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예레미야 17:14)
여러분은 살아가면서 어떠한 어려움이나 도전을 경험하셨나요? 미국에서 살아가는 Korean-American들이 직면하는 여러 어려움은 가족 내에도 존재하고, 학교나 직장 혹은 사회에서도 존재합니다. 인종차별 등의 문제도 경험하고, 억울하게 법적인 문제에 부딪힐 때도 있습니다. 영원한 이방인처럼 살아가야 하는 불안함, 언어의 불편함,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 가운데 가족들과도 부딪히고, 서로를 지지해 주지 못해 정서적인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가족 간의 소통이 어색해지기도 하고, 이 땅에 뿌리내리며 살아갈 때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갈등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 1.5세, 2세, 3세 자녀들은 서로 다른 문화적 환경에서 자라면서 더 큰 도전에 부딪히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언어와 문화적 차이는 종종 소통의 어려움을 야기합니다.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의 가치와 관점을 이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지 못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공간으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학대를 받는 아동은 대부분 가정 내에서 신체적, 정서적, 성적 학대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학대받았던 아동은 어른이 되어 또 자신의 자녀를 학대하기도 합니다. 사랑과 지지를 받아야 할 가정이라는 공간이 상처를 주고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곳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경험하며 살아가는 어려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깨진 관계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불완전한 우리를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고, 특별한 사랑으로 감싸주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가 서로 사랑하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4-35)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서로에게 사랑으로 다가가고, 상처를 감싸주며, 고난과 어려움을 함께 나눌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우리가 경험하는 이민과 다문화적 환경에서의 어려움은 성경에서도 말하는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의 갈등과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어떻게 사람들을 회복하고 통합시키는지 보여줍니다. 성경 속 인물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새로운 관계를 이루는 것처럼, 이땅에 살아가는 우리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회복과 치유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음을 믿는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참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자기목숨을 내어 주는 그분의 사랑은 쉽게 사랑을 저버리는 이기적인 우리네 사랑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은 특별히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치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30절에서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이 "모든 수고와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이야기하며 마음의 피로와 아픔을 가진 이들을 위로하고, 쉼을 허락하셨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일을 해야 하고, 직장을 다니며 육아를 병행해야 비로소 재정적인 안정을 유지하는 우리의 삶은 어쩌면 너무 고단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를 돌보고, 가족들에게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사랑한다 표현하지 못한 채 매일매일 반복되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편 147:3절 말씀에서 여호와는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혹시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으셨나요? 관계의 어려움이 나로 하여금 사람들과의 관계를 거부하고, “차라리 혼자가 편해" 라며 스스로 외롭게 살고 있나요?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금전적인 손실을 당했나요? 이 모든 상황 속에서 나는 언제쯤이나 회복이 가능해 질까 안타까워하며 살아가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그분의 위로를 들으시고, “내 사랑하는 딸아/아들아" 하는 그분의 음성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4장 18-19절에서는 이사야의 말씀을 통해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상처받고, 외로울 때에도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는 그분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상처받은 우리들과 항상 함께 계시며, 상심한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는 분, 그분께 의지하고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상처는 치유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감정적인 상처의 치유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시간뿐 아니라 부드럽게 상처를 간호해 줄 우리 주님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한번 넘어져 상처가 나면 새로운 살이 나오고, 회복되어 치유되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 몸은 그렇게 자연적으로 치유될 수가 있지만, 마음이 부서지면 시간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 그 사랑이 있어야 진정으로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주위를 돌아봐도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말씀을 통해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경 속 인물들을 통해 그들의 상한 마음을 회복하시고, 그들을 귀하게 쓰시는 주님의 계획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이 노예와 죄수로 살았던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이집트에서 총리가 되게 할 계획을 세우고 계셨습니다. 룻이 집이 없고 불임한 과부였을 때, 하나님은 그녀에게 보아스의 마음에 집을 만들어 주어 보아스의 아내, 어머니가 되고, 그의 아들과 손자들을 통해 위대한 할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나사로가 무덤 속에 묶여 있던 때, 하나님은 그에게 새 삶을 줄 새로운 생명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다윗이 간음에 빠진 순간에도 하나님은 그가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게 하기 위한 기초를 마련하고 계셨습니다. 매번 사울이 그리스도인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하나님은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파할 때를 보셨습니다.
사래가 하갈과 부딪힐 때마다, 하나님은 이삭의 태어남으로 사래가 자신의 질투, 교만 및 의심을 깨뜨릴 것을 알았습니다. 에스더가 생계를 위협받는 고아 소녀일 때, 하나님은 그의 딸이 왕국을 통해 그의 백성을 구원할 길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믿음을 잃고 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부인했을 때, 하나님은 그가 그리스도를 선포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할 때를 보셨습니다.
모세가 자기 손으로 이집트인을 죽일 때, 하나님은 그가 같은 손으로 십계명을 새기는 것을 보셨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죽음을 보았을 때, 하나님은 그가 부활하고 하늘의 왕좌에 앉아 계실 때를 보셨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가혹하고 힘든 상황에 있던지 하나님은 각각을 희망찬 미래로 바꾸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황 가운데 있습니까? 그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낙심된다 할지라도, 주님은 여러분의 삶에 개입하시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상처를 싸매어 주고, 우리를 “잠잠히 사랑” 하고 계십니다.
예언자 스바냐가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던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 3:17).”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시며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 하시는데, 무엇이 두려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재의 고난이나 힘듦이 주님 앞에서는 찬란한 희망으로 변할 수 있음을 믿고 그 희망으로 또 한해를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jennylee@ptsa.edu
이제니 (Jenny Lee) 박사 (Psy.D.)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상담심리학과 디렉터
01.01.2024