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케 하는 상황들
낙심(落心)이 무엇인가? 마음이 툭 떨어지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물체가, 땅에 그대로 수직 낙하 하듯이 툭 떨어지는 것과 같다. 사막 광야 같은 이민 생활을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그렇게 마음이 툭 하고 떨어질 때가 있다.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돈 문제를 제일 많이 이야기한다. 갑작스레, 예상치 못한 지출이 요구될 때가 그러할 것이다. 교회에 오래된 개스관에 작은 구멍이 났는데 이를 찾아 땜질 하는데, 칠천오백불 한국 돈으로 천만원이 나왔다. 에어컨 콤프레샤 돌아가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낙후된 것을 고치는 데, 이천오백불이 나왔다. 갑자기, 예산에 없는 돈이 요청되니 ‘이게 뭐지?’하는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성도들의 가정이 생각났다. 그래도 교회는 함께 나누어 내면 되는데, 만약에 개인 가정에 어느 날 이런 일이 생기면 아마도 마음이 덜컹하면서, 마음 떨어지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교회 청년 사업가가 어느 날 세금 폭탄을 맞아 주유소 두 개 하던 것 중에서 하나를 팔게 되었다. 학교 공부보다 사업을 먼저 배우겠다고 시작해서 겨우 안정이 될까 하던 차에 일어난 정말 마음이 툭 떨어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남아 있는 나머지 가게를 잘 운영하고, 그 사이에 결혼도 하면서 오히려 더 좋은 환경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젊음을 바꾸어 노력했던 사업체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툭 하고 떨어졌을 것이다.
돈 문제는 그나마 견딜만 할 것이다. 어떤 분은 사랑하는 딸을 명문 가문에 결혼을 시키고 크게 축하를 받았는데, 뒤에 사위가 그만 이단에 빠진 것을 알았다. 먹고 사는 문제는 참고 견디면 되는 데, 죽고 사는 신앙사상의 문제는 해결방법이 없기에 절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 부모에게 어떻게 지내시냐? 물어보면 ‘그저 하나님 앞에 울 수밖에 없습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부모의 마음이 툭 떨어지면서,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는 뜻일 게다.
어떤 분은 자녀의 미래 때문에 낙심한다. 아이가 성격도 좋고 다 좋은데, 공부를 안하고 늘 어두컴컴한 방에서 열심히 게임에 몰두 한다는 것이다. 몰두(沒頭)가 무엇인가? 쇠파리가 소의 살에 박힐 듯 묻혀서, 너무 열심히 머리를 디밀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자녀의 잘못된 몰두가 부모에게는 미래의 걱정이 되어 한숨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런 아들을 보며 부모가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한푼이라도 더 벌어서, 이놈 뒷바라지를 해 줘야지 험한 세상 살아가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부모가 이민 땅에서 자기 인생 살기도 힘든데, 자식의 인생까지 두배로 살아 주어야 하니 너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이다. 자식의 몰두가 부모에게는 낙심이 된다.
낙심, 긍정하는 믿음
심방 가운데 이러한 어려운 문제들을 보고 들으면, 간절함으로 기도하는 것이 있다. “삶에 낙심이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지만, 낙심의 덫에 빠져 매우 힘들고 어렵겠지만, 더 이상 낙심하지 말고, 만사를 긍정하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이다. 시시한 ‘긍정의 신념, 긍정 정서 증진을 위한 긍정 심리치료법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 보기에는 ‘끼워 맞추기’ 같아 보일지라도, 주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들의 삶은 원래부터 ‘절대 긍정’의 삶이기 때문이다.
낙심되는 상황에서 긍정과 소망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요? 그럼 낙심할 이유도 없겠네요.” 맞는 말이지만, 좋은 생각은 아니다. 살기 위해서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내 마음과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에 자신을 내어놓는 것이다. 낙심되고 상한 심령을 반석같은 주님의 말씀 위에 ‘턱’ 하니 얹어놓는 것이 필요하다. 물 위쪽을 걷고 싶으면, 배에서 뛰어 내려야 한다. 낙심의 상황에서, 이를 떨치고 일어나 자신을 살리고, 가정과 가문과 자녀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반석같은 주의 말씀에 나를 붙들어 매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회복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죄 덩어리 인생
믿음을 붙들 때, 첫 번째 요구가 무엇인가? 믿음이 적용될 때, 드러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아야 한다. 믿음은 세상을 이긴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세상에서 낙심될 조건에 부딪혀 있는 이들에 대해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것은 낙심할만한 상황 자체를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원래 그렇게 연약하여 낙심이 되는 것이 인생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한경직 목사님은 늘 자신을 가리켜 “죄 덩어리 인생”이라고 고백했다. 실수와 연약함들로 둘러 쌓인 인생, 그 연원이 무엇인가? 죄 덩어리라는 원형질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님이 우리를 택하신 모든 정황들을 보면, 연약하고 낙심하고 낙망하며, 좌절하고 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다. 주님은 이 세상에서 약한 자, 천한 자, 미련한 자, 한마디로 연약하고 부족하고 형편없어서, 낙심하고 낙망할 수 밖에 없는 원래 그런 이들을 택하셨기에, 그런 본질의 인생이 낙심천만한 삶을 사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인정할 때,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비추이기 시작한다. 캄캄한 어둠의 공간 속에 가늘고 작은 빛이 들어온 것처럼, 회복의 빛이 비춰진다. 믿음으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나아가는 그에게 주님은 두 번째 말씀을 주신다. “너의 그 모습 그대로,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낙심하지 말아라”는 음성이다. 이 음성을 수용하는 순간, 은혜의 사슬이 그를 붙잡아 매고서, 마침내 소망의 언덕을 향해 씩씩하게 달려갈 것이다.
