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예배, 지식의 근본
시대가 변해도, 불변하는 교육의 기준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라” (잠1:7a)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2세들로 다음 세대를 세워가는 것이다. 교회 교육기관도 복잡할 이유가 없다. 본질이 분명하면, 나머지 커리큘럼은 얼마든지 효과적으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이 드러내는 목표의 선명성이 상실되면, 여러 가지 화려한 교육방법들도 겉만 화려한 잔치상처럼 될 뿐이고, 열매없는 결론만 얻게 될 뿐이다.
교육기관들이 다양한 목표를 제시하지만, 성경적인 교회 교육의 본질은 다음 세가지로 모아진다 하겠다. “예배 잘 드리는 아이가 되는 것,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 예배가운데 하나님 말씀하시는 꿈과 비젼과 소망을 발견하는 것” 많은 교회들이 다음 세대의 비젼을 말하면서 교육에 힘을 쏟는 것을 본다. 연령적으로 젊은 사역자를 선호하고, 반짝 반짝 이벤트 아이디어가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눈높이 교육과 더불어, 세대통합예배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어쩌든지 다음세대를 양적으로 질적으로 세우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을 본다
그런데 이러한 목표가운데 ‘예배’에 초점 맞추는 경우는 비례적으로 별로 없는 것을 본다. 예배는 늘 드리는 것이라고 식상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배는 남녀노소 성도의 본업(本業)이며 본질(本質)이다. 본질에서 벗어나면 변질하게 되고, 좋은 향기가 아닌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전락하는 것을 본다. 입술로 말하고 선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본 교회에서는 늘 온 성도들이 함께 드리는 예배가운데 드리는 모든 기도를 통해서 이와 같은 다음세대 세가지 교육목표에 한 마음이 될 것을 강조한다. 더불어 이를 현실화 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지침을 만들었다. 본 교회에 제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다음 세대가 세상을 이기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에 참조가 되었으면 한다.
1. 목숨같은 주일성수
예배자로 양육하기 위한 첫 번째 강조점은 주일 성수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날은 너의 날이 아니다. 이날은 주님의 날이다. 이날은 세상없어도 하나님을 예배하러 가야된다. 전날 어떤 천지가 개벽할 일이 있다해도, 아침에 해가 뜨고 주일이 되었으면 하나님 예배하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길에 방황하던 어떤 이가 신앙의 회복을 통해 교회로 돌아와서 고백하는 말이 은혜가 되었다. “내가 주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주일이 나를 지켜 주었다.”는 고백이다.
누가 누구를 가르쳐, 한 사람, 한 영혼을 온전케 할 수 있을까? 자기가 낳은 자식에 대해서도 그 가르침이 한계가 있는데, 달리 방법이 없다. 원 소유주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그 영혼에 말씀하시는 방법외에는 최선의 길이 없다. 그것이 예배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예배만 실패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할 기회가 있을 것이고, 혹여 잘못 행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회개하면 회복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주일 성수에 교육기관은 최선을 다한다.
2. 교회 중심의 자녀
어린 아이가 곧장 신앙의 삶을 사는 것은 아주 드물다. 하나님을 눈으로 보여달라고 할 때, 무엇을 보여주면 그의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교회를 통해 만나도록 해야 한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가 열리기까지, 주의 성전에 Temple Boy로 있었던 것을 기억하면, 주의 은혜가 임하기까지 주의 성전에 오래도록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굳이 교회에 갈 필요성을 못 느끼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 영적영향력은 자녀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났다. 그때 다시 회복할 것이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교회로 나아오도록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넘어져도 교회로 넘어지도록 애를 써야 한다. 제일 좋은 것 하나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신앙교육이 교회에서 이루어지도록 유치원도 주일에 다시 만날 수 있는 선교원을 다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교회중심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오늘날 성령받고 말씀받고 삶이 변화되는 곳이 어디인가? 기도원인가. 멋진 치유센타인가? 기도원도 될 수 있고, 수양관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니다. 기준이 분명해야 되는데, 마가의 다락방에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했다. 말씀받고 성령받고, 인생이 변화를 맞이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기준이 되는 장소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주님의 마지막 당부의 말씀인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은, 교회를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그때 너희가 “성령받고 권능받고 증인된 삶”을 산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들, 그래서 저들 삶의 중심이 교회라는 처소가 될 때, 저들 앞에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아름다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죄많은 인생의 회복을 가장 권위있게 말할 수 있는 곳은 교회밖에 없다. 교회생활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 예배생활이 온전치 못한 사람,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에 대해 그 신실하심을 중심으로 고백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런 죄많은 인생도 회복이 가능하다고 가장 권위있게 말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 교회이다. 그렇게 믿고 교회에 나아오면, 그때 비로소 회복이 이루어진다. 교회는 회복의 처소이다. 어린아이로부터 이것을 가르친다면, 힘든 세상에서 방황할 때에도, 반드시 넘어져도 교회쪽으로 넘어지면서, 주의 교회를 향해 선한 발걸음으로 찾아올 것이다.
