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위험한 부모세대, 믿음과 가르침-
전남수 목사

세계 어디를 가든지, 한국 부모들만큼 자식성공에 대한 간절함이 큰 사람들이 없음을 보게 된다. 유럽과 아시아 나라들을 가보면 쉽게 기러기(?) 엄마들을 보게 된다. 이유를 물으니, 아이가 어릴 적에 주재원으로 한국을 떠나왔는데, 어느 일정시기동안 한국에서의 교육을 받지 않으면, 자연스레 한국의 입시지옥의 과정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명문대학에 특례로 입학하는 길이 열려있기에 참고 견딘다는 것이다. 부부간에 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도 오직 한 가지 자식의 성공을 위해서는 오롯이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미국 이민의 땅도 그렇게 다르지 않다. 물론, 미국 이민자들의 상황은 다른 나라 이민자들 보다는 형편이 훨씬 낫다고 할 수 있다. 자발적 의사에 의해 시작된 이민 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생 피땀 흘려 일하더라도 자식을 성공 출세시키고자 하는 마음은 동일한 것 같다. 그러나 그러다가 자녀들에게 기대했던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면, 사랑한 만큼의 실망의 언어를 쉽게 쏟아낸다. 한마디로 헛 살았다는 것이다. 허무하고 공허한 마음에 우울증이 찾아왔고, 밥맛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민자 가정의 이런 어려운 모습에 대해, 어느 기독교 교육학자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퉁 치듯 남 얘기하듯이 말하기에는 자녀교육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아무런 소망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라는 위치는 어떤 경우에도 소망을 품어야 하는 존재이기에, 이러한 상황가운데서도 다시 소망을 생각하고 찾게 된다. 과연 어떤 소망을 품어야 할 것인가? 광야 같은 인생, 승리의 길을 성경이 말씀해 주고 있다. 

고단한 인생길 가운데 승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길은 한가지이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다. 자녀가 말씀에 청종하며 살도록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한 가장 급한 것이 있다. 부모세대가 먼저 말씀순종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열심과 고생의 이유

 

이민자들은 정말 열심히 살아간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주일을 지키며 쉼을 얻는 것도 불안해할 정도로 열심이다. 그런데 실제, 그 열심의 정체가 무엇인가? 지나친 욕심이 아닌 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돈이 많다고 하루 다섯끼 여섯끼를 먹을 것인가? 집이 크고 비싼 집이어서, 이방 저방 옮겨 다니면서 방 자랑하며 잠을 설칠 것인가? 좋은 차를 가졌다고, 차안에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그 편안함에 만족해 할 것인가? 차라는 것이 어떤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만 있으면 되지 않는가? 

결국, 그렇게 고생을 하고서 자신은 정작 그 복을 누려보지 못하면서, 자식 좋은 일(?)만 시키는 유산 증여자가 될 따름이 아닌가. 자식이 고마워한다면 잠시 기분은 좋겠지만, 그러나 정작 놓쳐버리는 일이 있다. 많은 열심의 특심 때문에 정작 자녀들에게 마땅히 부모로서 보여주고, 가르쳐야 할 말씀교육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성실은 게으른 것에 비하면 백배 천배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삶의 자세이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에 원하는 인생을 살아온 삶의 결과가 자식들이 부모도 잊어버릴 만큼 이기적이 되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가? 더 나아가 부모의 배경을 믿고, 삶과 세상에서 여유부리며 방황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게다가 무리한 이민생활 가운데, 몸과 마음의 건강을 상해 버렸다면, 스스로에게 제대로 질문해 보아야 한다. 과연 이렇게 계속 살아가는 것이 맞는 일인가? 인생경영을 잘하며 산다고 할 수 있는가? 

 

대신 살 수 없는 인생 

 

부모는 자녀들을 위해서 무엇이든 희생한다. 그러나 정작 인생의 싸움은 부모가 대신 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저들 스스로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녀들을 대신하여 그 인생을 살아 낼 수 없다는 말이다. 자녀들 스스로 기도하고, 스스로 성경보고, 스스로 영적인 적들과 전투를 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로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모세대는 피땀 흘려 수고하는 일로부터, 조금 더 진정으로 자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해 보며, 부모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참된 가치를 드러내 보여야 한다. 부모의 새벽기도가 자녀의 평생축복이 되듯이, 부모세대가 그 본을 가지고 살아내는 것이다. 삶의 길을 선택하고 판단하는 신앙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한다. 피땀 흘려 수고한 부를 자녀에게 물려주는 그 고마운 일들만으로는 자녀의 삶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적인 문제를 넘어서지 못하면 나머지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위험한 부모세대의 신앙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작금의 부모세대의 신앙형태는 위험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교회를 오래동안 빠지는 성도에게 “말씀 같이 듣자”고 했더니, “유튜브로 좋은 강사님들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라고 하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코비드로 많은 교회가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고 적지 않는 시간 동안 TV 앞에서 말씀을 듣다 보니 이런 현상들이 부작용으로 남게 된 것이다. 실제로 신앙생활을 좀 한다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인터넷을 통해 자기의 귀에 합당하여 지지하는 좋아하는 목사님들의 말씀을 듣고 살아가는 것을 쉽게 본다. 