죄인을 붙드시는 은혜
어떤 분이 그렇게 말한다.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낙심이 됩니다. 점점 더 안 좋은 일만 생기고,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었으니, 주님이 끝내지 않으면. 결코 끝낼 수도 없으니 더 답답할 뿐입니다.” 답을 드린다. “성도님, 그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받은 증거입니다. 세상을 막 살 수 없고, 내 멋대로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것. 그것은 이미 받은 은혜가 있고, 믿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낙심의 자리에서 주님 손 붙잡을 힘조차 없어도, 떨어져 망하지 않음은 하나님의 여전한 은혜가 성도님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해석하려 하지 마십시오. 욥의 친구들처럼 해석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다만, 믿음으로 버티고 견디다 보면, 결코 망하지 않고 쇠하지 않을 자리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성도는 죄를 지으면서도 동시에 회개할 준비를 한다고 한다. 이러면 하나님이 혼내실 거라고, 사람 목사앞에서 신앙고백을 한다. 이러다가 한 대맞지, 빨리 회개해야지 하며 스스로 징계를 말하기도 한다. 어찌 생각하면, 그럴 거면 처음부터 죄를 짓지 말던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형이 “죄 덩어리”인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성도가 이렇게 천로역정같은 삶에 낙심과 회복을 반복하며 이렇게 저렇게 오직 은혜로 빚어져 가는 것이다. 낙심되는 상황을 인정하고, 그 모든 낙심의 상황에 대해 주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들, 그들은 결국에는 회복과 축복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축복의 공식
믿음의 부자들을 보라. 거룩한 부자들에게는 축복의 공식이 있다. 대부분 약하고, 미련하고, 천한 자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은혜의 믿음의 줄을 붙잡고, 낙심의 상황들을 인정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하며 마침내 세상을 이기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축복하셔도, 그 믿음 변치 않도록 하시기 위해 그런 수많은 낙심천만한 상황도 지나가게 하시는 것이다.
다윗은 양치는 목동이었다. 가족에게 무시당하고, 장인에게 생명을 뺏길 위기를 지났다. 그러나 마침내 광야의 연단을 지나,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지 않았는가? 요셉은 노예소년이었다. 상처 많은 인생이다. 엄마는 왜 나를 두고 일찍 가셨나요? 아빠는 왜 나를 지켜주지 못하지요? 형으로서 동생 하나 돌볼 수 없나요? 형제가 어떻게 나를 죽이려 할 수 있나요? 그가 가진 상처들은 평생 그가 엉망진창으로 인생을 살아도 핑계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한 분의 은혜 때문에 세상의 거친 광야를 통과하는 승리자가 되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을 두고 연약함과 부족함을 생각하며, 원망하고 낙심할 이유가 없다. 거기서 믿음으로 출발하면 된다. 현재의 고난은 장래에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또 질문이 생긴다. 왜 처음부터 그렇게 해 주시지, 왜 그런 낙심천만한 연단의 과정을 지나서 그렇게 하시는가? 이유는 분명하다. 자기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교만하여 넘어지고 실패하는 인생 되지 않도록, 그 영광된 자리를 지켜주시고자 미리 안전핀을 꽂아 붙잡아 주시는 것이다. 자기의 잘남을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는 축복의 절대 방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주님만 자랑하는 인생, 오직 주님만 높이는 멋지고 품격있는 인생 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최고의 품격있는 인생
인생의 가치는 그의 자랑거리를 들어보면 안다. 자식 자랑, 돈 자랑, 육체미 자랑, 마눌님 자랑이 제일 많다. 그러나 최고의 자랑 중의 자랑은 오직 ‘예수님 자랑’밖에는 없다. 예수님 자랑하는 것이 없으니, 정치 이야기, 세상 이야기 하는 것이다. 최고의 품격을 가진 인생의 모습은 무엇인가? 예수님만 높이고, 예수님만 찬양하고,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예수님만을 사랑하는 사람. 예수님이 그를 친히 사랑해주시고, 예수님 닮은 가장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왜? 사랑하면 다 주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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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