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힘쓸 화두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교회와 예배’이다. 교회와 예배가 없이는 어느 영역이든지 아무런 소망의 빛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온전한 기초를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육적인 화려함과 멋져 보임은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건강의 여의치 못함으로 곪아가고 있음에도 겉으로 드리워진 명품의 화려함만을 자랑한다면, 매우 안타까운 모습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양도 중요하다. 그러나 본질 없는 외양의 모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튼실하게 변화되지 못한 내용물로 인해, 마침내 변질되어 악취 가득한 상태에 이르고 말 것이다.
모이지 않는 교회
교회의 본질은 예배이다. 교회가 반듯하게 서 있어 보여도 예배가 없으면 무너진 상태와 다를 바가 없다. 예배가 없어지면 교회는 무너져 내린다. 예배가 없음은, 성도들이 교회로 나아와 더 이상 예배로 모이지 않음을 말한다. 성도가 예배를 위해 교회를 나오지 않으면 교회는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성도가 모이지 않으면 무너지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모이기를 힘쓰도록 해야 한다. 성도가 예배를 위해 교회 앞으로 나아오고, 힘써 예배드림으로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때, 마침내 세상의 변화를 주동하는 영적인 힘도 공급받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의 집으로 나아와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사역자는 당연히 성도들을 예배의 처소로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성도가 모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 하나님을 향해 자기 마음 하나 지키지 못함이 이유이다. 세상에 대해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는 뜻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혹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고자 하는 악한 욕심의 발로이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교회에 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자신의 영혼과 가정과 가문, 자손들을 살리는 축복의 통로요 도구임을 알지 못한다. 그런 믿음이 없는 것이다. 결국, 그 믿음이 그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가며, 평생 그 좋으신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열매를 보기 어려운 것이다.
하나님 생각, 교회 중심
하나님께서 사울은 버리시고 왜 다윗은 택하셨을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하나님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사울은 왕이 되었어도, 잃어버린 법궤를 찾지 않았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찾아왔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고자 했다. 그의 중심이 무엇인가? 예배, 성전, 주의 교회이다. 성경이 말하는 다윗의 장막, 성전에 대한 진심 어린 마음은 결국 예배의 회복이었다.
다윗의 이 마음을 하나님이 귀하게 보셨다. 그에게 모든 좋은 것을 허락하셨고, 그가 힘써 하지 않아도 되도록, 그의 나라를 든든하게 지켜주시고, 도와주시고, 책임져주셨다. 영적 회복, 예배 중심과 하나님 중심의 삶이 땅의 삶에도 좋은 열매를 맺게 한 것이다. 다윗은 누군가 자신에게 예배드리러 올라가자고 말만 해도, 그 마음이 기뻤다고 말할 정도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최고의 기쁨과 즐거움을 두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다윗과 같은 축복을 원하지만,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예배로 모이는 것, 교회 중심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하는가? 욕심과 욕망보다 더 맛나고 귀한 은혜를 경험해보지 못했고, 경험하도록 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혜도 가르치고 훈련
하나님의 은혜를 육체의 훈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 관계성을 무시할 수 없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육의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은혜는 방종이 아니며, 그 특별하신 무조건적인 은혜를 얻고 누리는 길에는 반드시 훈련과 교육의 과정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은혜를 구하고, 은혜를 누리며, 은혜를 맛보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은혜의 성숙한 향기와 맛을 누리고 맛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훈련되어져야 한다. 경건의 연습이 따라야 한다. 육체의 선한 복종이 뒤따라야 한다.