운전하는 사람들도 출퇴근 동안 좋은 강사들의 말씀이나 세미나, 강의들을 듣는다. 물론 듣지 않는 것보다 훨씬 좋아 보이지만, 이렇게 말씀을 듣는 사람들 중에 가장 뚜렷한 특징은 영적인 삶에 큰 변화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말씀을 집중해서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아까워서 한 번에 두세 가지 일들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 행동연구가들은 “멀티태스킹”은 생산성이 떨어지고 우리가 원하는 두배, 세배의 효과를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말씀을 잘 듣고 은혜를 받는 것 같은데, 그렇게 오래 기억되지는 못한다. 수박 겉핣기만 할 뿐이다. 

유튜브 설교로 유명하신 목사님의 고백이다. 영상분석을 해보면 설교전체를 고스란히 듣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모두가 적당하게 한번 들어보겠노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겸손한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영적인 유익을 크게 끼칠 것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교회에서 주시는 말씀에 집중하기도 어려운데 계속해서 이런 저런 말씀이 쏟아져 들어온다면, 영양은 공급되는데 운동이 되지 않는, 마침내 영적 질병이 유발되는 이상한 신앙구조가 될 따름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배 가운데 듣는 것이 원칙이다. 말씀은 신앙 강좌가 아니다. 하나님 말씀은 정한시간에 구별된 정한 장소에서 예배 가운데 선포되는 것이고, 백성은 그 예배 가운데 말씀을 받는 것이다.

 

공동체속의 실천적 은혜

 

바보는 수천번 수만번 결심만 하는 존재라고 한다. 삶의 실천적인 은혜를 끄집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기적 개인주의가 득세한 결과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깨달음을 가지지만, 휴지 쓰레기 하나를 제대로 줍지 못하는 영성에 불과한 것이다. 

개인주의가 득세하는 시대를 살면서 공동체의 유익을 놓치는 것을 본다. 혼자가 편해 보이지만, 성경적이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공동체로 부르셨고, 새 언약의 교회도 함께 지어지는 공동체로 부르셨다. 이 공동체를 이어주는 하나의 끈이 “말씀”이다. 공동체 속에서 함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깊은 신학적 논의를 배제하더라도 함께 말씀을 들으며 같이 “아멘”하고, 같이 웃고, 같이 진중하게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안에 역사하는 일들이 많은 것을 본다. ‘같은 마음으로, 같은 말씀을 들어야’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에 마음을 같이 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외톨이 신앙이 아닌, 더불어 함께 성장하는 복된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의 가르침, 오직 믿음으로

 

많은 부분에서, 익숙해진 편리함을 떨쳐내지 못하고, 비정상의 정상화, 신앙이 타성의 관성에 젖어버린 현실이다. 자신의 영혼도 온전히 세워가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녀의 신앙을 책임질 수 있겠는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자신의 영혼을 먼저 교회앞에 예배와 말씀앞에 바르게 세워야 한다. 부모 세대가 생명을 걸고 신앙을 지켰는가? 목숨 걸고 교회를 사랑하고 세워왔는가? 자녀들도 그렇게 할 것임을 믿어야 된다. 그리고 그 믿음위에서 우선순위를 분별하며,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교회와 공동체 속에서 복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그 믿음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몫이 될 것이다.

다니엘을 보라, 그의 형통한 삶의 중심에는 말씀에 대한 한결같은 순종이 있었음을 본다. 하나님 앞에서 지킬 것을 지키는 삶이었다. 그 말씀이 그로 하여금 입으로 먹는 음식마저도 가리고 구별할 줄 알도록 한 것이다. 다니엘이 어디서 그것을 배웠을까? 포로로 잡혀오기전 믿음의 부모에게서 신앙의 유산을 전수 받은 것이다. 어릴 때 뼈에 새기듯 심겨진 그 말씀들이 그의 평생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아무것이나 먹이면 안된다. 아무렇게나 먹게 해서도 안된다. 음식 먹는 식탁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 아무것이나 입으면 안된다.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입는 것이 있어야 한다. 화장하는 남자의 어색함을 생각해야 한다. 어느날 아들이 화장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기절할 것이다. 일찍 붙들어 잡아야 한다. 지금의 거룩한 잔소리가 나중에 큰소리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세대가 말씀에 헌신한 자신의 간증을 가지고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 지킬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자녀세대는 또한 기억해야 한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최고의 무기이며, 아무런 도움이 안될 것 같아도, 최후승리는 오직 하나님말씀에 순종하는 자임을 믿어야 한다. 

davidnjeon@yahoo.com 

 

04.08.2023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