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을마다 감사절기가 있어서, 강권적으로 그 은혜를 깨달아 알고 누리게 하심은 영적으로 엄청난 축복이다. 금년에도 한결같은 은혜가운데, 감사의 눈으로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하고, 감사로 현실을 긍정하며 미래를 소망가운데 바라보게 하심에 참으로 감사드린다. 사람들은 각기 쓴 안경렌즈의 색깔로 세상을 보게 된다. 검은 안경을 쓴 사람은 온통 검게 보일 것이고, 파란 안경을 쓴 사람은 파랗게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가을에 어떤 안경을 쓸 것인가? 감사의 신앙, 감사의 안경을 쓰고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축복이다. 감사 가운데, 기쁨과 찬송이 넘치고, 마침내 삶을 살아갈 만한 귀한 하늘의 은혜를 덧입게 되기 때문이다. 연약한 인생이 감사를 통과하게 될 때, 마침내 감사로 기적을 보는 복있는 인생이 될 것이다.
1. 감사는 믿음이다.
신앙의 사람들을 찾아보면 대부분이 감사의 영적 DNA를 가지고 있음을 본다. 다니엘, 다윗, 요셉, 하박국, 바울 등등. 감사를 통과하지 않고는 주의 일을 감당하는 주님께서 쓰시는 믿음의 종들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참된 감사에는 믿음이 기초가 된다. 믿음이 없이는 주를 시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믿음이 없이는 감사의 삶을 살 수 없고, 감사가 주는 기적을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감사와 믿음의 최고 표준은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의 감사를 생각하면, 믿음의 감사를 떠올리게 된다. 예수님을 향해, 고난과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때에, 또 그것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계심에도 거듭 감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감사의 중심에 하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하나님의 선한 계획, 인생을 구원하시려는 뜻을 너무 선명하게 아셨던 것이다. 그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눈앞에 부당한 심문, 모욕, 침 뱉음, 채찍질,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과 감사의 만찬을 나눌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특히, 눈앞의 제자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아심에도 주님의 마음에는 감사가 있었다. 참된 믿음이다. 마치 시계의 초침이 째각째각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듯이, 예수님을 향해 고난과 죽음이 서서히 다가옴을 느끼는 때에도 감사할 수 있음은 믿음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현실, 그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점점 다가옴에도, 그 상황 속에서도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통해 선한 계획을 진행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원망 대신에 감사를 드러내신 것이다. 이처럼 감사는 믿음이다. 주님처럼 인생도 마찬가지다. 결국, 그가 가진 믿음만큼, 믿음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일을 보게 되고, 그것을 보는 만큼 마침내 하나님앞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2. 감사는 결단이다.
시편에 등장하는 다윗도 마찬가지다. 다윗의 감사에도 그의 믿음이 나타나는데, 의지적인 결단이 있음을 보게 된다. 사울을 피해 엔게디 광야의 굴속에서, 쫓기는 독안에 든 쥐처럼 오돌오돌 떨며 자신의 몸을 맡기는 상황속에서도 그는 감사와 찬송을 드린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상실된 마음에 우울증, 허무와 공허함,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을 다윗이지만, 그래서 자신 스스로 사자들 속에 던져진 먹잇감 같은 존재로 자신을 표현하고, 원수들을 날카로운 칼같은 이와 혀를 가진이들로 묘사하는 정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깊은 절망과 탄식을 멀리 던져 버린다.
사울의 시기와 질투도 왕궁을 빠져나오면 끝날 것 같았는데, 광야까지 뒤쫓아올 정도로 집요함과 악의 끈질김에 많이 놀랐을 법하다. 그러나 다윗은 그러한 때에, 마음을 확정했노라며, 마음의 요동을 부여잡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한다. 마음을 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마음을 정한다는 것은 의지적 결단을 의미한다. 믿음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극심한 재앙중에서도 하나님앞에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확정해버렸다는 것이다.
그의 확정된 마음이 무엇인가? 이 모든 재앙의 문제앞에서, 요동치는 자신의 마음을 마치 벽에 못을 박듯이, 그 마음을 하나님께 붙들어 매었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겼음을 말한다. 그러한 전적인 신뢰의 현상적 표현이 찬송과 감사이다. 감사하는 사람, 절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 더불어 찬송이 진실할 때, 그 모든 찬송의 주제는 감사가 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참된 감사를 위해서는 의지적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C. S. Lewis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때때로 피조물을 홀로서게 함으로서, 의욕잃은 의무를 의지하나로 수행하게 하신다. 그리고 원수는 이 순간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렇다. 믿음의 눈을 들어, 의지적 결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확정하게 될 때, 감사하게 될 것이다. 이때가 바로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순간이 될 것이다.
