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들의 평범한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변화나 기적에 대해서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생긴 변화를 느끼게 되면 너무나 당혹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의 영역 속에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기적을 만들어 내시기도 하고, 때로는 초자연적인 사건 가운데서 너무나도 타당한 그리고 아주 논리적인 설득력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경우를 경험 할 수 있다.
갈릴리 가나에서 있었던 한 혼인 잔칫집에서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세심한 배려와 평범한 요청에 대해서 예수님의 친절하시면서도 자상한 사랑과 축복의 응답이었다. 포도주는 혼인 잔칫집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음식이었다.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라는 말은 일상적인 것을 뜻하며 일상적인 것은 지극히 평범한 사물이다. 우리의 평범한 것에 대한 필요를 하나님은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다. 이 필요를 하나님은 결단코 거절하지 않으신다. 예수님도 이 소박하고 평범한 요청을 아셨기 때문에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했다고 하시면서도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셨다. 예수님께서 아주 조용한 속삭임으로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말씀하셨고, 하인들은 아무런 저항이나 수군거림도 없이 순종함으로 연회장에 갖다 주었다. 이 모든 일은 아주 평범한 일상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 가나 잔치집의 그 기적은, 아주 조용하게 이루어졌다. 물 떠온 하인들 외에는 아무도 이 기적의 진행 과정이나 내용을 알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는 기적의 평범함과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기적의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다.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는 것은 분명히 기적이었다. 이것은 본질적인 변화요, 가치의 상승이요, 용도의 혁신이었다. 엄청난 변화를 나타내는 기적이었다. 그러나 이 엄청난 기적의 사건이 극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나타났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요한 2:9)
우리는 날마다 아니, 순간마다 변화하는 초고속 정보화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생각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고 삶의 모양이 변하고 있다. 변해도 너무나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우리는 변하되 좀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기를 원한다. 사람은 누구나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고,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고, 쓸모가 없는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가치 있는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고, 가치 없는 사람으로도 변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기왕이면 바람직한 사람으로, 쓸모 있는 사람으로, 경건하고 고상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빛깔이 없던 물이 빛깔이 있는 포도주로, 맛이 없던 물이 맛있는 포도주로, 쓸모가 없던 물이 쓸모 있는 포도주로, 가치 없던 물이 가치 있는 포도주로 변화했듯이 우리 자신이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쓸모 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내가 진정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예수의 돌 항아리 가운데 일단 들어가는 자기 부인 내지는 희생과 헌신의 과정이 앞서야 한다. 나 자신을 예수님의 인격 가운데 녹여서 완전히 없어진 후에, 예수님의 인격으로 변화되어 다시 거듭나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꼭 명심할 일이 있다. 그것은 아주 조용하게 은밀하고 평범하게 그 변화의 과정을 순종함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수다스럽게 떠들고 소문내는 자기선전은 위선과 거짓만을 나타낼 뿐이다. 시끄럽고 소문난 잔치는 먹을 것이 없다는 속언과 같이, 떠들고 자기를 나타내는 잔치는 내용이 없는 공허한 일일 뿐이다. 생활에서의 조용한 기적은 내용으로 살찌우는 은총과 축복으로 열매가 맺어질 것이다. 생활에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통하여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맛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조용한 기적을 오늘도 삶에서 만들어 내는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자.
12.10.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