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엄마 - 명진 이성숙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성숙 수필가

한식당에서 주방 일을 돕는 수진이 엄마는 서울 강남에서 꽤 유명한 입시학원을 운영하던 여자다. 미국 온 지 5년이 되었다는 수진 엄마는 남매를 돌보며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수진 엄마는 낮에는 동네 부설 어학원에 다니고 저녁에는 일을 했다. 어느 날 준이가, “엄마, 수진이 엄마 만나볼래했 다. “?” ...

오지랖 넓은 우리 딸은 수진 엄마가 친구가 없어서 외로워 한다면서 내가 친구 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미국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마땅히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던 참이었다. 준이가 수진이랑도 친하게 지낸다고 하니 나도 얼른 인심 쓰는 척 아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엄마가 바쁘지만, 만나보지 뭐.” 

우리는 플러턴의 한식당 ‘J’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준은 수진네를 만나러 가는 이 세상에서 수진 엄마에 대해 호감이 갈만한 정보를 내게 늘어놨다. 수진이 아빠는 유명한 물리학자고 엄마는 서울의 명문여대 영문과를 나와서 강남의 잘 나가는 영어 학원 원장이었으며, 수진네 가면 수 진 엄마가 음식을 맛있게 해 주시고, 집안도 항상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는 얘기들이다.

그래? 나는 약간의 긴장과 함께 모종의 세련된 여인을 상상하며 식당에 들어섰다. 좀 늦은 시간이라 식당은 한산했다. 우리는 중앙 홀을 지나 주방 앞자리로 안내되었다. 잠시 후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가 와 서 준이 엄마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자기가 수진이 엄마라며 인사를 건넨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의 당황을 눈치 챈 것인지 자신이 멋쩍어서였는지, 그는 잠시 주방으로 돌아갔다가 반 요리된 닭볶음탕을 가져와서 테이블 버너에 불을 붙였다. 수진이 엄마가 일을 한다고만 들었지 준도 나도 수진 엄마가 이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줄은 몰랐었다. 음식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것 같다. 수진 엄마는 솜씨 좋게 닭볶음탕을 이리저리 뒤적였다.

그러니까 이 여자는 서울의 명문 여대를 나왔고 돈도 제법 벌었으며 유명한 물리학자 남편을 두었다는 것이다. 한국에 두고 온 살림도 궁색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차 안에서 들었던 전주곡과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자 사이에서 나는 이질감을 느꼈다. 빛바래고 값싸 보이는 빨간 천에 ‘J’라고, 하얀 붓글씨체로 쓰인 앞치마를 두른 여자는 내가 애초에 만날 거라고 상상했던 여자가 분명 아니었다. 흰색 붓글씨 도안은 페인트가 아무렇게나 갈라져 꾸덕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식당 서버 아줌마들이 하듯이 행주로 냄비 한쪽을 움직이지 않도록 잡고, 다른 손으로 나무 주걱을 들고 냄비 안을 요리조리 섞어갔다. 그녀의 손은 두껍고 거칠었다. 내가 수진 엄마 손을 내려다보는 동안 그녀도 내 손을 보았던 모양이다. “손이 참 고우시네요.”라는 말이 털털한 목소리로 건너왔다. 윤곽이 뚜렷하고 지적인 용모를 한 얼굴과는 좀 다른 목소리였다. 내 손은 아버지를 닮아 작기도하고 그만그만 살아서였는지 나이보다 고운 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게을러서 그래요하며 엷게 웃어 보였다.

그녀는 내 생각을 읽은 듯, 초면의 사람들이 나눌만한 형식적인 문장 몇 개를 뛰어넘어 불쑥, “남편이 더 이상 돈을 안 보내겠데요.”했다. 그녀는 소위 기러기 엄마였다. 그제야 나는 수진 엄마와 대화를 시작했다. “애들 뒷바라지하는데 아빠가 돈을 안 보내면 어떡해요.? 그럼 한국으로 돌아가셔야죠.”

우리는 그날 식당 문을 닫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고 밤새도록 불이 켜진 맥도날드로 자리를 옮겨 감자튀김과 커피를 놓고 수다를 이어갔다. 수진 엄마는 수진이와 수진이 오빠를 데리고 미국으로 왔고, 그동안 수진 아빠는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 주었다. 그런데 5년째 생활비를 받아 쓰려니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도 일 할까?”하고 물었더란다. 그러자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자존심 상한 그녀는 일을 시작했고, 남편은 그 후 생활비를 보내지 않게 되었다는 내막이다.

미국은 유학생 신분으로 돈벌이를 할 수 없는 나라다. 취업 자체가 불법이다. 그녀는 영 문학을 전공했지만 소심한 성격으로 주류 사회에 발을 들일 만한 숫기도 없어서 한인타운 안에서 허드렛일을 구하는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궂은 일할 것을 뻔히 알면서 일하라던 남편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웠지만, 그나마 영주권 스폰서를 해 준다는 ‘J’에서 일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내 눈앞의 그녀는 다행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주인 남자는 아무렇게나 반말로 수진 엄마를 불렀다. 식당 마감 시간이 다가오자 그는 손님(나와 주 늘)이랑 놀고 설거지는 낼 아침에 와서 해도 좋다며 걸레 뭉치 던지듯 말하고 사라졌다. 한눈에 봐도 규격 잡힌 사람은 아니었다.

저 사람 왜 저렇게 반말하고 함부로 굴어요?” 그 남자 말투에 화가 난 내 목소리가 톤을 높이자, 그녀는 영주권 나올 때까지 참아야 해요라며 체념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 여기 사장은 그래도 좋은 편이래요. 추근대지는 않거든요기가 막혔다. 남편의 몰이해와 주인 남자의 갑질에 수진엄마는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와 헤어져 돌아오는데 심장에 돌을 담은 듯 마음이 무거웠다. “왜 돌아가지 않고?” 나의 질문에 쓸쓸하게 웃던 그녀의 얼굴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잔영으로 떠올랐다. 나는 그 후 한 번 더 ‘J’에 갔다. 주인 남자가 함부로 텍텍거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나는 신경을 써서 차려입었고 태도도 엄중히 했다. 수진 엄마는 그런 나를 좋아 했다. 그녀는 작게 웃으며 내가 다녀간 후 주인 남자 태도가 좀 달라졌다는 말도 들려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그런 후에 한 달이 지났다. 수진에게서 한밤중에 전화가 왔다. 아이는 울먹이고 있었다. 엄마가 쓰러졌다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식당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중 차 안에 쓰러져 있는 것을 다른 종업원이 발견하여 병원으로 옮겼다고 했다. 수진 엄마는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있었고, 병세는 빠르게 악화되었다. 그리고 두 주 만에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녀는 식물인간인 채로 한 달을 살고 천국으로 갔다. 과로사였다. 그녀의 죽음의 가해자는 남편과 식당 주인 남자였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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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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