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한인교회
밤이 깊을 때 동이 트는 새벽은 가까워오게 된다. 역시 이스라엘은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깊은 영적 흑암에 들어가야 했다. 무려 4백년간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셨다. 그 어떤 선지자도 세우지 않으셨고, 그 누구에게도 꿈으로나 환상으로도 자기 백성들에게 귀띔도 하지 않으셨다. 고로 인생들은 그저 그 옛날 모세에게 주셨던 죽은 계명을 습관처럼 읊어대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도 캄캄한 상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싶다.
평생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염병에 붙잡혀 2년여 동안을 숨 막히게 견디어 내야 했다. 수년전, 마스크 없이 찍었던 사진들을 그리움으로 바라보면서 오늘 우리가 겪는 현실이 얼마나 답답한 가를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경험했던 영적 캄캄함을 비척거리며 지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피할 길을 주신 하나님은 1년여 만에 백신을 만들게 섭리하셨고, 한시름 놓게도 하셨다.
백신이 없을 때의 처참했던 상황, 하루에 수백 명이 속절없이 죽어야 했고, 화장장이 부족하여 화물트럭에 시체를 싣고 밀라노에서 로마까지 600Km를 달려가기도 했다. 그 뿐인가? 부모나 친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슬픔을 삭여야 했다. 감염의 위험 때문에.
한 마디로 환란이었다. 어쩌면 이런 캄캄한 상황이야말로 하나님을 구하고 의지하라는 사인일 수도 있다. 일찍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 들여보내 40여 년간 훈련시켰던 것처럼, 인생은 연약하여 이런 혹독한 상황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도무지 돌이킬 줄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 변했는가?
얼마 전 EU에서는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쓰지 말고 Holyday라는 말을 쓰도록 하라고 했다. 비 기독교인들도 많기 때문에 차별을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2천 년 전 성령께서 바울의 아시아 전도를 막으시고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는 음성에 순종하여 헬라로 건너감으로 유럽은 생명의 복음을 일찍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놀라운 선진국의 축복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기본을 허물려고 한다. 세우기는 어려워도 허무는 것은 순간이다.
유럽은 자유를 누리고 잘 살아보겠다고 건너온 이민자들이 많다. 그들이야말로 선교 대상자들이다. 그런데 반대로 그들을 생각하여 성탄의 빛나는 의미를 땅에 던지려는 작태야말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영적 자책골이 아닌가 싶다.
캄캄할수록 빛을 소망하게 되는 것처럼, 상황이 어려울수록 메시아를 기다려야 한다.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을 말이다. 그것만이 나그네 길을 걷는 모든 인생들이 붙잡아야 진정한 소망이다 싶다.
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chiesadiroma@daum.net
12.11.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