 문은 낮고 좁아서 허리를 구부리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다. 또한 낮고 좁아서 비대한 사람은 통과하기 어렵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굴 한편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우묵한 곳이 있다. 이 자리에서 성 프랜시스는 잠을 잤다고 한다. 바위를 침대 삼아서...

그리고 이곳을 나오면 오래된 상수리나무가 있는데 찢어진 줄기를 철사로 동이고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세웠는데 이 나무에 깃들인 새들에게 설교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길을 따라 조금 더 진행하면 제자들을 둘러앉히고 강론하던 돌로 된 단이 있다. 이곳에서 수시로 제자들과 담론을 나누던 자리였을 것이다. 또한 주변에 제자들이 기도했다고 전해지는 굴들이 여러 곳 존재한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정숙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어쩌면 이곳은 성 프랜시스나 제자들이 더 낮은 자들이 되기 위해, 기도나 수행으로 힘쓰던 장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많은 순례자들이 이 높은 곳까지 저 아래 아시시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 올라오기도 한다. 아마도 몇 시간 동안 걸어야 될 것 같다. 그렇게 해서라도 평생을 걸어왔던 성 프랜시스를 닮아보려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성탄의 계절이야말로 떠들썩하게 즐기는 계절이 아니라, 죄인으로 소망 없이 살고있는 우리를 구원하러 낮은 곳에 임하신 주님을 조금이라도 본받기 위해 힘쓰는 계절이 되어야지 싶다. 

메리크리스마스!

chiesadiroma@daum.net

12.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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