3. 감사는 수용이다.
다윗은 사울의 쫓김을 받으며 고통의 깊은 밤을 보낼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잠 못드는 그 밤을 지나면서, 다윗은 자신의 영혼을 깨우며, 더 나아가 새벽을 깨우겠다고 선언한다.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자신의 영혼 밖에서 고통과 침체속에 낙심한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깨워내는 선언이다. 마치 차가운 겨울산에 낙오된 사람이, 잠들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잠들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채근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손을 경험한 성숙한 신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결코 문제와 현실에 자신을 방임하여 두지 않고 깨어 경성케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영혼만 깨우는 것이 아니라, 하루의 시작인 새벽까지 깨워낸다. 지극히 피하고 도망가고 싶은 하루,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이 고통으로 느껴지던 그날에, 눈을 뜨고 살아가는 날들이 전혀 즐겁지 않을 그런 하루가 시작되는 그날에, 깨우고 싶지 않은 하루를, 자신이 깨워버렸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자신의 고통스런 하루 하루의 삶을 그 시작부터,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해 버렸다는 것이다. 광야의 고통의 시간을 수용하고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는 의미이다. 이제는 다른 마음으로 광야를 살아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다른 관점으로 보기를 시작하자, 그의 입술에서는 감사와 찬송이 터져나왔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시57:9)
우리 인생에도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아침이 밝아오는 것이 두려운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 댜윗처럼 피하고 싶은 생명의 날들을 내가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날들을 주님께 오롯이 맡기는 가운데, 주체적으로 깨워버리는 결단이 필요하다. 새벽 아침이 찾아와 어쩔수 없이 깨는 인생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새벽을 정복하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 하루의 힘든 현실을 수용하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은 용기와 담력을 더해 주시고, 마침내 그 입술에서 감사와 찬송이 터져나오게 하실 것이다.
4. 감사는 은혜다.
실패와 낙심, 근심과 한숨의 자리를 떨쳐, 감사와 찬송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고자 할 때, 그 중심에 헤세드의 은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어떤 저주와 재앙의 자리에도 반드시 주의 은혜가 함께하는 자리임을 고백하게 될 때, 감사와 찬송이 터져 나오게 된다.
다윗은 거친 광야를 사자에 좇기는 사슴처럼 살아가면서도,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낫다’고 고백하였다. 자신의 살고 죽는 것을 초월한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사로잡힌 사람의 고백이다. 흔히, 삶의 고단한 문제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보면, 신앙과 믿음, 말씀과 기도, 은혜가 무슨 도움이 되는가? 당장 내 지갑에 캐쉬 1불이라도 채워달라고 한다. 은혜의 힘과 능력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일 따름이다. 세상천지에 은혜를 아는 것보다 더 큰 힘이 없기 때문이다.
암수술을 한 어떤 성도에게 고통의 통증을 물어보았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수술후에 항암치료의 어려움과 고통은 별것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수술을 받았고, 치료후에는 회복에 대한 소망이 구체적으로 있기에 감당할 만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다름 아닌 ‘수술전 마음의 힘듦’이었다는 것이다. 아직 찾아오지 않은 일들 앞에, 수술과 치료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미리 당한 그 고통이 더 힘들었다는 것이다.
실제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말 큰 고통은, 현실보다 그 고통이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감정을 더 견디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염려, 걱정, 근심, 일어나지 않을 상상이 동원되어 몸도 같이 힘들고 고통스럽게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삶의 현실이 여전할지라도, 영적인 은혜에 붙들리게 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믿음의 역사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최고의 힘과 능력은 은혜, 은혜, 은혜임을 말씀하는 것이다.
금년 추수감사시즌을 보내면서, 무엇보다 고통스런 마음을 주님께 맡기는 이들이 되기를 기도하게 된다. 고난의 풍랑속에 요동치는 마음을 주님께 정하고, 다윗처럼 현실의 고통이 있을지라도 새벽을 힘있게 깨울 수 있는 믿음과 은혜를 누리게 되기를 소망한다. 또한, 무엇보다, 주의 은혜를 잊지않고 기억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여, 모든 삶의 어려움으로부터 놓임받고, 오히려 감사가 충만한 삶을 살아내는 이들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davidnjeon@yahoo.com
11.18.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