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산책-색깔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이태리 여인이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까만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동양인, 나에게는 예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추측하기로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이태리 부인이 아프리카 아이를 입양한 것 같습니다. 이태리에는 한국에서 입양한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 아이들은 벌써 4-50대가 되었지만 말입니다.

오래전에 아프리카에 다녀왔습니다. 아프리카는 모두 검은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사위가 온통 검은 색으로 채색된 것 같았습니다. 길에는 온통 검은 물결이 출렁거렸고 말입니다. 전혀 섞이지 않은 검은 사람들로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거주하는 분의 얘기로는 아프리카에서는 검은 얼굴도 등급이 있다고 합니다. 즉, 완전 검은 얼굴, 조금 덜 검은 얼굴, 그리고 약간 검은 얼굴이라고 합니다. 덜 검은 얼굴일수록 그 나라에서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왜 그들은 검은 얼굴로 태어나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검은 얼굴을 자책하며 살아가고, 머리까지 지나친 곱슬이라 스트레스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빗을 가지고 다니며 시간 날 때마다 머리털을 사납게 빚어댑니다. 그렇지 않으면 강한 곱슬머리가 피부를 뚫고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나라에서 일생을 살아간다면 모두가 동일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지만 저들은 경제적으로 어렵기에 할 수 있는 대로 유럽으로 건너오려고 합니다. 젊은이들의 로망은 파라다이스로 여기는 유럽으로 건너가는 일이라고 합니다. 마치 60년대 우리가 미국 가기를 열망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 천신만고 끝에 꿈에 그리던 유럽으로 발을 딛는 청년들도 많습니다.

많은 돈을 주고, 비밀리에 배를 탔는데 난파되어 죽는다 해도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아니면 죽음을 무릅쓰고 수천km를 도보로 걸어서 국경을 넘기도 합니다. 그처럼 부푼 꿈을 가지고 주검을 무릅쓰고 도착한 유럽은 꿈꾸던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우선 직장을 구하기가 힘들고, 체류허가도 없기 때문에 늘 불안하기만 합니다. 역전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경찰이 수시로 검문을 하고 증명서를 요구받습니다. 특히 중동사람이나 아프리카 사람들은 단골메뉴처럼 검사의 대상이 됩니다.

미국의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지(sports illustrated)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흑인 선수의 63%가 백인에 비해 낮은 처우를 받고, 77%는 은퇴 후 행정 책임자나 경영층으로 승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소위 성공한 자들로 미국고교 졸업생중 프로구단에 뽑히는 0,13%에 해당하는 자들인데 말입니다. 언제부터 이 땅에는 이런 색깔로 인한 차별이 시작되었을까요?

오늘 북쪽 비첸 자에서 31살 된 나이지리아 여인이 남편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에 결혼했는데 말입니다. 60이 넘은 남편은 아내의 버는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면서 매일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부인은 헤어지기를 바랐지만 계속 감시하며 폭행을 가했다고 합니다. 얼굴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무시당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입양된 아프리카 어린아이가 자라면서 부모님과 얼굴색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우울해집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겠지만 성장하면서 찾아오는 정체성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문제를 잘 극복하고 훌륭히 성장하여 입양아가 불란서의 장관까지 된 동족들도 여러 명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반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적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정신 질환자나 자살로 생을 마무리하는 입양아들도 아주 많습니다. 이런 사정을 알기에 엄마 손을 붙잡고 친진난만하게 걸어가는 검은 아이가 만나게 될 수많은 난관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험한 세상을 양 부모 밑에서 살아가야 하는 검은 아이의 미래가 쉽지 않다 싶습니다. 공부하는 것은 학비가 없어 가능하겠지만 취직하고 사회 생활하는 이 모든 길이 보통 사람보다는 몇 배가 힘든 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훌륭하게 성장하여 귀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누구에게나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그 작은 아이가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검은 얼굴 때문에 차별 당하고 그 때마다 흘리는 반짝이는 눈물이 마음을 적십니다.  

chiesadiroma@daum.net

09.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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