3. 말씀의 종들에 대한 순종
훗날, 어디를 가든지, 결국 우리 자녀들도 한 교회를 섬기며, 한 사람의 목회자로부터 말씀을 듣고 배울 것이다. 바로 그때, 섬기는 교회와 담임 목사님에게 칭찬을 받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특히, 목회자의 자녀라면, 결코 사고뭉치가 되어 교회를 분란케 하는 이들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소망가운데, 우리 모든 교회 자녀들,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을 어떻게 하든지 교회를 중심으로 주의 종을 중심으로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될 것을 담대히 가르쳐야 한다.
오늘날 인터넷 교회와 문화가 활발해졌다. 전화기를 통해 몇 분의 목회자를 통해, 말씀을 듣는 지 종잡을 수 없다. 결국, 기준없이 자신의 호불호를 따른 선택으로, 하나님앞에서 아름다운 변화를 보기 어려워졌다. 운명적인 말씀으로 대면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주일 예배에 드려지는 말씀이, 내 영혼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할 때, 말씀의 스피커로서의 목회자에 대한 존중은 너무 중요하다. 이를 자녀세대에 잘 가르쳐서 자녀들에게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으로 막힘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사는 길이다.
4. 부모세대가 본(本)으로 책임
우리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기억하게 해주어야 한다. 1세들이 교회를 생각하며 새벽을 깨우며 눈물로 기도했던 그 기도를 가르쳐주어야 한다. 삶을 헌신했던 열정과 이것으로 인해 우리 안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응답, 기적같은 능력들을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우리 자손들에게 생겨나질 않도록 믿음의 유산들을 계속해서 증거해야 한다. 믿음의 세대가 끊기지 않게 기도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늘 그들 믿음의 조상들을 언급하므로, 하나님을 기억하고 조상들에게 역사하신 것을 똑같이 기대하며 소망하는 신앙적인 사명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이민 교회의 문제를 본(本)이 없어서 그렇다고 진단하는 말들을 듣는다. 짧은 역사와 전통, 게다가 가족 단위의 생활 패턴이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킨 탓에, 작은 문제도 공동체의 유익보다는 개인을 먼저 생각하기에 문제가 쉼없이 폭발하며 드러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1세들의 이민교회 개척과 헌신적인 사랑, 1.5세와 2세들의 교육적인 환경의 풍요로움들은 큰 은혜와 축복인줄로 믿고 자신감있게 자녀들에게 그 신앙의 유산에 대해 말하고 권고해야 한다. 자녀 세대는 부모세대가 한 일에 대해서 인정하고 본을 받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이런 지혜가 있었다. 이스라엘에게 계속 불리는 이름이 있었는데,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조상이 필요 없었다면 아브라함이나 이삭 그리고 야곱의 이름도 부를 필요가 없었을 것이지만, 과거 조상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이 현재 우리에게도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5. 영재(영적재목)로 양육
똑똑한 세상의 영재(genius)를 말함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에 쓸모있는 일꾼, 하나님 나라의 영적 재목들이 되라는 뜻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앞에 갈 때에, 그가 이 땅에 가지고 있던 타이틀이 중요한 것 아니다. 세상의 노벨상을 받을 만큼 똑똑하다 하여도, 그 일로 인해 주님앞에 나아가 예배할 수 없다면, 오히려 책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 장관, 유명인사, 이런 타이틀만으로는 칭찬을 얻지 못한다. 자기영광일 따름이다.
당신은 세상에서 주어진 그 일을 통해서, 주신 직분을 통해서, 얼마나 영혼에 영향을 끼치며, 얼마나 생명을 살리는 일에 헌신했느냐?를 물으실 따름이다. 영안이 열려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그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 수 있는 삶이라면, 그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영적재목인 것이다. 하나님 교회에 벽돌 한 장이라도 얹을 수 있는 삶이 귀한 것이다.
다섯가지 신앙교육의 구체적 강조점을 적어보았다. 예배를 위한 주일성수, 교회중심의 아이로 키우기, 말씀전하는 주의 종들에 대한 존중, 부모님들의 신앙의 본(本), 하나님 나라의 영적 재목이 되는 것에 초점맞춘 것을 적었다. 누가 하나님의 거룩을 풍성히 맛보게 될까? 사막광야같은 이민 땅에서도 하나님을 먼저 구하는 사람들, 삶의 모든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맞추어 사는 사람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하나님 앞에서 지킬 것은 지키는 사람들, 정한 시간, 정한 장소인 주의 몸된 교회로 나아와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 거룩하신 하늘의 하나님을 충만하게 맛볼 것이다. 우리 다음 세대가 그와 같은 복을 누리기를 소망하며 기도드린다.
davidnjeon@yahoo.com
02.03.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