은혜는 훈련이 뒤따를 때, 그 열매를 보게 된다. 성경에 교육과 가르침이 있음은, 훈련이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한다. 신앙인이 살아갈 바른길에 대해 성경은 많은 가르침을 준다. 실제로, 교회에 출석하게 되면 공통적으로 가르치는 내용들이이 있다. 교단, 교파를 초월해서 대부분 동일하다. ‘주일성수, 헌금 생활로서의 십일조, 전도, 봉사.’ 등이다.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한 기본기 훈련에 속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부분을 강조하는 교회, 목회관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척 부담스러워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가 모든 것이 시간과 물질과 관계 때문이다. 말씀 중심의 설교와 기도는 아무리 강조하여 말해도 괜찮다. 그러나 헌금에 대한 설교는 오해할 만큼이나 예민하고 민감한 것을 본다. 왜 그럴까? 시간과 물질만 들어가지 않으면 전혀 부담이 가지 않는데, 물질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만 엄청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 좋은 성도, 참 좋은 성도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시간과 물질, 삶을 드리며 훈련받기를 즐겨하는 이들이 좋은 성도이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릴 수 있는 헌신이 그의 신앙의 진실함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태신앙이어도 이 부분을 통과하지를 못하니, 그 좋은 예수를 30년, 50년, 평생을 믿어도 전혀 열매를 기대하기 어려운 모습이 된다. 결국, 하나님 앞에 온전히 거꾸러지지 않으면, 자신이 제일 큰 손해당사자가 된다. 겸손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귀하게 여겨주시고, 일을 맡겨주실 것이고, 마침내 아름답고 귀한 열매를 얻게 될 것인데 그 헌신을 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독불장군처럼 외곬수가 되어 자신의 제한된 한계뿐 아니라, 자신을 축복의 통로로 가족 가문 자손 이웃이 받을 복을 놓쳐버리게 된다.
교회와 예배, 변화의 시작
우리 자신이 주님 앞에 완전한 인생이 아니라, 온전한 삶의 주인공이 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인생이 회복과 축복의 길로 갈 일은 없다.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무엇인가? 인생이 회복과 축복을 맛볼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교회와 예배 외에는 없다. 무엇보다 교회를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의 결론은 변화이다. 변화가 무엇인가? 변화라는 것은 열매를 말하는 것이다. 씨가 떨어졌다.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이것이 변화이다. 내가 주님 앞에서 예수 생명의 씨앗이 떨어져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다. 그럼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 꽃이 피고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히고 그 열매로 주님 앞에 바쳐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이다. 이러한 신앙의 열매 있는 변화는 오직 한가지,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주의 종을 통해 들려지는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은 세상천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에서 그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 채, 세상 어느 곳이든 하나님 계시다고 말하는 사람, 그래서 교회 생활이 불분명한 사람들은 범신론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을 일정하게 공급받는 통로가 없을 때, 그에게 하나님 말씀의 권위는 점점 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하나님의 교회에서 그 말씀을 일정하게 들으며 신앙 생활했던 모든 이들은 한결같이 풍성하고 복된 열매를 맺는 간증 있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예배의 기본기 훈련
예배에 실패하면 모든 것이 실패이다. 구약의 수많은 왕들의 역사를 보라. 오직 한가지이다. 예배에 실패하고, 하나님 섬기는 대신에 우상을 섬기고 좇았을 때, 자기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가문 그가 섬기는 나라까지 망하는 것을 본다. 우리가 사는 길이 무엇인가? 내가 사는 길이 무엇인가? 나도 나를 장담할 수가 없는 것이 인생이다. 언제라도 교만할 수 있고, 잘못 갈 수 있다. 범죄 할 수 있다. 그러나 범죄했을 지라도 하나님 은혜에 가리움을 받을 길이 있다. 예배에 나아와서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이다.
예배드리는 가운데 설교자를 통해서 듣는 그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을 때 회복이 된다. 회개가 된다. 그러나 예배가 되지 않고 회개할 마음이 생기지 못하면 결국은 망할 때까지 그냥 달려가는 것을 본다. 그것이 또 나만 망하면 되는 게 아니라 주변까지도 가정과 가문까지도 함께 해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예배 가운데 회개의 영을 구하는 은혜가 떠나지 않기를 소망해야 한다.
더불어, 예배 가운데 주시는 말씀을 기준으로 가르침과 배움, 훈련이 반복되어야 한다. 그렇게 훈련이 반복될 때, 교훈들이 뼛속 깊이 새겨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준의 명백함이다.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인생의 복을 위해 세우신 예배이다. 예배와 교회 중심의 삶으로 돌이키게 될 때, 온전한 변화와 회복이 나타나게 된다. 개인, 가정, 교회, 나라와 민족이 사는 길, 회복의 길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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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