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 갈리오

한평우 목사

로마한인교회

한 사람의 뛰어난 지도자는 나라를 번영케 하고 백성들을 평안하게 한다. 그런데 그런 지도자는 역사적으로 가뭄에 콩 나듯 드물었다. 그래서 세상은 혼미하고 살아가기 힘들게 되는 경우가 많다. 조선왕조 5백년동안 수많은 왕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수준 미달이었고, 뛰어난 왕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렇다면 뛰어난 외국 운동선수들에게 시민권을 주고 귀화시키는 것처럼 정치권에서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일찍이 로마제국에서도 그랬다. 로마의 가장 뛰어난 오현제 중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스페인 출신이었고, 로마를 가장 강대한 제국으로 융성하게 만들었던 트라야누스 황제도 역시 히스파니아 출생이었다. 그들이 원로원에서 연설할 때는 사투리 억양이었기에 원로원의 의원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기도 했다지만 그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황제는 정치만 잘하면 만점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클라디우스 황제의 친구 갈리오(Gallius AD51-53)가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하였다. 아가야는 고린도를 수도로 하는 그리스 남쪽 지역이다. 그런데 갈리오는 히스파니아 남쪽 코르도바 출신이었다. 그의 형은 네로 황제의 고문이었던 스토익 철학자 세네카다.   

그런데 갈리오 총독은 그가 재임하는 중에 바울을 재판하는 자리에 앉아야 했다. 바울이 성령의 감동에 힘입어 강력하게 복음을 전하였고, 2차전도 여행 중에 1년6개월을 고린도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유대인들로부터 극심한 핍박과 도전을 받아야 했다. 저들은 어느 날 무력으로 바울을 붙잡아 총독의 법정으로 데려가 고발했다.

무력을 행사하는 무리들은 항상 자신들의 힘을 내세운다.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큰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은근히 협박했다. 그런 협박에 굴하여 빌라도는 무죄한 예수님을 두려움 때문에 저들에게 넘겨주었다. 이런 식이 도전이 고린도에서도 반복되었다. 그러나 아가야 총독은 바울을 고소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굴하지 않고 도전했다.  

바울이 무슨 부정한 잘못을 범했다면 너희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합당하나,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라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런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서 저들을 법정에서 쫓아냈다(행18;14-16). 놀라운 일이요, 아주 중요한 판단이었다. 어쩌면 역사적으로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는 첫 시도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종교를 말살하는 공산주의가 있고, 종교와 야합하여 독재하는 이슬람 국가들이 있고, 서로 견제하는 민주주의 국가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건강한 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 견제하는 정치가 구현되어야 한다. 칼뱅은 국가와 교회는 서로 대등한 주체로 건강한 견제의 대상이라고 했다. 영국의 계몽 사상가 존 로크(John Lock1632-1704)는 종교관용에 관한 서한(1689)에서 국가는 종교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사상은 미국의 독립선언문에 반영되었고, 영국민주주의 기본이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아가야 총독 갈리오는 청렴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유대 총독 벨릭스는 바울을 만나 복음을 들었으나 두려워하면서도 지금은 가라, 내가 기회가 있으면 너를 부르겠다고 바울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 수 있을 까하여 자주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정작 그 귀한 복음을 수용하지 않았다. 탐욕에 눈과 귀가 가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리오는 청렴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는데, 위대한 전도자 바울을 만났는데도 복음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만난 놀라운 기회이었는데 말이다. 그는 몸이 약해 이집트로 요양을 가기도 했었으나 형 세네카가 네로의 암살 모의에 연류 되어 자살형을 받게 되자, 그 역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그 놀라운 복음의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우리 역시 지금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chiesadiroma@daum.net

06.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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